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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예화(미국의 한 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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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예화(미국의 한 남성)

 


 


▶미국에 사는 어떤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이 남자는 어느 날 한 아리따운 여성을 만났습니다. 그 여성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살아가다 보니까 문제가 생겼습니다. 얼굴은 예쁜데, 얼굴에만 신경을 쓰느라고 살림은 엉망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너무 게을렀습니다. 그래서 그는 후회하기 시작했습니다.


'아, 내가 눈이 삐었구나! 여자는 얼굴이 전부가 아닌데, 왜 내가 그 사실을 잊어버렸을까?'


결국 그는 자기 아내와 이혼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부지런한 여성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마음에 딱 맞는 매우 부지런한 여성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여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니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부지런한 것까지는 좋은데 입마저 부지런한 것이었습니다. 잠시도 쉴 새 없이 혼자서만 지껄였습니다. 질려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또 후회하기 시작했습니다.


'아, 내가 또 실수를 했구나! 좀 더 신중해야 했었는데…'


결국 그 여자와도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번에는 조용한 여자를 만나서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니 또 문제가 있습니다. 조용한 것은 좋은데 너무 사치스러운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했습니다. 장점을 보고 결혼했다가 단점이 생기면 이혼을 해 버렸습니다. 그는 결국 두 손 들고서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인생은 가위 바위 보와 같구나.'


무슨 뜻이겠습니까? 가위 바위 보는 언제나 이기는 법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질 때도 있습니다. 예컨대 가위는 바위에게 집니다. 그러나 보자기는 이깁니다. 보자기는 바위에게는 이깁니다. 그러나 가위에게는 집니다.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우리에게 우호적인 사람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적대적인 사람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그러려니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입니다. 아울러 모든 사람에게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에게 또한 단점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게 마련입니다. 단점이 있으면 장점도 있게 마련입니다.


 


▶수 년 전으로 기억합니다. 재벌 한 분이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만들어 놓은 병원의 유명한 의사들 30여명이 주변에 모였을 때 말했습니다.


<만일 내 생명을 10년만 영장시켜 준다면 1000억을 주겠다.> 그러나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죽었습니다.. 만일 10년에 1000억이라면 인간이 100년 산다면 생명 값은 1조원이 될 것입니다. 영생할 수 있는 약을 판다면 이 재벌은 자기 재산을 다 주고 라도 사고 말 것입니다.


 


▶이조 태종 때였습니다. 일본에서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로 보내왔습니다. 사복사라는 절에서 기르다가 어느 날 수많은 구경꾼들에게 코끼리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 때 구경꾼 한 명이 코끼리가 추하다고 침을 뱉었습니다. 그 때 코끼리는 화가 나서 그 사람을 짓밟아 죽였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병조 판서 유정현은 동물 재판을 열었습니다. <사람을 죽인 동물은 사형이다.>


이렇게 판결하였습니다. 코끼리는 사형당할 위기에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태종은 사면권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코끼리를 죽이지는 말고 전라도 노루 마을에 유배시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코끼리를 유배시킨 적이 있습니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외동딸과 함께 외롭게 살아가는 한 중년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딸이 가출하여 술집에서 남자들의 술이나 따라 주면서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 여인은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딸이 있을 만한 곳을 다 다니면서 전단지를 뿌렸습니다. 그 전단지에는 어머니의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어미가 너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단다. 너를 사랑한단다.>


어머니는 딸의 사진을 넣으면 딸이 부끄러움을 당할 가 두려워 자기 사진을 넣은 것입니다. 결국 딸 사진 대신 자기 사진을 넣은 것입니다. 드디어 딸은 어머니 품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통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어요. 저를 위하여 대신 수치를 당하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드려요.>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놋뱀은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나무에서 저주받으심으로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영생 약입니다.


 


▶공산주의 박해를 피하여 몰래 가정에서 숨어서 예배를 드리는 진실된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30여명은 늘 똘똘 뭉쳐서 늘 지하실에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이들 중에 어머니와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오직 예수였습니다. 내세의 소망과 부활을 바라보며 예배시간마다 결석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늘 집을 비우는 아내와 아들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늘 말했습니다.


<나는 예수 믿는 며느리가 싫다. 절대로 예수쟁이와 결혼하지 마라.>


그러나 아들은 분명히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예수 안 믿는 처녀와는 결혼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몰래 예배드릴 때 경찰에 고발하여 버렸습니다. 경찰에 붙잡혀간 이들은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있는 돈이란 모두 선교 비에 사용하였기에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몸으로 때우기로 하고 유치장에 들어갔습니다. 이들은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늘 기도하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유치장에 들어 온 이들을 모조리 전도하여 예수 믿게 하였습니다. 늘 유치장이 시끄러웠습니다. 거기에다가 하루 세끼 밥까지 해다 주어야 했습니다. 경찰들은 골칫거리였습니다. 낭패였습니다. 경찰은 고발한 아버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까짓 것 가지고 남자가 쩨쩨하게 고발을 합니까? 더구나 자기 마누라와 자기 자식까지 있는 데...>


그리고 30명 교인들을 다 내보냈습니다. 유치장에 들어갔지만 전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습니다. 믿음만 있고 사랑만 넘치고 경건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믿음은 구원을 이루는 오직 하나의 길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미래입니다. 미래는 사람에게 주어진 가장 고상한 자본입니다. 미래가 없는 인생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미래가 불투명하면 우선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지극히 미래적인 존재입니다.


그렇다고 반드시 미래만 있다고 해서 살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미래에는 내세도 있어야 합니다. 이 내세는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세상을 생각 없이 살아가니까 그렇지 좀 조용히 앉아서 인생을 생각하고 죽음을 생각하고 종말을 생각하면 그렇게 아찔해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내세 문제가 걸리기 때문입니다.


지금 죽어 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병이 문제가 아닙니다. 먹는 문제도 아닙니다. 바로 이 내세 문제입니다. 내세 문제만 해결되면 병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죽을병이 들었어도 그렇게 절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세의 문제가 시원스럽게 풀렸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모두 행복해지려고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최상의 목표는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마 동서고금 할 것 없이 공통된 욕망일 것입니다. 그런데 행복이라는 것은 참 묘합니다. 행복은 모든 사람에게 다 똑같은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시대에 따라서 그 기준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 행복의 기준이 100년 후에도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때는 또 달라집니다. 그래서 행복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서 환경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또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 똑같은 것도 아닙니다. 사람에 따라서 행복의 기준이 다를 수 있습니다. 세속인들이 말하는 행복이 다르고, 신앙인들이 말하는 행복의 기준이 또 다릅니다. 세속인들이 말하는 행복은 재미있고, 쾌락적이고, 육감적인 것들이고 대부분 눈에 보이는 것들을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그런 것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똑같이 행복의 기준이 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신앙인들에게는 또 다른 차원의 행복의 기준이 있습니다. 신앙인들이 말하는 심령이 가난한 것, 마음이 온유한 것, 애통한 것, 경건한 생활 등은 세속적인 사람들에게는 참 재미없는 것들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세속적인 사람들에게는 행복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매력 없는 것들입니다.


 


▶어떤 남자 분이 직장 일로 인해서 잠시 해외로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출장을 떠나면서 아내가 걱정을 할까봐 아내에게 단단히 약속을 했습니다.


"여보, 당신이 걱정하지 않도록 내가 매일 한 번씩 전화를 하리이다." 그리고서는 출장을 떠났습니다. 무사히 목적지에 잘 당도했습니다. 행여나 아내가 걱정을 할 것 같아서 그는 얼른 아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여보, 잘 당도했소. 집에는 별 일 없지? 내가 또 전화하리이다." 그리고서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는 출장 간 일이 너무 바빠서 그는 아내에게 한 번도 전화를 못했습니다. 이제 내일이면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짐을 싸다 보니까 그제야 아내에게 전화를 하지 못한 것이 좀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싸던 짐을 옆에다 밀어놓고 아내에게 전화를 하기 위해서 전화기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아내에게 미안한 감이 있어서 꼭 이렇게 말을 하리라고 속으로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보, 그동안 전화하지 못해서 미안하오. 얼마나 수고가 많았소? 나는 당신이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


그러면서 그는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꼭 하리라고 속으로 다짐을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수화기를 들고 보니까 자기 생각하고는 전혀 달리 엉뚱한 말만 튀어나왔습니다.


"응, 나야. 별 일 없지? 애들은 어때? 강아지는 잘 있고? 화분에 물도 잊지 않고 잘 주고 있소? 물고기 밥은 잘 챙겨주고 있소?"


여기까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에게서 더 이상 아무런 대꾸가 없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급기야 아내가 울먹울먹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당신, 해도 해도 너무하군요." 그러면서 딸까닥하고 전화가 끊어졌습니다.


이 남자 분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애들 챙기는 것까지는 좋았습니다. 강아지도 챙기고, 물고기에 신경을 쓰고, 화분에까지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제일 먼저 관심을 기울여 주어야 할 사랑하는 아내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을 표명을 하지 않은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내가 전화를 끊어 버릴 만도 하지요.


 


▶초등학교 어린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얘들아, 크리스마스라고 하면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니?"


제일 많은 답변으로 나온 것이 크리스마스 트리였습니다. 많은 어린아이들이 성탄절을 크리스마스카드나 주고받고, 선물을 받는 날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성탄절을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생일날로 생각하는 어린아이들도 의외로 많습니다. 성탄절을 예수님의 생일이라고 제대로 답변하는 아이들이 그다지 흔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들만 그렇습니까?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극단적으로 이런 말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마귀가 일 년 열두 달 가운데서 가장 좋아하는 달이 언제이겠는가? 바로 12월 달이다. 그 가운데서 마귀가 제일 좋아하는 날이 언제이겠는가? 바로 12월 25일, 곧 성탄절이다."


왜 이런 말이 나왔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망각하고 있습니다. 마치 성탄절을 방종이나 방탕의 면허라도 받은 날처럼 그들은 육신의 향락을 도모합니다. 그러면서 깊은 죄악 가운데로 빠져듭니다. 그러니 마귀가 성탄절을 제일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인도에서 사역을 하는 어떤 선교사님의 체험담입니다.


어느 날 그는 힌두교 승려 한 사람과 함께 길을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길을 가던 중에 그는 실수를 해서 길가에 있는 개미집을 발로 밟아버렸습니다. 그 바람에 개미집이 부서졌습니다. 그 속에 있던 많은 개미들이 발에 밟혀서 다치거나 죽었습니다. 그러자 힌두교의 승려가 그것을 보고서 안타까워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 때문에 수많은 개미가 목숨을 잃었군요." 그 말을 듣고 그 선교사님은 너무나도 민망해서 정중하게 사과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고의로 그런 것은 아니고 제 발가락에 눈이 없어서 저도 모르게 실수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저 개미들에게 잘못했다고 사과를 할 수 있을까요?"


그러자 힌두교 승려는 정색을 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정 개미들에게 사과를 하고 싶거든, 당신은 죽어서 다시금 개미로 태어나야 할 것이요."


힌두교는 불교와 마찬가지로 윤회설을 믿습니다. 그러니 그 사상에 의하면 개미에게 사과를 하기 위해서는 개미로 다시금 태어나는 방법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선교사님의 마음속에 성령께서 주신 지혜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승려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군요. 바로 똑같은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의 모습을 가지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입으시고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루는 어떤 어린아이가 주일학교에 가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집을 나섰습니다. 동네 어른이 그를 보더니 물었습니다.


"얘, 꼬마야! 너 어디 가니?" 아이는 대답했습니다.


"예,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 교회에 가요." 그러자 그 어른은 빈정대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하나님이 어디 있어? 너 하나님을 봤어? 하나님이 도대체 어떻게 생겼어?" 그러자 이 아이는 똘똘하게도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저씨, 하나님은 너무나도 크셔서 온 우주에도 담을 수가 없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 하나님은 너무나 작으셔서 지금도 내 마음속에 계세요."


그렇습니다. 온 우주조차도 담을 수 없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우리는 매일 매 순간 우리의 마음속에 모시고서 살아갑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날마다 체험적으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오래 전 영국 런던의 근교에 있는 어느 농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누군가가 농가의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농부는 대문을 열고서 내다보았습니다. 몇몇 사람이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여자도 끼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남자가 농부에게 정중하게 부탁을 했습니다.


"갑자기 날씨가 흐리고 소낙비가 올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죄송하지만 우산이 있으면 하나만 빌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농부는 아무런 생각 없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우산 가운데 가장 허름한 것 하나를 찾아서 그에게 빌려주었습니다. 사람들을 그에게 고맙다는 소리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바로 그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농부가 대문을 열고 보았습니다. 어저께 우산을 빌러 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우산을 되돌려 주면서 예쁘게 포장한 카드 한 장을 주었습니다. 농부는 아무런 생각 없이 집안으로 들어와서 그 카드를 열어보았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 밑에는 그 우산을 빌려 쓴 장본인의 이름과 사인이 기록이 되어 있었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 그러니 이 사람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는 가슴을 치며 후회했을 것입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내가 가지고 있던 우산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드렸을 텐데… 그럴 줄 알았으면 내 정성을 다해서 그분을 영접했을 텐데…'


여러분! 그날 농부가 저질렀던 실수, 여왕을 여왕으로 알지 못하고 제대로 영접하지 못했던 실수가 영적인 세계에서도 계속해서 반복되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만 주의 주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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