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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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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예화


 


 


생쥐 한 마리


 


비행항공술의 선구자인 핸드리 페이지가 많은 관중에게 에어쇼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창공에서 고난도 기술을 선보였다. 그런데 비행기 안에서 계속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생쥐 한 마리가 전선을 갉아대고 있었다. 만약 전선이 끊기거나 합선이 되면 비행기는 여지없이 추락할 상황이었다. 비행기가 추락하면 자신의 명예는 물론 대형 참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다. 순간 페이지는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자. 그리고 더 높이 날아오르자."


 


그는 고도를 최대한 높였다. 비행기가 높이 날아오르자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쥐는 비행기가 높이 날아오르자 산소부족으로 죽은 것이다. 그는 멋진 묘기를 마음껏 선보였다. 위기에 처할수록 믿음과 용기가 필요하다. 새해에는 강력한 기도로 '인생의 쥐'를 몰아내자.



 


1. 목잡니 목잡니



성도들의 어린 자녀들은 목사님의 열렬한 팬들입니다. 교회에서나 심방을 할 때나 서너 살짜리 아이들은 환영이 대단합니다. 아이들은 목사님을 부를 때 “목사님. 목사님”이란 발음을 제대로 되질 않는 모양입니다.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를 잘못 들으면 “목잡니. 목잡니”하는 소리로 들리기까지 합니다.


 


오늘도 한 어린아이가 목사님을 보자, “목잡니 목잡니”하고 달려왔습니다. 목사님은 아이를 꼭 안아 주면서 말했습니다. “그래그래 네 말이 맞구나. 목사님은 예수님께 꼭 잡혔단다. 너도 예수님께 꼭 붙잡혀서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아야 한다.” 어린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에게 갔습니다.


 


“엄마. 엄마 목잡니가 나 안아줬다.”


“오, 주님 저 순전한 어린 심령을 주의 품에 꼭 안아 보살펴 주옵소서.” 목사님의 마음에는 더욱 기쁨이 넘치고 있었습니다.


 


 


2. 목 잘라졌구나


 


부흥회 마지막 날에 부흥사 목사님이 성도들에게 통성기도를 시켜놓고 앞자리부터 안수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모였기에 땀을 흘리며 머리에 손만 얻고 “주여 믿습니다.”하고 지나치셨습니다.세 번째 줄을 안수하다가 목사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여자 성도를 안수하고 손을 떼는데 그만 목이 뚝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내가 너무 힘을 주었나.”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여성도의 머리는 그대로 있었습니다. 떨어지는 것은 다름 아닌 가발이 아닌가? 안수 기도 할 때 갑자기 떨어지는 가발 때문에 목사님 가슴도 떨어질 뻔 했습니다.


 


 


3. 어느 변호사


 


어느 도시에 막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초년 변호사 한 분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사무실에 앉아서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오전이 다 지나고 오후 서너 시가 되었는데도 아무도 찾아오지를 않았습니다. 그때 마침 한 손님이 들어오려고 문을 열었습니다.


 


이 변호사는 “이제야 첫 손님이 오는 모양이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얼른 전화 수화기를 들고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아! 네! 접니다. 요즘 바빠서 눈코 뜰 새가 없습니다. 전화로는 다 말씀드릴 수가 없으니 근간에 저희 사무실로 찾아와 주시기를 바랍니다." 전화를 끊고서 변호사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손님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사건 때문에 오셨습니까?”


 


그런데 손님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저는 전화국에서 나왔는데요. 조금 전에 시험통화를 해보았더니 전화선이 끊어졌더군요. 그런데 변호사님은 어떻게 통화를 하고 계십니까?”


 


 


4. 어떤 결혼 예배


 


성도가 비교적 많은 교회인지라 목사님은 매우 분주한 나날을 보내셨습니다. 토요일 오후 2시 결혼예배가 약속되었는데 목사님은 아침 일찍 교회 성도의 장례 예배를 드리시고 장지까지 가서 하관예배를 마치고 올라오셨습니다. 쉴 겨를도 없이 양복과 넥타이를 바삐 갈아입으시고 성의를 갖추시고 곧 결혼예배를 인도하시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고○○군과 고○○양의 결혼예배를 드리겠습니다.”



 


5. 아다리!


 


바둑을 두기를 매우 좋아하시는 목사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일주일 내내 그 주간에는 시간만 있으면 바둑을 두었습니다. 주일날이 되어 강단 위에 서서 보니 성도들의 머리가 바둑알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바둑의 아다리치는 것이 이쪽저쪽으로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흰머리 검은머리가 흰 바둑알, 검은 바둑알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목사님은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눈을 다시 한 번 비비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기도의 마지막에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까지는 잘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나온 말이 “아멘”이 아니라 “아다리!”였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다리!”



 


6. 뛰어내리는 것은 공짜요


 


실제로 오래전 ‘라이프’지에 실린 기사가 바로 그 심리를 지적했습니다. 2차 대전 후 각 나라 사람들을 싣고 가던 B29 비행기가 갑자기 고장이 났습니다. 낙하산을 짊어지고 속히 뛰어내리라고 기장이 야단입니다. 모두들 겁을 먹고 있을 때 기장은 먼저 독일인에게 “히틀러의 명령이다. 뛰어내려!” 하자 벌떡 일어나 “하이! 히틀러”하고 뛰어내렸습니다. 다음으로 일본인들에게는 “천황페하의 명령이다.”했더니, “쏘데스까”하고 뛰어내렸습니다. 블란서인에게는 먼저 뛰어내린 자들의 펼쳐진 낙하산을 보이면서, “저것 보시오. 스타일이 멋지지 않소. 뛰어내려요.” 하자 뛰어내렸고, 미국인 승객에게는 “모두들 뛰어내리는데 민주주의 원칙을 따라야지요.” 했더니 뛰어내렸습니다. 맨 나중까지 남은 한국인에게 와서는 기장이 한참 생각하다가, “뛰어내리는 것은 공짜요.” 했더니, “진짜로 공짜입니까?”하고 뛰어내렸다고 하는 기사였습니다.


 


 


7. 막달란 마리아


 


신약 성경에 나오는 여인들 중에 가장 은혜를 받은 성도라면 막달라 마리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까?


 


어느 목사님이 곰곰히 생각해 보다가 “그렇지”하고 손뼉을 쳤습니다. 막달란 마리아의 믿음은 “막달란 아이라 막달란 마리아”의 신앙이구나 라고 해석을 해보았습니다. 유머 같은 해석이지만 간청하는 신앙, 우리도 막달라 마리아의 신앙이 되어야겠습니다.


 


 


자연식으로 세상을 바꾼다


 


'미국에서 인스턴트 음식과 호르몬 주입 쇠고기를 추방하자'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사 중 한명으로 꼽히는 앨리스 워터스(55)의 음식문화 개선운동 구호다. 식당체인 '셰 파니스' 의 창립자이기도 한 그녀는 햄버거. 피자. 핫도그 등 패스트푸드가 판치는 미국의 음식문화가 건강에 좋지 않고 가족 간 유대도 무너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줄기차게 비판하고 있다.


 


UC 버클리대에서 프랑스 문화학을 전공한 워터스는 63년 몬테소리 교사가 되기 위해 프랑스에서 유학하던 중 '음식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법'에 눈뜨게 된다.


 


"프랑스에서 음식 재료의 중요성과 가족의 가치를 접하게 됐어요. "


 


프랑스 음식은 세심하게 선별한 제 철 채소에다 최소한의 조미료로 만들어 지방. 콜레스테롤이 높은 재료와 각종 화학조미료가 듬뿍 들어간 미국 음식과 좋은 비교가 됐다. 특히 엄선된 재료로 정성껏 만든 저녁 식탁이 가족간의 우애를 돈독히 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패스트 푸드나 인스턴트 식품엔 가족이 자리할 공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


 


67년 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교사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학생을 가르치는 낮 시간보다 친구에게 요리를 해주는 저녁시간이 더 좋았다. 4년 뒤인 71년, 취미로 시작했던 요리가 주업이 돼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셰 파니스' 식당 1호점을 개업했다. 프랑스어로 '파니스의 집' 이라는 뜻의 이 식당은 '건강한 음식' 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계절 따라 나는 농수산물과 화학물질이 첨가되지 않은 음식재료를 사용해 미국 사람들의 식탁을 바꾸고 싶었다.


 


처음 몇 년간 식당 운영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신선한 음식 재료를 찾기도 어려웠다. 풍성한 농산물 생산을 자랑하는 캘리포니아에서도 그녀가 원하는 재료는 찾기 힘들었다. 프랑스에 있는 친구들에게 자연산 조미료를 공수받기도 했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자연식품' 에 대한 열정이 알려지고 신뢰가 쌓이면서 일부 농민들이 농약과 화학약품을 일절 쓰지 않은 유기농산물을 재배,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단골손님도 점차 늘어나면서 식당은 흑자로 돌아섰다. 여세를 몰아 같은 건물에 식당을 확장하고, 84년에는 딸의 이름을 따 '카페 페니'도 개업했다. 미국 최고의 요리사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그녀지만 요리 비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최고의 재료를 사용해 정성을 기울여 음식을 만든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호르몬 주입 육류의 사용도 반대한다. 건강에 좋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인들 사이에도 건강식품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고 있다. 워터스는 "28년간 고집해온 음식문화 개선운동이 조금은 효험을 본 것 같아 기쁘다" 고 말했다. '빅맥' 햄버거를 좋아하기로 소문난 빌 클린턴 대통령도 그녀의 저녁상을 받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최근 그녀는 '음식 전도사' 에서 한발 나아가 가족의 가치와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형무소에 농장을 만들어 죄수들을 교화하는 '가든 프로젝트' 를 9년째 운영 중이다. 버클리의 마틴 루터 킹 중학교에서 '먹을 수 있는 학교 농장' 프로그램을 시작, 햄버거와 핫도그 일색인 학교 급식 메뉴를 변화시키고 있다. 7개의 저서를 통해 자신의 신념을 전파하고 '셰 파니스 재단' 을 만들어 환경단체에 25만 달러를 기부했다.


 


그녀는 최근 뉴욕 타임스와의 회견에서 "나는 단지 미국인의 식탁만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질 전체를 바꾸려 한다"고 새 밀레니엄의 포부를 밝혔다.


 


 


한글 붓글씨로 7년 걸려 성경 쓴 이강변씨


 


성경의 깊은 뜻. 단아한 한글 멋. 붓을 잡으면 무아지경이지요. 한 자 한 자 새긴 정성이 어느새 성경 한 권이 되었습니다.


 


한글서예가 이강변(69?전주시 우아동)씨가 붓글씨로 7년 만에 성경을 모두 썼다.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신-구약 전체를 붓으로 쓴 것으로, 분량이 전지 9300장에 이른다. 십독불여일서(十讀不如一書), 열 번 읽어도 한 번 쓰는 것만 못하다고 했습니다. 성경의 뜻을 깊이 새겨 그 뜻대로 살고 싶었어요. 한글 서예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이씨는 60년대 중반부터 한글서예를 닦으면서 이를 보급해왔다. 신혼부부에서 해외동포에 이르기까지 무료로 1000여명에게 서예작품을 써 보냈다. 공무원을 퇴직한 90년 이후엔 시민들을 찾아 완주 모악산, 전주 다가공원 등에서 한글자랑 거리전을 가졌고, 97년엔 작품 20여점으로 전주 인후공원에 ?한글자랑 늘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한글 서예 작품엔 한문과 비교할 수 없는 단아한 기품이 깃들지요. 누구든 쉽게 읽고 이해하면서 민족의 숨결과 정서를 느낍니다. 한글 서예를 생업으로 갖기 어려운 환경에서, 그는 노들본, 바른본, 흘림본 등 여섯 가지 한글 글씨본을 개발하기도 했다. 지난 5월부턴 완주 대둔산까지 도시락을 싸들고 출퇴근하며 이곳 케이블카 입구에 또 다른 한글자랑 늘 보는 자리를 마련하면서 관광객들에게 무료로 한글 가훈을 써주고 있다.


 


그는 ?민족의 명운은 한글을 얼마나 잘 갈고 닦느냐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면서 “한글 서예를 대중화하고 후대에 물려줄 상설전시관을 마련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스프링벅의 무한질주 인생


 


아프리카의 칼라하리 사막에는 스프링벅이라는 사슴이 서식하고 있다. 이 동물들은 푸른 초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다가 선두의 사슴 한 마리가 달리기 시작하면 모두 초원을 질주한다.


 


뒤에서 뛰는 사슴들은 왜 뛰는지도 모른 채 맹목적으로 속도를 낸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앞에 절벽이 나타나면 앞에서 달리는 스프링벅은 속도를 줄이지 못한다. 뒤에서 질주하는 동물들에 밀려 계속 앞으로 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스프링벅은 모두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이웃이 집을 사니 나도 집을 사고 이웃이 자동차를 사니 나도 자동차를 산다.자신이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무한질주 인생'을 즐긴다. 그리고 여지없이 절벽으로 추락하는 비극을 맞는다. 가끔 주위의 경치를 즐기는 여유도 필요하다. 과속인생은 그만큼 사고의 위험도 높다.


 


 


남편들에게.


 


한 부인이 길에서 신음하는 청년을 만났다. 부인은 다가가 그 이유를 물었다. 청년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불량배에게 폭행당한 후 지갑까지 빼앗겼어요." 부인은 청년에게 3만원을 건네주며 위로했다. "이 돈으로 우선 가까운 병원에 가보세요." 청년은 몇 번이나 머리 숙여 감사를 표했다. "전화번호를 알려주세요. 반드시 이 돈을 갚겠습니다." 부인은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속이 상한 부인은 남편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어느 날 아내는 화장대에서 낯익은 편지와 함께 만 원짜리 신권 세장을 발견했다.


 


"여보, 당신의 착한 마음이 행여 상처를 받을까 걱정이오. 청년 대신 내가 갚는 것이오." 부인은 남편의 따뜻한 배려에 진한 행복을 느꼈다. 남편들이여,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라. 하나님은 지금 아내의 눈물방울과 웃음의 횟수를 세고 계신다.


 


 


예수님은 내 며느리 때문에 돌아가셨어요.


 


세례 받을 이들을 위하여 목사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앙을 점검하고 구원의 확신에 대하여 물으셨습니다. 이제 이번에 세례를 받을 사람들 중에 가장 연장자인 노인 한 분이 목사님께 들어왔습니다.


 


목사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시죠.” “네, 믿고 말구요.” “그럼 예수님께서 누구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나요?” “아니 목사님 그걸 모르세요? 그거야 내 며느리 때문에 돌아가셨지요.” “왜 며느리 때문에 돌아가셨나요?” “내 며느리는 못됐거든요.”


 


 


주여! 미치겠습니다.


 


지금은 훌륭한 하나님의 사역자인 목사님 한 분이 교도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습니다.어느 날 목사님께서 “주여, 믿습니다.”하고 안수 기도를 하는 것은 잘못 알아듣고는 몸에 부스럼이 났는데 침을 뱉어 바르며 기도하기를 “주여, 미치겠습니다.”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은혜로 잘 나아서 교도소 내에서 “주여,미치겠습니다.”라고 안수기도를 해서 많은 사람들을 고쳐 주었습니다. 믿음대로 되는 것이 믿음입니다.



 


전천후 신앙


 


신앙은 환경을 극복해야만 합니다. 1960년 에디오피아 근위대 중위 아베베는 맨발로 올림픽에서 우승하여 금메달을 땄고 4년 후 1964년 동경 올림픽 때는 신발을 신고 우승하여 금메달을 땄습니다. 아베베는 그 후에 나라에서 그에게 차를 선물로 주었는데 교통사고를 당해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 4년 후에는 아베베는 다시 런던 장애자 올림픽 대회에 또 참여하여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도 이와 같아야 할 것입니다. 어떠한 환경에도 좌우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느 교회 주변의 술집 이야기


 


어느 교회 주변에 술집이 있었습니다. 너무나 시끄럽게 풍기가 문란해서 교인들이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 술집이 불이라도 나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비가 오는데 천둥과 벼락이 치더니 그 술집에 벼락이 느닷없이 때려서 그만 불이 나고 말았습니다. 얼마 지난 후 술집 사람이 교회에서 불이 나라고 기도했다는 소문을 듣고 법원에 고소를 했습니다. 교인들과 술집 사람이 법정에 섰는데 재판관이 교인들에게 묻기를 “정말 술집이 불타기를 기도했습니까?” 했더니 “천만에요. 우리는 기도를 전혀 안했습니다.” 재판관이 술집 사람에게 물으니 “저 사람들이 기도해서 불탔습니다. 정말입니다.”라고 답변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재판관이 빙그레 웃으며 판결하기를 “교인은 믿음이 없고 술집 주인이 믿음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거짓된 믿음


 


어느 집 아들이 아버지가 아끼시는 값비싼 도자기를 깨뜨렸습니다. 아들은 몹시 겁이 났지만 아버지를 찾아가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아버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말해 보아라. 무엇이든지 용서해주마.” “아버지가 아끼시는 도자기를 깨뜨렸습니다.” “어쩌다 그 귀한 것을 깨뜨렸냐? 너는 안 다쳤느냐? 용서해 주었으니 염려하지 말고 네 할 일을 해라.” 아버지는 모든 것을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은 그 날 저녁에 아버지께 또 용서를 빌러 갔습니다. 며칠간 똑같이 계속해서 용서를 빌러 가자 아버지는 화를 내며 “아니 이 녀석아 애비를 못 믿느냐! 못 믿어” 하였다는 것입니다. 믿지 못하면 모든 믿음은 거짓입니다.


 


 


오직 믿음만으로 위를 바라보라


 


감리교회를 영국에서 세운 요한 웨슬레 목사님이 한 번은 어느 분과 같이 산책을 하였습니다. 그 때에 친구는 사업을 하다가 큰 문제에 당면하여 아무리 생각하여도 해결할 실이 없어 마치 큰 산이 있어 앞을 가로막는 것 같다고 호소하였다고 합니다.


 


웨슬레 목사님은 그 말을 들으며 걸어가는데 마침 그 길옆에 큰 목장이 있어서 소들이 풀을 먹고 있었습니다. 목장 한편에는 길게 돌담이 쌓여 있는데 소들이 그 옆에 와서는 모두 머리를 쳐들고 넘겨보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에 웨슬레 목사님은 “이 친구, 저 소들을 보게나. 저 소들이 담장 옆에서 왜 머리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는가?”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도 앞을 볼 수 없을 때에 위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저 사공을 믿으라


 


어떤 사람이 그의 동생과 함께 캐나다 국경의 장엄한 나이아가라 폭포 밑을 흐르는 위험스러운 급류를 향해 배를 타고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물결이 너무나도 보트를 흔들었기 때문에 그의 동생은 잔뜩 겁이 났습니다. 그것을 바라본 형은 배의 노를 젓고 있는 사공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지금까지 당신은 얼마나 자주 이곳을 횡단하였습니까?”


“지금까지 12년 동안 줄곧 이 일을 했지요.” 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럼 한번이라도 사고가 난적이 있었습니까?”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배가 뒤집혔다거나 인명의 피해가 난 적이 전혀 없었단 말입니까?”


“선생님, 그런 일은 한 번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강조하여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무서워하고 있는 동생을 보고 말하기를 “저 사공의 말하는 것을 들었지? 네가 저 사공보다 노를 더 잘 저을 수 없다면 나처럼 조용히 앉아서 저 사공을 믿고 이 여행을 즐겨라.”라고 지혜롭게 안심을 시켜 주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에도 이런 지혜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영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자들이 의심과 불안의 파도 속에서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 되는가? 나이아가라 파도 속에서 배를 타고 가는 동생처럼 염려하거나 또는 내가 대신 배의 노를 저어야 하는가? 아닙니다. 내가 노를 젓는다 해도 사공보다는 더 잘 저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 5:7)


 


예수님은 자기에게 맡겨진 영혼을 결코 한 번도 잃어버리신 적이 없으십니다. 그리고 자기는 십자가를 지시면서 까지 제자들을 끝까지 보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피난처 안에 거하면 가장 안전하며 아무리 의심과 역경의 파도가 거칠지라도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맡기면 우리는 무사히 목적지에 도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무들의 꿈


 


요단의 계곡에 세 그루의 나무가 있었다. 나무들은 저마다 원대한 꿈이 있었다. 첫 번째 나무는 대성전의 강대상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경건을 전하고 싶었다. 두 번째 나무는 웅장한 배가 되어 검푸른 지중해를 항해하는 꿈이 있었다. 세 번째 나무는 그 자리에 남아서 길손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선물하고 싶었다.


 


어느 날 세 나무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한 농부가 도끼로 나무를 잘라냈다. 첫 번째 나무는 마구간의 밥통, 두 번째 나무는 작은 고깃배, 세 번째 나무는 십자가로 변했다. 나무들은 심한 수치심에 몸을 떨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그 말구유에서 아기 예수가 탄생했다. 갈릴리 고깃배는 사도 베드로를 주인으로 맞았다. 작은 십자가는 인간을 죄악에서 구원하는 상징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인생은 짧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성급하게 판단할 수는 없다. 우리의 작은 실패 속에 사실은 큰 영광이 깃들어 있다.


 


 


[만약 우리가 보려고만 한다면, 환경이 어떤 하든 하나님의 선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80년대 미국 올스타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유명투스, 댄 퀴센베리(Dan Quisenberry)는 96년 급성 뇌종양으로 쓰러진 후에도 항상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얘기하곤 합니다. 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후, 퀴센베리는 그의 "감사하는 습관" 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매일 매일 나는 감사 할 것들을 발견합니다. 창밖으로 자전거를 타며 노는 아이를 보며 감사하기도 하고, 때로는 시원한 물맛에 감사하기도 하지요... 글쎄요, 그런 것들을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데요?"


 


그는 1997년 가을, 4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퀸스베리의 담임 목사였던 테드 니센은 수술 후 그를 방문했을 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그는 정말 기분이 좋아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일생 동안 얼마나 선하시고 좋은 분이었는지를 들떠서 말하고 있었지요." 니센 목사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그가 가장 힘들 시기, 위로하려고 간 저를 그가 오히려 축복해 주었습니다."


 


 


가장 멋진 회사 마태복음 16장:18-19


 


러스 블라워스 목사는 인디아나 폴리스 로타리 클럽의 회원이다. 매주 클럽 모임에서는 회원들이 돌아가며 자신의 직업에 대해 짧게 설명하는 시간이 있는데, 러스의 차례가 돌아왔을 때, 그는 이렇게 발표했다.


 


나는 국제 기획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는 전 세계 모든 나라에 지점을 두고 있고, 지구상 거의 모든 국회와 위원회에 우리 대표들을 보냅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생각을 격려하고 행동을 변화시킵니다. 우리 회사는 병원을 운영하고, 관공서와 대학, 출판사, 양로원, 고아원, 그리고 미혼모의 집 등을 지원합니다.우리는 우리 고객들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돌봅니다. 또한 생명보험과 화재보험도 다룹니다. 우리 회사의 총 책임자는 전 은하와 우주 뿐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부동산들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그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장소에 계십니다. 우리의 생산품은 바로 "자유"입니다.(그것은 돈이 아무리 많이 있어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사장님은 시골에서 태어나 목수로 일하기도 했지만, 집도 한 채 소유하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고, 적들은 그를 증오 했습니다. 그는 물 위를 걸었고, 아무 죄 없이 사형 선고를 받았으며, 죽음 후에는 부활하셨습니다. 나는 매일 매일 이분에 대해 증거하며, 이것이 바로 나의 집입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회사인 것입니다.


 



분수를 아는 자


 


이스라엘 국회는 세계적인 석학 아인슈타인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임했다. 이 소식을 접한 아인슈타인은 정중하게 이를 사양했다. "대통령을 할 만한 인물은 많습니다. 그러나 물리학을 가르칠 학자는 그리 많지 않아요. 이것이 제가 대통령을 맡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스라엘의 수상 벤구리온도 어느 날 갑자기 수상직을 사임했다. 기자들이 몰려들러 그 이유를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키부츠농장에서 일할 일꾼이 부족합니다. 수상은 누구나 할 수 있으나 땅콩농사는 아무나 지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제 분수를 알면 존경받는다. 이스라엘이 부강한 것은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서로 국가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아우성치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분쟁과 다툼이 그치지 않는다. 명예를 탐내는 사람은 평생 그것을 잡지 못한다. 명예를 피해가면 오히려 그것이 따라온다.


 


 


英 청각장애아 입학에 전교 수화 메아리 감동


 


영국 북동부의 한 초등학교에 청각장애 학생이 입학하면서 학교 전체가 진정한 우정과 사랑의 배움터로 거듭나 감동을 주고 있다. 보청기를 통해 희미하게 소리를 듣는 조슈아 브라이언트(7)가 링컨셔의 클린턴파크 초등학교에 입학한 것은 지난해 초. 그의 부모는 선천적 장애인인 아들을 특수학교 대신 일반학교에 입학시켰다. 부모의 의사를 받아들인 학교는 곧바로 브라이언트를 위한 수화전담교사를 임용했다.


 


이 때부터 학교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교실에는 늘 두 명의 교사가 동원됐다. 교단 한편에 서서 수업 담당교사의 말을 수화와 표정으로 전달하는 마리아 해리슨 교사 덕분에 브라이언트는 다른 학생들과 나란히 앉아 공부를 했다. 급우들은 브라이언트의 질문과 대답을 수화교사를 통해 주고받는 지루함을 참아주었다. 그로부터 1년 여. 처음엔 인사조차 꺼리던 학생들이 브라이언트와의 의사소통을 자유자재로 하기에 이르렀다. 수업시간마다 해리슨 교사의 손동작을 지켜본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수화를 익히게 된 것이다. 현재는 이 학교 1백90명의 학생 중 절반 이상이 수화를 할 수 있다.


 


수화교사 해리슨은 "어린 학생들이 브라이언트와 사귀기 위해 서로 앞장서 수화를 배운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놀랐다" 고 말했다. 클린턴파크 학교는 또 브라이언트가 음악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자 수화 합창단을 만들었다.


 


이 학교 매기 앨런 수석교사는 "학생들이 스스로 배운 수화는 평생 그들이 간직해야 할 기술이다. 우리들의 작은 실험은 브라이언트뿐만 아니라 친구들에게도 소중한 경험이 될 것" 이라고 말했다.


 


브라이언트군은 어머니 파이오나(29)가 "일곱 살배기 아이들이 내 아들에게 이토록 우정을 베풀 줄은 몰랐다" 고 말하는 동안 그 옆에서 두 손을 모으며 손짓으로 친구들에게 사랑을 표시했다.


 


 


그 여자네 집 - 김용택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운 집


 


어디 갔다가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속에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오는 집


 


살구꽃이 피는 집


봄이면 살구꽃이 하얗게 피었다가


꽃잎이 하얗게 담 너머까지 날리는 집


살구꽃 떨어지는 살구나무 아래로


물을 길러오는 그 여자 물동이 속에


꽃잎이 떨어지면 꽃잎이 일으킨 물결처럼 가 닿고 싶은 집


 


샛노란 은행잎이 지고 나면 그 여자 아버지와, 그 여자 큰 오빠가


지붕에 올라가 하루 종일 노랗게 지붕을 이는 집 - 노란 집


어쩌다가 열린 대문 사이로 그 여자네 집 마당이 보이고


그 여자가 마당을 왔다 갔다 하며


무슨 일이 있는지 무슨 말인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와


옷자락이 언듯 언듯 보이면 그 마당에 들어가서 나도 그 일에 참여하고 싶은 집


마당에 햇살이 노란 집, 저녁연기가 곧게 올라가는 집, 뒤 안에 감이 붉게 익는 집


 


참새 떼가 지저귀는 집,


눈 오는 집, 아침 눈이 하얗게 처마 끝을 지나 마당에 내리고


그 여자가 몸을 웅숭그리고 아직 쓸지 않은 마당을 지나 뒤 안으로 김치를 내러 가다가


"하따, 눈이 참말로 이쁘게도 온다이이"하며 눈이 가득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속눈썹에 걸린 눈을 털며 김칫독을 열 때


하얀 눈송이들이 김칫독 안으로 내리는 집


 


김칫독에 엎드린 그 여자의 등허리에


하얀 눈송이들이 하얗게, 하얗게 내리는 집


내가 목화송이 같은 눈이 되어 내리고 싶은 집


밤을 새워, 몇 밤을 새워 눈이 내리고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늦은 밤


 


그 여자의 방에서만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면


발자국을 숨기며 그 여자네 집 마당을 지나 그 여자의 방 앞


뜰 방에 서서 그 여자의 눈 맞은 신을 보며


머리에, 어깨에 쌓인 눈을 털고


가만히, 내리는 눈송이들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가만히 가만히 그 여자를 부르고 싶은 집


 


그 여자네 집


어느 날인가


그 어느 날인가


못밥을 머리에 이고 가다가 나와 딱 마주쳤을 때


"어머나" 깜짝 놀라며 뚝 멈추어 서서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반가움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환하게, 들판에 고봉으로 담아놓은 쌀밥같이,


화아안하게 하얀이를 다 드러내며 웃던 그 여자


 


함박꽃 같던 그 여자


그 여자가 꽃 같은 열아홉 살까지 살던 집


우리 동네 바로 윗동네 가운데 고샅 첫 집


 


내가 밖에서 집으로 갈 때


차에서 내리면 제일 먼저 눈길이 가는 집


그 집 앞을 다 지나도록 그 여자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지는 그 여자네 집


 


지금은


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그 집, 내 마음속에 지어진 집


눈 감으면 살구꽃이 바람에 하얗게 날리는 집


눈 내리고, 아, 눈이, 살구나무 실가지 사이로 목화송이 같은 눈이


사흘이나 내리던 집, 그 여자네 집


언제나 그 어느 때나 내 마음이 먼저 가 있던 집


그 여자네 집 생각하면. 생각하면 생. 각. 을. 하. 면....


 


 


세계 명사 길러낸 그 말씀 그 행동


 


아버지는 인생 코치. 남이 한다고 나쁜 일 해선 안 돼.


 


 


마가렛 대처 전 영국총리


 


마거렛 대처 전 영국 총리는 구멍가게 집 둘째 딸이었다. 아버지는 열세 살 때 학업을 중단하고 사립 초등학교 급사로 취직했다. 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버리고 열심히 일하다가 구멍가게로 옮겨 노력한 결과 마침내 자기 가게를 차렸다.


 


아버지는 항상 최고 품질의 상품을 갖춰 놓고 어린 마거렛에게 가게 일을 거들게 했다. 자루 째 들어오는 설탕과 차를 조금씩 저울에 달아 작은 봉지에 나눠 담는 일을 주로 맡겼다. 집이 곧 일터라 티타임에도 딸과 함께 대화를 깊이 나누곤 했다.


 


독실한 감리교 신자였던 아버지는 설교를 아주 잘 했다. 일찍 중단한 학업을 보충하기 위해서 데일리 텔리그래프 등 신문과 각종 잡지를 열심히 구독했기 때문에 재미있는 사례 등 내용이 알찼다. 강단에만 서면 벌써 성경 말씀에 감동돼 평소 사용하지 않는 독특한 어조로 바뀌는 것이 어린 딸에겐 이상하게 보였다.


 


일요일이 되면 온 가족이 교회에 살다시피 했다. 마거렛은 부모님과 함께 오전 11시 예배에 참석 하기 앞서 주일학교 아침반으로 달려갔다. 오후반도 있었다. 양쪽 다 참석했다. 열두 살 때부터는 피아노 반주를 맡아 봉사했다.주일 저녁 예배까지 온 가족이 참석했다.


 


마거렛이 보기엔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핑계거리만 있으면 빠져 나갈 궁리를 하다가 아버지께 슬쩍 운을 떼 보았다. "제 친구들은 다 교회 대신에 산보를 가는데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 "남들이 한다는 이유만으로 옳지 않은 일을 해선 안 된다."


 


아버지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영화구경을 가고 싶어도, 댄스파티에 가고 싶어도 꼭 같이 당부했다. 그렇다고 매사에 완고한 것만도 아니었다. 교인 한 사람이 손버릇 나쁜 아들 때문에 골치를 앓는 친구의 문제를 갖고 아버지를 찾아왔다.


 


"애비의 은행 예금을 몰래 빼내 달아났다가 다 탕진하고 빈 털털이로 처자까지 거느리고 돌아왔다는데 어찌해야 될까요?"


"자네 생각은 어떤가?"


"이미 글러 빠진 놈이라 앞으로도 좋은 일 할 가망성은 눈꼽 만큼도 없습니다. 집 안에 들여 놓을 생각일랑 아예 말고 문간에서 쫓아내는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네. 한번 아들은 영원한 아들이야. 가족에게로 돌아 왔으면 모든 식구들이 따뜻하게 맞아 주어야지. 어떤 일을 당해도 집으로 돌아 올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이웃의 신망이 두터웠던 아버지는 시의원도 지냈다. 2차 대전 때 이웃마을에 군부대가 주둔해 있었을 때였다. 일요일에 가게 문을 닫아온 관행을 깨고 영업을 허용할지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대세는 계속 문을 닫자는 쪽이었다. 아버지는 상식적인 교인의 틀을 깨고 말했다.


 


"주일에 영업을 함으로써 군인들에게 갈 곳이 생깁니다. 그렇게 되면 안식일을 차분하고 조용하게 지내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게 됩니다."


 


일요일을 특별한 날로 지키길 원하면서도 융통성을 잃지 않았던 아버지의 태도는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전쟁이 끝날 무렵 아버지는 부시장을 거쳐 시장으로 선출됐다. 매일 사람들이 집에 찾아와서 시정 현안들을 놓고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거렛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정치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한해 남짓 시장으로 일하던 아버지는 부시장으로 내려 앉아 6년간 활동하다 그만두게 됐다. 1952년 선거에서 시 의회를 장악한 노동당이 표결로 부시장 자리를 박탈했던 것이다. 지역사회의 공익보다 당리당략을 앞세운 횡포라는 여론이 들끓었지만 아버지는 표결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명예로운 퇴진의 길을 선택했다.


 


"비록 전복 당했어도 내 발등에 넘어졌다. 들어 올 때도 만족스러웠고 나갈 때도 만족한 것이 바로 지금 내 심정이다."


 


아버지가 시청을 떠나면서 남긴 마지막 말은 딸의 마음 판에 깊이 새겨졌다. 마거렛은 훗날 대영제국 최초의 여성총리가 돼 <철의 여인>이란 별명을 얻으면서 과감한 국정쇄신으로 영국병을 치유하고 강대국의 위상을 회복한 다음 보수당의 젊은 기수 존 메이저에게 당수직을 물려주고 은퇴한다.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 명예로운 퇴진의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탐욕의 종점


 


한 농부가 부지런히 일해 제법 넓은 농지를 갖게 됐다. 그는 항상 더 많은 땅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 괴로웠다. 그런데 일정액의 돈을 내면 자기가 소유하고 싶은 만큼의 땅을 가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농부는 자신의 소유를 모두 팔아 그곳으로 갔다. 과연 그곳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평야가 펼쳐져 있었다.광야의 추장은 농부에게 말했다.


 


"당신이 하루 종일 걸어다닌 만큼의 토지를 소유할 수 있소. 단 해가 지기 전에 출발점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단 한 평의 땅도 소유할 수 없습니다." 농부는 중얼거리며 마라톤 선수처럼 광야를 질주했다. "내 땅…. 해가 지기 전에…"


 


그는 많은 땅을 차지할 욕심에 단 한 순간도 쉬지 못했다. 태양이 막 대지에 얼굴을 묻을 무렵, 그는 출발점에 도착했으나 쓰러져 죽고 말았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 탐욕의 종점에는 '불행'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맥도널드 납품 감자대왕 존 심플롯


 


버린 돼지 주워다 키워서 재벌로 성장


 


맥도널드 햄버거에 튀김용 냉동감자를 공급, 재벌로 자수성가한 존 리처드 심플롯은 아이다호주의 깡촌 농가에서 자랐다. 1908년생으로 여섯 살 때부터 집안일을 돕기 시작해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우유를 짜고 집안일을 거들어야 했다.


 


아침 일이 끝나면 간단한 요기를 하고 3km 남짓 떨어진 단칸 교실 미니학교에 갔다가 수업이 끝나는 대로 곧장 집에 와서 일을 거들어야 했다. 도중에 만약 옆길로 새서 친구들과 놀기라도 하면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일손 하나가 당장 아쉬운데 어디 가서 놀다 왔는가."


 


고된 노동의 연속이었지만 쉴 틈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여름날 개울에서 멱감을 때와 일요일에 주일학교에서 찬송가를 부르거나 기도할 때는 숨통이 틔었다. 그리고 매일 저녁 일을 끝내고 어머니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것도 좋았다.


 


가장 큰 낙은 사냥.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총 다루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농장과 스네이크강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오리와 토끼 사냥을 즐겼다. 하지만, 일단 집에 돌아가면 고된 일의 연속이었다.


 


존이 여덟 살 되던 1917년이었다. 평생 농사일만 하던 아버지가 쉰을 넘기면서 편한 일을 찾아 농장을 팔고 캘리포니아주의 베니스로 이사해 양계장을 차렸다. 농사일에 비해서 쉴 틈이 많았지만 스코틀랜드 골수 장로교의 혈통 속에 내려오는 사업 체질이 어린 존을 가만히 쉬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눈깔사탕 사 먹을 돈 5센트로 신문 두 부를 사서 팔고 남은 이익금으로 두 부를 더 샀다. 여덟 살 때 벌써 투자에 눈을 뜬 셈이다. 오늘 눈깔사탕 한 개를 참으면 장차 막대사탕 한 봉지를 쥘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계속 신문을 사고팔면서 상당한 돈을 불렸다.


 


단골들을 확보 배달 망을 구축했을 때 큰 아이들이 나타나 자기네 구역이라면서 쫓아냈다. 존은 시내 사무실을 돌면서 신문을 뿌렸다. 신문을 돌리는 틈틈이 길에 떨어진 고철 동물 뼈 넝마를 주어다가 고물상에 팔았다. 주말에는 6km 넘게 떨어진 골프장까지 걸어가서 캐디로 일했고, 영화 <지상최대의 쇼> 촬영팀이 길 건너에서 야외촬영에 들어가자 형과 둘이서 엑스트라로 출연해 돈을 벌었다.


 


신문 배달도 농사일처럼 새벽 네 시에 시작했다. 선잠이 깨 졸릴 때면 아이다호시절부터 간직한 꿈인 양떼를 가졌다고 상상하고 마리 수를 헤아리며 걸었다. 하얀 털이 보숭 보숭한 양떼로 덮인 들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찼다.


 


캘리포니아 생활은 2년 만에 끝났다. 아이다호 농장을 산 사람이 할부금을 갚지 못해 은퇴계획에 차질이 생긴 아버지가 식솔을 이끌고 다시 깡촌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열한 살 된 존은 다시 새벽부터 오후 늦게까지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다. 여름이면 소떼를 몰고 풀을 먹이는 일도 했다.


 


1년 남짓 뼈 빠지게 일하자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집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노자 돈은 이웃 농가에서 버리는 새끼 양 40마리가량을 수집해서 키운 다음 되팔아 140달러를 장만했다. 1922년 당시 열네 살짜리 소년에겐 참으로 큰돈이었다.


 


이 돈으로 고장 난 포드 모델T 픽업트럭을 한 대 사서 고친 다음 부모 슬하를 떠나 대처인 델코로 나가서 하루 숙식비 1달러의 허름한 여관에 방을 잡았다. 그런데 짐승의 비명소리가 계속 들렸다. 알아보니 돼지고기 값이 폭락해 사료비도 못 건지게 된 농부들이 새끼 돼지를 몰살해 구덩이에 묻을 때 나는 소리였다.


 


아무리 짐승이지만 살아 있는 생명체를 죽이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은 부근 농가들을 찾아다니면서 새끼 돼지들을 주워 모았다. 대부분 거저 얻었지만 몇 달러를 집어 주기도 했다. 열심히 뛰었더니 그해 12월까지 700마리 가량을 모았다.


 


이걸 다 먹여 살리자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양 같으면 건초에다 약간의 곡식을 섞어 먹이면 되지만 돼지는 달랐다. 겨울을 나자면 엄청난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필요했다. 겨우내 체중을 불려 팔려고 해도 문제였다. 이미 공급과잉이라 파산할 게 뻔했다. 아버지는 미친 짓을 한다며 절대로 도와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동네 사람들은 존이 빈 털털이가 돼 부모 집으로 슬그머니 숨어들어 올 날이 머지않았다고 숙덕거렸다.


 


존은 이들의 말을 완전히 무시했다. 아버지의 농장에다 돼지우리를 지어 구유를 설치했다. 동네에서 버리는 농산물로 여물을 쑤어 먹임으로써 돈 한 푼들이지 않고 키울 계획이었다. 썩 좋은 계획은 아니었지만 일단 착수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커다란 쇠 냄비를 만들어 걸고 연료로는 야생 쑥과 폐타이어 더미를 태워서 농장에서 버리는 불량감자 등 채소와 건초를 섞은 데다 강물을 부어 꿀꿀이죽을 쑤어서 먹였다. 일단 연명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체중이 도무지 불지 않았다. 포동포동 살이 찐 놈도 제값을 받지 못할 판인데 야윈 돼지가 팔릴 리 없다. 단백질을 먹여야 했다.


 


스네이크강 유역과 고지에는 야생마 떼 수천마리가 살고 있었다. 굉장히 빨리 달리는 놈들이지만 픽업트럭으로 쫓아가면 따라 잡을 것 같았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레밍턴 엽총을 싣고 사냥에 나섰다. 그 결과 겨우내50마리 가량을 잡았다. 가죽은 벗겨서 한 장에 2달러씩 받고 팔았더니 휘발유 값이 빠졌다. 고기는 잘게 썰어 불량 감자와 섞어 사료로 썼다.


 


결과적으로 돈 한 푼 안들이고 700마리의 돼지를 친 셈이다. 가난한 사람의 유일한 자본인 노동만 투자했을 뿐이다. 봄이 되자 돼지고기 품귀 현상이 일어나 값이 치솟았다. 파운드 당 7센트를 받고 7백 마리를 몽땅 처분했더니 7,800달러짜리 수표가 들어 왔다. 열네 살에 부자가 된 것이다.


 


존은 이 돈으로 농토를 사서 아이다호 특산물인 붉고 길쭉한 러셋감자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그냥 농사만 짓는데 그치지 않고 최신 선별기를 들여다 자기네 것은 물론 이웃 농장 감자도 선별해 줌으로써 사용료를 받아 사업을 크게 확장했다. 2차 대전 때는 군납 특수로 공급이 달리자 육군성 감독관이 공장에 파견돼 건조감자 생산을 독려할 정도였다. 1946년에는 새로 개발된 튀김 냉동기술을 도입함으로써 60년대 초 맥도널드 햄버거에 튀김용 감자를 납품하는 길을 열었다.


 


신기술 도입과 모험을 두려워 않는 존은 1979년 일흔 살에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사를 창설하여 반도체 제조업에 진출했다. 미국 경제에 불황이 절정에 달했던 1982년에는 처음으로 매출액이 10억을 돌파한 다음 일본-한국 등 아시아 경쟁사들을 덤핑제소 등으로 물고 늘어졌다.


 


1995년 컴퓨터 제조업체인 <마이크론 전자>를 설립, 직접 판매 부문에서 3대 회사에 끼였다.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1997년 포춘 500대 기업 가운데 370위로 끼어들었으나 창립 20주년을 맞은 이듬해 1987년 이후 처음으로 당기 순 손실을 기록해 주가가 폭락하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1998년 9월 <텍사스 인스트러먼트>의 메모리칩 부문을 인수 합병함으로써 세계 최대의D램 제조업체로 발돋움했다. 새끼 돼지로 출발하여 첨단 반도체산업으로 진출, 성공한 존은 공짜로 얻어 낼 수 있는 것은 철저히 챙기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몇 년 전에는 자기 목장을 연방 초지보호 프로그램에 넣어 재산세 등 각종 세금 감면 혜택을 받고 있는 부자와 저명인사 명단에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미 기독교도 이혼율 일반인 보다 높아


 


최근 미국에서는 기독교인들의 이혼율이 일반인보다도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이를 계기로 진정한 신앙회복운동을 펴자는 목소리가 높다. 미 캘리포니아의 전문조사기관 BRG (Barna Research Group)가 미국 성인 4천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종파별 이혼율은 독립교회 교인들 34%, 침례교 29%, 몰몬 24% , 카톨릭21%, 무신론자들 21% 순이었다.


 


특히 조사 대상 중 회심 교인들의 이혼율은 27%로 모태신앙 교인들의 24%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결과는 결혼 전후 언제 신앙을 갖게 됐는지 여부를 구분하지 않았지만 조사 관계자는 조사 대상이 된 회심자들 중 90%가량이 이혼 전에 신앙을 접했다고 밝혔다.


 


미 기독계 한 가정 상담가들은 이 같은 조사결과에 대해 성경이 정한 불변의 진리 대신 상황윤리가 미국 교계에 만연해 성경적 신앙이 아니라 단순한 위로의 한 수단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진정한 신앙을 되찾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립 가정연구원 쟈넷 파샬 대변인은 정말 우려스러운 결과라고 전제한 뒤 이는 우리가 진정 진리에 따르지 않고 신앙을 위안의 수단으로만 여기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국내의 경우 지난해 말 한 결혼 정보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평균 이혼율이 이상을 기록했으나 기독교인들의 이혼율은 10%대로 가장 낮은 것으로 조사됐으며 이는 신앙으로 갈등을 극복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정직과 신뢰의 보증수표


 


한 유대인 어머니가 아들과 함께 백화점에 들러 양복과 외투를 샀다. 그들은 집에 돌아와 포장지를 뜯었다. 그런데 아들의 양복 주머니에 다이아몬드 반지가 들어 있었다. 반지는 어머니의 손가락에 잘 어울렸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양복주머니에 반지가 들어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이건 어머니의 것입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백화점으로 가서 주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백화점 주인이 말했다. "옷을 사신 분이 반지의 주인입니다. 왜 반지를 돌려주려 하십니까." 어머니는 아들의 얼굴을 한번 바라보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옷을 샀을 뿐입니다. 반지를 산적은 없소. 저는 유대인이거든요."


 


이 모습을 본 아들은 어머니로부터 평생 잊지 못할 '유대인의 정직'을 배웠다. 그것은 반지와 비교할 수 없는 값진 교훈이었다. "저는 크리스천이거든요." 이 말이 '정직'과 '신뢰'의 보증수표가 돼야 한다.


 


 


성경, 2233개 언어 번역… 98년 말보다 21개 늘어


 


성경은 현재까지 세계 2233개 언어로 번역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대한성서공회가 최근 밝혔다. 세계성서공회연합의 지난해 말 통계조사결과 성경이 번역된 언어는 1998년 말 보다 21개가 늘어났다는 것. 세계성서공회연합은 지난해 말 현재 전 세계의 언어를 6500개로 추산했다. 조사결과 신약과 구약이 모두 번역된 언어는 371개, 신약만 번역된 언어가 960개로 나타났다. 누가복음. 마태복음. 등 성경의 일부 내용만 옮긴 “단편번역”은 902개 언어로 조사됐다.


 


지난해에는 120만명의 부족이 사용하는 인도네시아의 팍팍 다이리(Pakpak Dairi)어, 84만 명이 쓰고 있는 수단의 누에르(Nuer)어, 15만 명이 사용하는 차드의 아즈메이나(Azmeina)어 등으로 성경이 완역됐다. 또 인도의 마링(Maring)어, 솔로몬군도의 온통 자바(Ontong Java)어와 움브운구(Umbu Ungud)어 등으로 신약이 번역됐다.


 


단편 번역으로 성서 언어에 추가된 것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펴낸 파키스탄의 닥키(Dhatki)어, 누가복음을 출간한 방글라데시 실헤티(Sylhetti)어 등 19개 언어. 지금까지 성서 번역에 쓰인 언어를 대륙별로 보면 아프리카 627개로 가장 많고 이어 아시아 535개, 대양주 396개, 중남미384개, 유럽 197개, 북미 73개 등이다. 전년에 비해 대양주 언어 11개, 아시아어 6개, 아프리카어 3개, 중남미어 1개가 각각 늘어났다.


 


 


사고의 전환


 


두 나그네가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너무 오랫동안 걸었기 때문에 완전히 탈진하고 말았다. 나그네가 어느 집에 들어서니 천장에 탐스런 과일이 담긴 바구니가 매달려 있었다. "저 과일을 꺼내먹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나그네는 침을 삼켰다. 한 나그네는 투덜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저것은 너무 높은 곳에 매달려 있어. 단지 그림의 떡일 뿐이야." 그러나 다른 나그네는 과일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누군가가 저곳에 매달아 놓았다면 반드시 꺼낼 수도 있을 거야." 나그네는 위층으로 올라가는 층계를 찾아내 과일을 먹을 수 있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확연히 달라진다. 아무리 힘든 일도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차근차근 추진하면 반드시 목표에 도달한다. 그러나 "나는 안 돼. 할 수 없어."라고 포기하는 사람은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초등학교 1학년 독서교육이 선진국-후진국을 가른다.


 


글자를 가르치기보다 전문교사와 학부모가 규칙적인 독서습관 을 길러 줌으로써 6학년이 되면 논픽션을 읽고 자기가 모르는 분야를 알아내는 수준까지 인도하여 주는 것이 목표.


 


지난해 섣달 그믐날에 있었던 이야기로서 7번 지하철을 타고 맨하탄으로 나오는데 한 가족이 우르르 몰려들어 왔다. 울긋불긋 산뜻한 옷차림에 카메라를 든 모양새가 외지에서 온 관광객이 분명했다. 일행이 자리에 앉자마자 아이 넷이 제각각 떠들기 시작했다. 온 승객의 시선이 쏠리는 순간, 어머니가 그림책을 꺼내서 읽어 내려가자 차 안이 금새 조용해졌다. 또박또박 읽는 소리로 봐서 공룡에 대한 책인데 이따금 아이들이 질문을 던지면 잠시 멈추고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이 정겹기 짝이 없는 한 장면이었다. 하도 기특해서 바로 옆에 앉은 애들 아버지에게 말을 붙여 보았다.


 


- 집에서도 평소에 책을 저렇게 잘 읽어 주는가?


"그렇다."


 


- 읽는 솜씨가 보통이 아닌데.


"아주 잘 읽는다. 초등학교에서 독서를 가르친다."


 


- 어디에 있는 학교인가?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있는데 우월반이 있어 독서를 잘 하면 상급반 학생들과 같은 수준의 책을 읽히는 과정이 좋다고 전국적으로 소문이 났다."


 


미국에서 책은 학교와 집에서만 읽는게 아니다. 지하철에서 보면 누구나 책 한권을 들고 읽는다. 백발의 호호 할머니가 로맨스 소설 포켓북을 열심히 읽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책을 부지런히 읽는 국민임을 알 수 있다.


 


유학생 신분으로 중서부의 대학원에 와서 공부할 때가 생각난다. 과제물은 쌓이는데 읽는 진도가 안나가 안타까울 때 미국인 클래스메이트들이 두꺼운 책을 몇 권씩 읽고서 리포트를 척척 써 내는 것이 부럽기 짝이 없었다. 같은 처지에 있는 한국 유학생들끼리 모였을 때 주고받던 말은 이랬다.


 


"미국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고기를 많이 먹어서 체력이 좋아 밤새워 책을 읽어도 끄떡이 없다."


 


모든 것을 체력 탓으로 돌리고 넘어갔던 비밀이 풀린 것은 91년초. 워싱턴특파원으로 부임하면서 서울에서 유치원을 나온 막내딸을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시켰다. 영어라곤 한마디도 못하는 애를 학교에 넣고 걱정이 태산 같은데 담임선생은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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