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疑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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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疑心)에 대하여
의심의 낱말 뜻
1. 히브리어
카-나 - 질투심이 많은, 시기하는, 새암하는, 열심인, 열광적인, 부러움, 선망, 시기, 질투, 의심.
타-마 - 놀라다, 경탄하다, 놀랍게, 의심하다, 수상히 여기다, 이상히 여김.
2. 헬라어
디아크리노 - 주저하다, 구별하다, 의심하다, 판단하다, 흔들리다.
디알로기조마이 - 숙고하다, 논의하다.
디알로기스모스 - 토론하다, 논쟁하다, 의심하다, 의심스러운(상상, 추리, 사고)
3. 한자
疑心 - 미심하게 여기는 생각. 못 믿는 마음.
의심에 대한 성구
1. 어떤 것에 의심을 하는가?
민5:14 - 부부간에 의심 눅24:38 - 예수님의 부활
롬4:20 - 언약을 롬14:1 - 믿음이 연약함을
롬14:23 - 음식물을 약1:6 - 기도의 응답을
2. 왜 의심을 하는가?
마14:31 - 믿음이 적어서 마21:21 - 믿음이 없어서
요13:22 - 무지해서 행10:20 - 사실을 몰라서
갈4:20 - 신분을 확실히 몰라서
3. 의심을 하는 자의 결과
막11:23 - 이적이 나타나지 아니함 마14:31 - 물에 빠지게 됨
롬4:20 - 요동하게 됨 약1:6 -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하게 됨
귀중품 보관
어떤 신사가 여행을 하다가 허름한 호텔에 묵게 되었다. 빈 방이 없어서 다른 사람과 한 방을 같이 써야 했다. 밤이 되었다. 그런데 영 잠이 오질 않았다. 저쪽 침대의 손님도 잠이 오질 않는지 잠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잠이 오지 않은 건 옆 자리의 손님 때문이었다. 그 손님이 잠시 밖으로 나간 사이 그는 얼른 일어나 여행비가 든 지갑과 귀중품이 든 가방을 들고 현관으로 나갔다. 그리고 물품보관소로 갔다. 자기가 잠든 사이에 옆자리의 손님이 자기의 귀중품을 훔쳐갈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때 호텔직원이 말했다.
"같은 방에 계신 또 한 분의 손님도 방금 귀중품을 맡기고 가셨습니다."
따질 것 없습니다.
뜨거운 여름 햇볕 아래서 일하던 농부가 호두나무 밑 그늘에 앉아 쉬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농부가 쉬면서 우연히 눈이 가서 바라보게 된 것은 호박넝쿨에 매어 달린 큼직한 한 개의 호박이었다.
농부는 혼자 중얼거렸다.
"하나님도 참! 왜 저렇게 무거운 호박이 약한 넝쿨에 매어 달리게 만드셨담? 넝쿨은 약하고, 호박은 무거우니, 딱할 정도로 거의 땅에 닿을 듯이 매어 달려있지 아니한가?"
그러면서 머리 위의 호두나무를 바라보니, 더욱 하나님이 불공평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그 크고 든든한 호두나무 가지들에 겨우 작은 호두들이 매어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혀를 "쯧쯧"차면서 농부는 그늘에 잠시 눕자 곧 단잠에 빠지게 되었다.
그때에 "딱!"하고 호두가 하나 떨어지면서 농부의 머리를 때렸다. 깜짝 놀란 농부는 잠에서 깨어 벌떡 일어났다. 그는 아픈 머리를 얼른 어루만지며 크게 깨달아 하나님께 감사했다.
"아이쿠! 만약 저 큰 호박이 이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면 나는 정말 큰일 날 뻔 했구나! 하나님, 저 호박 넝쿨에 큰 호박을 매어다신 일은 참 잘하신 일입니다. 그리고 이 큰 호두나무에 작은 열매들을 매어다신 일도 정말 감사합니다!"
의심이 지나쳐 생긴 불행
제갈공명의 호적수로 그 이름을 천하에 떨쳤던 사마의의 후손은 진나라를 세워서 삼국시대를 마감하고 중국 천하를 통일한 것은 잘 알고 있다.
그 진나라도 잠시 후 골육의 난전(亂戰)인 8왕의 난을 겪으면서 약화되고 통제력을 잃자 결국 망하고 말았다.
중국 땅은 다시 난세로 돌입했는데 이 시대를 역사는 5호 16국 시대라고 한다.
이때 이미 망한 진나라의 후손들이 강남땅으로 쫓겨 가서 세운 나라가 동진이라는 나라이다. 이 동진이 양자강 이남에서 통치권을 행사하던 서기 350년경의 일이다.
동진의 무장 환온은 이웃에 위치한 한나라를 쳐서 멸하고 그의 위명을 천하에 떨치고 있었다. 이때 환온의 욱일승천(旭日昇天)하는 기세를 견제할 수 있는 인물로 각광을 받은 사람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그가 옛 제갈공명쯤 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상 은호는 허명만 있을 뿐 실제로는 지극히 못나고 어리석으며 옹졸한 사람이었다. 그는 사사건건 남을 방해하고 모함하며 가소로운 일들만 찾아가며 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어찌 전쟁인들 잘하랴. 전쟁터에 임한 그는 한마디로 속수무책이었고 우유부단한 자신의 결점만 만 천하에 드러내면서 결국 스스로 파멸을 초래 하고 말았다.
이런 형편이니 환온은 자연히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는 동진의 최고 실력자로 부상하게 되었다.
한편, 평민으로 전락하여 앙앙불락하며 지내던 은호에게 어느 날 환온으로 부터 한 장의 편지가 날아왔다. 편지의 내용인즉
[그대 은호는 재능이 없는 자가 아니요.일시 문제 처리방안을 잘못 선택한 것임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잘 알고 있소. 따라서 나는 그대를 상서령(부총리급)에 추천할까 하는데 그대의 뜻은 어떠한지 알려주오] 라는 것이 아닌가?
그는 즉시 떨리는 마음으로 환온의 제의를 수락하고 그의 온정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어떤 경우에라도 당신의 손 발 노릇을 충실히 수행할 것을 하늘에 두고 맹세한다는 내용의 답장을 적어서 봉함을 했다. 이제 그 편지를 부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이것이 얼마나 귀중한 편지인가? 혹 이것이 잘못되면 자신은 다시는 두 번 다시 재기 불능의 사람이 될 것이다. 어쩌다 편지 알맹이를 빼고 봉함한 것이 아닌가? 자기를 모함하는 사람이 있어서 편지 내용은 바꿔치지는 않았는지, 편지의 내용이 환온의 비위를 거스리는 것이 아닌지, 의심은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이렇게 하여 그 편지는 붙였다 다시 뜯고 다시 뜯어 확인하고 다시 봉함하고 하기를 무려 수십 번을 반복하다가 결국 환온에게 부쳤는데 잘 낳아보려고 벼르고 벼르던 자식 낳고 보니 언청이더란 말이 있듯이 은호는 결국 편지 내용은 빼고 겉봉만 보내고 말았다.
환온은 속이 빈 편지를 받고 은호가 자기의 제의를 거절하는 것이라고 단정하고 없었던 일로 처리하고 말았는데 은호는 이 일로 인하여 평생을 두고 한탄만 하다가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성경은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교훈하고 있다.
의심은 곧 불행과 직결된다.
성도간의 의심
만주 일대를 돌아다니며 교회를 순회하는 채필근 목사님은 가끔 선교부 돈을 가지고 각 교회에 나누어 주곤 했다. 한번은 돈을 잔뜩 넣고 순회하는 도중 외딴 곳에 이르러 객주 집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손님들이 많아서 둘이 묵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서로 잠자리에 누웠으나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혹시 저놈이 내 가 잠든 사이에 돈을 훔쳐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난 다음날 주인이 차려다 준 상에서 겸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둘은 할 수 없이 서로 마주 앉아 식사기도를 하고 식사를 했다. 그랬더니 마주 앉았던 사람이
"선생님, 예수 믿는 어른입니까?" 해서 "네, 저는 채필근 목사입니다." 했다. 그는 깜짝 놀라면서 "저는 0 0 교회 장로입니다."고 하는 것이다.
안회와 자공
옛적 안회와 자공의 고사에 두 사람이 스승인 공자를 따라 초나라로 가는 도중에 난을 맞아 여러 날 동안 굶주림을 겪던 차에 자공이 어렵게 쌀을 구해왔다. 자공이 물을 길으러 가다가 안회가 밥을 짓고 있는 것을 보고 여러 날을 굶어 모두가 지쳐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려는 판에 안회만이 솔선해서 밥을 지으니 마음속으로 존경심이 갔다. 그런데 다시 보니 안회는 솥뚜껑을 열더니 슬며시 솥에서 밥 한 술을 떠서 먹는 것이었다. 스승을 제쳐놓고 저 혼자 배를 채우다니 그 때까지 그를 존경하던 자공에게는 괘씸한 생각이 들어 이 사실을 스승에게 말씀드렸다.
이야기를 들은 공자는 "반드시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대단치 않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공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안회가 돌아와 "자공이 쌀을 구해온 덕분으로 아침밥을 먹게 되었다고 모두들 좋아하고 있습니다. 이제 곧 준비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공자는 "오늘은 마침 돌아가신 내 어머님의 기일이니 우선 그 밥으로 공양부터하고 밥을 먹도록 하자"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안회는"황송한 말씀이오나 이 밥으로는 공양을 못하게 되었습니다"라고 하면서 그 사연을 이야기했다. 즉 안회가 너무 바삐 밥을 짓느라고 서두르다가 솥뚜껑을 열었더니 천장에서 흙덩이가 떨어져 이것을 주걱으로 떠냈더니 밥알까지 묻어 나왔다는 것이다. 자공이 애써 구해온 쌀이라고 생각하니 밥알 한 톨도 아까워서 밥알만을 가려 자기가 먹었으니 이 밥으로는 공양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공자는 이 이야기를 듣고 납득을 하면서 "그럼 공양은 이 다음에 하기로 하자"고 했다.
자공은 스승에게 "안회의 말을 들으니 참으로 제가 부끄럽기 한량없습니다."라고 사과했다.
이 고사에서 보듯이 사람을 함부로 의심하는 것은 안 될 일이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서도 의심은 금물이다.
위험한 자들의 응답
구세군 장교인 쇼우는 앞에 있는 세 사람을 본 순간 눈물이 글썽해졌다. 쇼우는 의료 선교사로 막 인도에 도착한 참이었다. 세기말에 구세군은 나환자 수용소의 치료를 맡았다. 그러나 이 세 명의 나병 환자들은 손발이 수갑과 족쇄로 묶여 썩은 살이 갈라져 있었다. 쇼우 대위가 보초에게 말했다. “쇠사슬을 풀어 줍시다.” “안됩니다. 이들은 나병 환자일 뿐만 아니라 위험한 죄수들입니다.”하고 보초가 대답했다. “내가 책임지겠소. 이들은 너무 심한 고통을 받고 있소.” 쇼우 대위가 열쇠를 받아 쥐며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쇠사슬을 풀고 피가 흐르는 발목을 치료해 주었다.
2주일 후 쇼우 대위는 그 죄수들을 풀어준 것이 처음으로 불안하게 느껴졌다. 그는 밤새 여행을 해야 하는데 아내와 아이들을 그들과 함께 남겨놓고 가는 것이 두려웠다. 그러나 그의 아내 역시 하나님께 일생을 바친 구세군장교였고. 그녀는 무섭지 않다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 그녀가 현관문으로 갔을 때 세 명의 죄수들이 계단 위에 누워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밤새 출장가신 것을 알고는 부인께 폐가 될까봐 저희는 여기서 밤을 보냈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행위에 대하여 소위 '위험한 사람들'이 보여준 응답이었다.
의심
대중 집회를 마치면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에 아주 멋있어 보이는 신사 한 분이 내게 다가와서 정중하게 물었습니다.
"저의 구원에 대해서 박사님과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나는 너무나 혼란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주님을 구세주로 알고 있지만 거의 평안이 없으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확신도 없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방금 집회에서 증거하신 말씀을 들으면서, 그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나는 그 신사에게 대답했습니다.
"첫째, 당신과 주님 사이가 올바른지 당신 자신을 살펴보십시오. 보통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의심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만일 성령께서 당신의 완고함이나 죄로 인해 근심하고 계신다면, 모순이 있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당신의 구원을 효과적으로 증거하실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성령의 증거는 종종 희미해집니다.
둘째, 잘못된 것을 찾아낸 후에, 주님께 그것을 솔직하게 자백하십시오.
세째, 그것을 처리하고 당신의 회개를 입증하는 일을 하십시오."
"바로 그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도중에 끼어들었습니다.
"나는 주의를 소홀히 했습니다. 내 생활에는 죄가 있어요. 그것을 바르게 해야겠습니다."
우리는 고개를 숙였고 그는 거룩한 침묵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운 용서를 구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방 안에 계신 것이 분명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일어났을 때 의사인 그 신사는 변화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표정, 목소리, 모든 태도는 축복이 깃든 확신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부주의한 생활은 언제나 의심을 낳으며, 그 반대도 사실입니다.
의심은 믿음을 같지 못하게 하며, 믿음을 갖지 못하는 생활은 죄 있는 생활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죄 있는 생활은 성령의 증거를 희미하게 합니다.
의심 2
한 칠팔십 년 전의 옛날이야기입니다. 그 때만 해도 이렇다 할 교통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길손들은 먼 길을 가는데도 걸어야 했습니다.
목사님 한 분이 노회(老會)에 참석하려고 길을 나섰다가 도중에 비를 만나는 바람에 부득이 길가의 주막에 들러 하룻밤을 묵게 되었습니다. 주막에는 객방(客房)이 하나뿐인데, 그나마도 선객(先客)이 들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동숙(同宿)을 하기로 했습니다. 바깥은 비가 오니 더욱이나 칠흑같이 어둡고, 방안에는 등잔불 하나 가물거리고 있지마는 워낙 불빛이 희미하므로 낯선 두 객이 서로의 얼굴조차 제대로 알아볼 수 없습니다.
목사님은 선객에게 인기척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보따리를 내려놓은 다음 옷을 벗어 횃대에다 걸었습니다. 옷을 걸어놓고 보니 윗도리 주머니에 지니고 다니던 회중시계의 줄이 등잔불빛을 받아 유난스레 번쩍거렸습니다. 목사님은 그 회중시계에 마음이 쓰였습니다. '저 사람이 혹 도둑은 아닐까? 그렇다면 저 시계는 오늘 밤에 없어지겠구나.' 드러누워 잠을 청하지만 못내 걱정이 되어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결국 잠자리에서 도로 일어난 목사님은 회중시계를 거두어서는 머리맡에 있는 보따리 속에 감추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누웠으나 그래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보따리 속에 넣는 것을 저 사람이 틀림없이 엿보았을 게야. 이거 야단났구나. 보따리 째 다 들고 가면 더욱 큰일이다.' 잠은 아예 천리 밖으로 달아났습니다.
그 사람이 부스럭하고 돌아눕습니다. 그 역시 잠을 자지 않는 모양입니다. 목사님이 헛기침 소리를 내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도 헛기침 소리를 냅니다. 서로가 "나는 잠들지 않았다"고 신호를 보내는 것만 같습니다.
밤새껏 그러다가 날이 밝았습니다. 아침상이 겸상으로 들어왔습니다. 목사님이 기도를 하려고 고개를 숙이려니 상대방도 고개를 숙이면서 먼저 기도를 시작합니다. 서로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마주 쳐다보았고, 그제야 통성명 수인사(通性名修人事)를 했습니다. 그래 알고 보니, 그 사람 역시 노회에 참석하러 길 떠난 어느 교회의 장로님이더랍니다. 똑같이 노회에 가는 사람들끼리 그처럼 서로 모르는 사이가 된 채 밤새 의심하고 고생을 했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의심과 헤아림
어떤 때에 보면 신학을 하지 않은 분인데도 신학을 논하면서 기독교적인 글을 많이 쓰는 분이 있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한번은 어느 대학 교수님에게 한마디 하기를 “교수님, 이것은 우리 분야인데 철학을 하신 교수님으로서는 이 분야에 대해서는 안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더니“그렇지요?” 하면서 “앞으로는 아무래도 그 분야에 대해서는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아들이 목사까지 되었는데도 교회를 나오지 않습니다. 그 나오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그분의 말인즉 “내가 참 못됐습니다. 책도 조금 읽고, 그저 신학 책도 가끔 읽어보고, 철학도 조금 했다 해서 교회에 와서 딱 앉으면 목사님이 뭐라고 하시면, 음! 그거 아닌데, 소크라테스! 그 소크라테스는 내가 더 잘 아는데 그 사람은 그런 사람 아닌데” 하고서는 자꾸만 이런 생각이 나서 도무지 은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나 이것 변변치 않은 공부 좀 한 것 때문에 예수를 똑바로 믿지를 못합니다”라는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라!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한 결코 자로 잴 것이 아닙니다. 모두를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하거나 부인하며 비판할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욱이 다 알 수도 없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니! 이제 전적으로 입을 열고 받으라, 그리고 충성하라! 그럴 때에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전적인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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