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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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예화
예수님의 빈 무덤(부활절)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사는 톰이란 소년의 이야기. 톰은 병약해 휠체어를 타고 교회에 다녔다.
부활주일을 앞두고 주일학교 교사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계란을 학생들에게 나눠주며 무엇이든지 생명을 상징하는 것을 넣어 오라고 했다. 아이들은 부활주일에 꽃이나 나뭇잎 곤충 등을 가지고 교회에 와 하나하나 열어 보이며 의미를
설명했다.
이윽고 톰의 플라스틱 계란은 비어있었다. “준비 못했어도 괜찮다”고 교사가 위로했으나 톰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준비해 왔어요. 이것은 예수님의 무덤이에요. 이것은 예수님께서 다시 사셨기에 이 무덤은
비어있을 수밖에 없지요.”
톰은 10개월 뒤 죽었고 그 관에는 꽃 대신 빈 플라스틱 계란이 놓여있었다.
부인할 수 없는 부활의 증거(부활절)
로마의 바티칸 궁정에는 유명한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피에타(Picta)라는 조각품이 있다.
그 작품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시체를 성모 마리아가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그런데 여러 해 전에 이탈리아의 어떤 정신병자가 그 조각을 파손시켰기 때문에, 또 다시 많은 경비를 들여서
보수하였고 지금은 유리 상자 속에 넣어 보관하고 있다.
그 조각품은 미켈란젤로가 죽기 이틀 전까지 조각했다는 걸작품이다.
이를 보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가톨릭교회 신자들은 그 앞에 꿇어앉아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만약 그 작품의 모습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일생이 끝났다면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라 할 수 없다.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슬픔의 종교요 무덤으로 끝나야만 하는 종교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사흘 만에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시므로 기독교가 생명의 종교, 구원의 종교임을 증명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부활에 대한 기사로 가득차 있다. 부활의 진리를 기독교의 중심 되는 내용이며,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계시며 능력으로 역사하고 있다.
람세이(A.M.Ramsay) 교수는 말하기를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에게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의 복음은 결론이 없는 복음일 뿐 아니라 전혀 복음이 될 수 없다"고 했다.
또한 옥스퍼드 대학의 역사학 교수였던 토마스 아놀드(Thomas Anold)말하기를 "나는 여러 해 동안 과거의 역사를
연구하고 그 사실을 조사하고 이에 대하여 기록한 문헌과 유물을 고증하여 그 사실 여부를 조사하여 오는 중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표징, 곧 그리스도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보다 더 분명하고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을 인류 역사에서 나는 보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한때 영국의 무신론자였던 리틀스톤(Girbert West)는 자기들이 무신론을 주장하는데 두 가지 장애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하나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이요, 다른 하나는 사도 바울의 변화였다.
그들은 이 두 가지 사실을 변정하기 위해서 연구하기 시작했다.
얼마 동안 연구한 뒤에 두 사람이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우리도 더 이상 이에 대한 반증을 할 수가 없네. 우리는 이 연구를 통해서 오히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 아니라, 우리들이 죄인임을 잊고 살았음을 깨닫게 되었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그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영접할 수밖에 없네"라고 고백하였다는 것이다.
부활사실을 부인하기 위하여 연구하던 무신론자들이 오히려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신앙을 고백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처럼 부활을 부정하는 세력은 다 망했으나 부활의 진리를 증거하는 교회는 언제나 살아 역사하고 있다.
왜냐하면 교회는 부활하신 주님의 몸 된 교회이기 때문이다.
예수 부활의 역사성
사도 베드로는 열한 사도들과 함께 일어나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외쳤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계획에 따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그 죽음의 고통으로부터
살아나시고 부활하셨다는 내용이었다.
예수님은 죽음의 세력에 사로잡혀 계실 분이 아니었다(행2:14-36).
이처럼 사도 베드로가 맨 처음 선포하였던 복음의 내용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던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이다.
" 하나님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행2:30-32).
하나님은 이미 말씀하신대로 예수님을 죽음의 세계에 버려두시지 않았고 썩지 않게 하셨다 (시16:10).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성경에서 뿐만 아니라 일반 역사가들에 의하여 증명되고 있다.
로마의 유명한 역사가 타키투스(Thakitus)의 기록에 의하면 크리스천과 크리스토스라는 이름과 기원을 연결시켜
설명하고 티베리우스(Tiebeli-ous;네로 황제의 아들) 치하의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예수님이
사형되었다고 기록하였다.
폴리니우스(Polinius)는 소아시아의 베테니아와 폰터스의 총독이었다.
그는 주후 112년경에 트라야누스(Trayanus) 황제에게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취급할 것인지 문의하는 보고서를 썼다. 그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은 일정한 날(일요일)새벽에 모여 예수 그리스도를 신으로 찬양하는 노래를 부른다고 하였다.
또한 역사가 루시안 (Lucian)의 글에서 예수는 팔레스타인에서 십자가형을 받은 사람이며, 그 죄목은 그가 이 세상에 새 종교를 도입하였기 때문이며, 예수는 그 제자들에게 그의 법도를 지키게 하였고 서로 형제라고 가르쳤다고 말했다.
그리고 유대인으로 부자이며 역사가인 요세푸스(Josephus)는 교양 있는 로마인들에게 유대교를 정당화시켜
보려고 시도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언급하였으며 그리스도의 형제 야고보에 대해서 언급했고,
특히 예수님이 예언자들이 예언한대로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는 사실도 썼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분명한 사실이며, 부활이 있으므로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임을 확인하게 된다.
유월절의 피(송명희 칼럼)
유월절입니다. 애굽의 장자를 멸하실 때 이스라엘의 장자를 보호하시던 그 날입니다.
이스라엘의 장자가 죽지 않은 이유는 어린양을 장자를 대신해 죽여 그 피를 문지방에 발라 표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유월절입니다. 예수님이 유월절에 죽으셨습니다. 나를 멸망에서 구하시기 위해 그 피를 흘리셨습니다.
[이 사람은 그냥 넘어가라고] 죽음에게 주님의 피가 말씀하십니다.
[바르소서, 바르소서 나의 문지방에 주님의 피로 바르소서,
사망이 나를 그냥 넘어갈 수 있게 나의 문지방에 주님의 피 바르소서] 예수님은 유월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내 피를 마시라] 주님의 피가 세상 모든 염려와 두려움에서 죄의 유혹과 사망의 외침에서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그냥 넘어가라]고 [그 피로 양을 먹을 집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출12:7) 유월절에는 어린양의 피가
있어야 하듯 누룩 없는 무교병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유월절에 예수님의 피와 우리 죄 없는 몸과 마음을
무교병으로 드려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쓴 나물이 있습니다. 고난과 잘 넘어지지 않는 아픔입니다.
우리에게는 항상 웃음보다 눈물이 더 많고 힘들 때가 더 많습니다. 우리 유월절을 잘 지킵시다.
매년 돌아오는 유월절(명절)이 아니라 우리의 생의 유월절을 잘 지켜 이 모든 수고가 끝나고 천국의 잔치에서
주님과 즐기는 그 멋진 날을 기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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