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예화
본문
설교 예화
▶예산에서 치과 병원을 경영하는 배재 고등학교 친구가 있습니다. 형이 사업을 하다가 갑자기 죽었습니다. 급작스런 죽음이었습니다. 큰 사업가라 줄 돈도 많고 받을 돈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돈을 받을 사람들은 채용증서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7억 원이었습니다. 그런데 받을 돈은 10억도 넘는다는 데 <내가 돈을 주어야 할 사람입니다>라고 나타난 이는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줄 돈은 다 주고 받을 돈은 하나도 못 받았다고 한탄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받을 것은 꼭 기억하고 줄 것은 잊어버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위대한 사람들의 생애를 보면 실수를 안 한 것이 아니라 실수하였을 때 더 잘 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과거 실수를 기억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실수도 도말하셨습니다.
어느 아이가 옆집 소 옆에서 놀다가 돌로 소를 맞히어 죽였습니다. 주인이 붙들어 경찰에 넘기려고 할 때 아버지가 와서 소 값을 넉넉히 물어 주고 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잘못 했어요. 용서하세요.> 아버지는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버지! 왜 아무 말도 안 하세요. 왜 야단치지 않으세요.>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용서를 빌었으니 야단치지 않는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사람은 어렸을 때 모두 나름대로 꿈을 가지게 됩니다. 다들 장차 나는 어떤 사람이 되겠다 하는 꿈과 기대와 생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꿈이 성장한 후에 그대로 성취되는 분이 있고, 그것은 아니더라도 그 방향으로 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분명한 꿈과 포부를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세기를 움직였던 위인들을 보면 한결같이 어렸을 때부터 이런 원대한 꿈과 포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율곡은 청년들에게 주는 글에서 '청년은 무엇보다도 먼저 입지를 세우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뜻을 세우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청년은 이미 세상을 다 살아간 세대가 아니고 이제 세상을 살아야 할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프랑스의 어머니들은 아이들의 공부방에 나폴레옹이 백마를 타고 눈 덮인 알프스 산을 올려다보고 있는 그림을 걸어 준다고 합니다. 그 사진을 보고서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나폴레옹이 백마를 타고 알프스 산을 올려다보고 있는 사진은 얼마나 기고만장한 모습이겠습니까? 미래에 대한 꿈은 이렇게 야무지고 기대에 부풀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청년이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만이 가질 수 있는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이태백이라는 사람이 노년에 가서 의기 소침해서 시골로 돌아다니면서 소일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산중 오두막 집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밤을 보내고 아침이 되었는데 주인 노인이 일찍 일어나서 숫돌에 무엇인가 열심히 갈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보니까 큰 쇠절구를 숫돌에 열심히 갈고 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무엇 하려고 그렇게 열심히 갈고 있습니까?" 그랬더니 노인이 대답합니다. "예, 바늘을 만들기 위해서 갈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 큰 쇠절구를 가지고 바늘을 만들기 위해서 다 늙은 노인이 매일같이 열심히 갈고 있습니다.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어느 세월에 그 큰 절구가 갈아져서 바늘이 되겠습니까? 그렇지만 그 노인은 열심히 갈고 있습니다.
그 모습에 이태백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고는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붓을 잡은 것이 계기가 되어 그렇게 유명한 문필가가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뜻이나 목적은 어느 날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쉽게 어떻게 하다 보니까 만들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거기에는 기다림과 숙성기와 수고가 뒤따라야 합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이 기다림의 훈련이 안 되어서 도중에 포기하고 좀 기다려 보다가 곧 집어치워 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은 무엇보다도 이 기다림의 훈련이 부족한 시대입니다.
그래서 20대에는 패가가 있고 30대에는 오기가 있고 40대에는 포기가 있다고들 말합니다. 사람이 20대에는 패기가 있습니다. 무엇이든 하면 될 것 같은 자신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해보니까 일이 생각대로 잘 안 됩니다. 그래도 한 번 더 해봅니다. 그것이 오기입니다. 기다리며 한 번 더 해보는 것이 아니고 오기로 한 번 더 해보는 것입니다. 해보았더니 또 안 됩니다. 그래서 곧바로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 일을 시작했다가 며칠 안 되어서 포기해 보리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어떤 분이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새 집의 거실에 놓을 좋은 도자기 하나를 사기 위해서 어느 유명한 도자기 가게에 잠시 들렀습니다.
때마침 그의 마음에 꼭 드는 꽃병 하나가 유리관 속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도자기 가게의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참 멋있는 작품입니다. 제가 저 꽃병을 사고 싶은데 값은 얼마입니까?" 그러자 주인은 뜻밖에도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 꽃병만큼은 온 세상을 다 준다 해도 팔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저는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술주정뱅이에 노름꾼이었습니다. 저는 마귀에게 사로잡힌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저는 친구의 권유로 교회에 출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길에 저는 우연히 쓰레기장 주변에 버려져 있는 진흙덩이를 발견했습니다. 저는 그 진흙덩이를 보는 순간 저도 모르는 힘에 이끌려서 그것을 퍼 담아 들고서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진흙을 반죽해서 만든 것이 바로 이 꽃병입니다."
그 뒤로 도자기 가게의 주인은 이 꽃병을 보면서 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진흙덩이가 변해서 저토록이나 아름다운 꽃병이 되었다면, 나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닿기만 하면 얼마든지 새사람으로 변할 수 있겠구나.'
그때부터 그는 간절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많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그는 진흙처럼 지저분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쁜 꽃병처럼 성결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그 꽃병은 자기의 분신과도 같았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그 꽃병은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꽃병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팔지 않고 계속해서 간직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야곱이 임종할 때 마지막 유언은 ‘자기의 유골을 애굽 땅에 묻지 말고 가나안 땅에 묻어 달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야곱은 나이가 들수록 믿음이 더욱더 뜨거워졌습니다.
우리도 야곱처럼 나이가 들수록 우리의 신앙이 더욱더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나무는 세월이 갈수록 속이 텅 빈 고목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신앙의 고목이 아니라 신앙의 거목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냄비처럼 쉽게 뜨거워졌다가 쉽게 식어버리는 믿음이 아니라, 뚝배기처럼 뜨거움이 계속되는 믿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노루 몰이를 합니다. 노루는 정신없이 위를 향해서 올라가고 또 올라갑니다. 노루는 발이 아주 빠르기 때문에 움직일 때는 여간해서 잡을 도리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노루를 산봉우리로 계속해서 몰아 올라갑니다. 노루가 산봉우리에 오르면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기 때문에 그 자리에 멈추어 섭니다. 그때 산봉우리에는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옵니다. 그러면 노루는 시원한 바람에 도취되어 긴장을 풀어버립니다. 그래서 자기가 지금 사냥꾼들에게 쫓기고 있다는 사실조차 까먹어버립니다. 바로 그때를 틈타서 사냥꾼들은 노루를 잡는다고 합니다.
여러분! 영적인 견지에서 보면 노루와 같은 신자들이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하나님께 매달려 열심히 부르짖습니다. 믿음이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열심이 뚝 떨어져 버립니다.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배은망덕한 신자입니다.
어떤 사람이 암에 걸렸습니다. 병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매달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기적을 베푸셔서 그의 병을 낫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내가 살아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너무나도 놀랍고 고맙습니다." 그러더니 얼마 되지 않아서 그의 말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은 의술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모릅니다. 옛날 같으면 저는 벌써 죽었을 것입니다." 그 정도로 끝나지 않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이제는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다 좋지만 무엇보다도 본인의 의지가 강해야 합니다. 음식도 가려서 먹고, 운동도 꾸준히 해야 합니다. 내가 살 수 있다는 확실한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으로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하나님이 쑥 빠져버립니다. 우리의 신앙이 이와 같아서는 안 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의 믿음은 점점 더 깊어져야 합니다. 야곱처럼 믿음을 따라서 살아가십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날, 믿음을 따라서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마감하고 하나님의 품에 영원히 안길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1858년 뉴욕의 어느 가정에 한 어린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이 아이는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습니다. 다리가 너무 가늘었습니다. 그래서 뛰는 것은 고사하고 제대로 걷기도 어려웠습니다. 시력도 나빴습니다. 천식이 있어서 앞에 놓여 있는 촛불을 불어서 끌 기력도 없는 쇠약한 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가진 장애로 인해서 괴로워하지 말아라. 네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너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이다. 그래서 너는 너의 장애 때문에 오히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너를 주목하는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축복 속에 자랐습니다. 그는 열심히 운동을 해서 체력을 단련했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사람보다도 더 왕성한 활동을 펼쳐 나갔습니다. 그는 23세의 젊은 나이에 뉴욕주의원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그 뒤 그는 여러 요직을 거쳐서 부통령이 되고, 43세에는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미국의 26대 대통령 데오도르 루즈벨트입니다.
그는 대통령 시절에 파나마 운하 건설을 추진했으며, 1906년에는 러·일 전쟁을 종식시킨 공헌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믿음으로 그를 축복한 그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는 자신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는 훌륭한 인물이 된 것입니다.
▶옛날 미국의 시카고에 한 부자가 살았습니다. 그는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 자기가 가진 땅에 큰 양조장을 짓기로 했습니다. 술 만드는 공장을 짓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당시 시카고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D. L. Moody를 초청했습니다.
공장의 터를 닦아 놓고 기공식을 올리는 날이었습니다. 내심 무디가 와 줄지 걱정도 되었지만, 무디가 와주었습니다. 드디어 무디가 축복 기도하는 순서가 되었습니다. 무디는 강단에 올라서더니 큰 소리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만약 이곳에 양조장이 들어선다면 그 즉시 망하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땅의 임자가 물질만 밝히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사람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그리해서 그의 마음을 바꾸어서 이 땅에 양조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지게 해 주시옵소서."
그렇게 축복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땅의 임자가 무디의 기도를 사람의 말로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양조장을 짓겠다는 그의 계획을 취소해 버리고 그곳에 교회를 지었습니다.
그 뒤에 그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는 하나님의 은혜에 얼마나 감사했겠습니까? 또 무디가 하나님의 뜻대로 축복해준 것에 대해서 또한 얼마나 감사했겠습니까? 그가 만일 자기의 뜻을 고집하면서 그곳에 양조장을 세웠더라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무척이나 죄스러웠을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 축복하되 하나님의 뜻이 그들의 삶 속에 이루어지도록 축복하십시다.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를 통해서 나타나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남북전쟁으로 한창 치열할 때였습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바쁜 와중에서도 주일이 되면 한 번도 빠짐없이 꼭 교회에 나와서 살아계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주일날 예배를 마친 뒤에 사회자가 뜻밖에도 이런 소식을 전했습니다.
"여러분, 앞으로 당분간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를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지금 전쟁이 매우 치열합니다. 사상자가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건물을 개조해서 당분간 병원으로 만들어 나라를 위해서 봉사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각자가 전쟁이 끝날 때까지만 집에서 개인적으로 신앙생활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소리를 들은 링컨 대통령은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안됩니다. 그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물론 전쟁이 치열한 것은 사실입니다. 사상자가 많이 생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떻게 교회를 바꾸어서 병원으로 사용할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을 중단할 수가 있습니까? 우리는 나라가 어려울수록 더욱더 하나님께 간절히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링컨 대통령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병원으로 개조해서 봉사하겠다는 계획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 계속해서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남북전쟁은 북군의 승리로 끝날 수가 있었습니다.
▶ 미국의 역사상 존경받는 대통령을 꼽으라면 링컨과 루즈벨트입니다. 루즈벨트는 경제적 대공황을 극복한 대통령입니다. 그런데 그가 사랑받는 대통령이 되기까지 훌륭한 부인의 내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엘레나 라는 부인과 결혼을 했습니다. 자녀를 여섯 명을 낳았습니다. 너무 가난하고 힘든 환경 속에서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 아이를 잃어버리기도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어느 날 남편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다리가 점점 마르기 시작합니다. 치료가 되지 않아서 다리를 절게 되었고, 마침내 남편은 휠체어를 타야만 했습니다. 이것을 안타깝게 지켜본 친척 중에 한 사람이 엘레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어렵고 힘든데 이혼을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엘레나는 유명한 대답을 했습니다. ‘제가 사랑한 것은 남편의 다리가 아닙니다. 저는 남편을 사랑했습니다. 저는 남편의 다리 때문에 결혼 한 것이 아니라 남편을 사랑했습니다. 그 다리가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 우리의 관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가 없습니다.’ 엘레나의 조건을 뛰어 넘은 사랑의 힘이 가정을 지킬 수 있었고, 장애인 루즈벨트를 미국 최고의 대통령으로 만들게 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부부관계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부부란 10대에는 서로가 꿈속에서 살고, 20대에는 서로가 신이 나서 살고, 30대에는 서로가 환멸을 참으며 살고, 40대에는 서로가 체념하고 살고, 50대에는 서로가 가엾어서 살고, 60대에는 서로가 없어서는 안 되니까 살고, 70대에는 서로가 고마워서 산다.”고 했답니다. 여러분들은 어느 세대에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 때문에’ 서로 사랑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아멘!/
▶한 동네에 앞뒷집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앞집에서 시어머니가 솥에 밥을 안치고 새로 맞은 며느리에게 불을 때라고 했습니다. 밥 짓는 경험이 없던 며느리는 밥솥의 물이 넘치는 것도 모르고 계속 불을 때고 있었습니다. 솥 안의 밥은 다 타서 냄새가 진동했고 솥은 금이 가 깨져버렸습니다. 겁에 질린 며느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습니다.
그 때 시어머니가 말합니다. "얘야, 내가 물을 너무 적게 부어 그렇게 됐구나! 걱정하지 말거라"고 위로했습니다. 또 시아버지가 옆에 있다가 "내가 부엌에 나무를 너무 많이 들여서 그렇게 됐구나. 내 책임이 크다"라며 위로했습니다. 신랑이 있다가 "내가 물을 너무 적게 길어 와서 그랬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위로합니다.
그런데 뒷집에서는 양조장을 하는 집이었는데 시어머니가 술밥을 솥에 잔뜩 안치고 새 며느리에게 불을 때라고 했습니다. 경험이 없는 새댁이 솥이 깨지는 것도 모르고 불을 땠습니다. 시어머니가 달려와 욕을 해댑니다. ‘도대체 넌 시집오기 전에 뭘 배웠니’하며 야단을 칩니다. 그때 옆에 있던 시아버지가 ‘대드는 며느리를 보고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냐?’고 호통을 칩니다. 옆에 있던 신랑은 부모에게 대든다고 자기 부인을 두들겨 팼습니다. 이 두 가정 속에 어느 가정이 행복할까요? 우리의 가정을 화목하게 합시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