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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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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의 좌우명


 미국의 대양횡단 기선이 대서양을 항해하던 중 폭풍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갑판 위에서 일하던 한 선원이 파도에 휩쓸려 바다에 빠졌습니다. 그는 즉시 “사람 살려!”라고 울부짖었고. 이 소리를 들은 동료가 구명대를 선미 쪽으로 내던졌습니다. 얼마 후에 구명대에 연결된 밧줄이 당겨지는 것을 느낀 동료가 캄캄한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줄을 잡았니?”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지친 목소리로 “내가 줄을 잡은 것이 아니라. 줄이 나를 잡아끌고 있어”라고 답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는 너무 기진맥진한 선원이 구명대를 잡고 견딜힘이 없었기 때문에 구명대를 양쪽 겨드랑이에 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가면서 우리를 압도하는 심한 폭풍을 경험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힘이 다 소모되고. 우리의 마음이 약해지며, 더 나아가 믿음마저 없어진 것 같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잡아주시고, 절망에서 우리를 건져 올리십니다.


 고난과 슬픔의 파도가 우리를 엄습해 올 때, 우리의 모든 힘을 다해서 구명대를 잡고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겠습니까? 하나님 품에 그저 기대고 그의 약속의 말씀을 신뢰함으로써 모든 역경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힘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힘입니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신다는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모든 사람들이 지녀야 할 적절한 좌우명입니다.





 


     끝까지의 사랑


 저는 많이 변합니다. 저는 삶의 현장에서 많이 배웁니다. 하나님께서는 삶의 학교에서 저의 스승이시고 24시간 저를 가르치십니다. 항상 성경 말씀을 생활 속에서 가르치시고. 제가 생활 속에서 터득하게 하십니다.


 영국의 캠브리지에 있을 때 도서관까지 자전거로 15분가량 걸렸습니다. 영국 날씨는 변덕이 많아서 출발할 때는 햇살이 따스한 맑은 날씨가 15분을 못 참고 어느새 먹구름이 끼고 비가 내리곤 했습니다. 이런 날씨변화를 몇 번 겪으면서 감기에 걸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에는 사전에 비옷을 가방에 넣고 가다가 먹구름이 끼면 멈추어서 입고 달렸습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묵상하는데 하나님께서 이런 깨달음을 주십니다.


“권성수―저는 신비주의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계시하시는 것이 아니고 제가 깨닫는 것입니다―영국 날씨 대단히 변덕스럽지.” “예. 대단히 변덕스럽습니다.” “권성수. 네 신앙이 영국 날씨와 똑 같다.”


 아침에 논문 쓰러나갈 때는 하나님께서 오늘도 인도하실 것이라는 싱싱한 확신으로 나갑니다. 점심때는 어느새 현실주의자가 되고 저녁 때 돌아올 때는 패배주의자로 귀가합니다. 이것이 거의 매일 반복됩니다. 그러나 다음에 깨닫게 하시는 것이 이것입니다.


“네 신앙이 영국 날씨처럼 변덕이 많다 할지라도 나는 너를 끝까지 사랑해서 나의 사람을 만들어놓고야 말겠다.”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의 손길이 변함없이 저를 장악하심을 깨달았습니다. “기어이 너를 나의 사람으로 만들어놓겠다.” “아. 주님의 사랑은 끝까지의 사랑입니다. 한번 선택하여 부르시면 끝까지 책임을 지시는 그러한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사명이 끝나기 전에는 저는 어떤 일로도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신분을 보장하고 계십니다.





 


     나를 이끄소서


 우리는 몽블랑 기슭의 샤모니 마을에 있었다. 그런데 어제 아주 슬픈 일이 일어났었다. 한 젊은 의사가 몽블랑 정상을 정복하고자 하여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그리하여 조그만 마을은 그를 축하하느라 밝게 빛났으며 산꼭대기에는 그의 승리를 알리는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캠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산을 오른 후, 내려오던 중에 안내자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했다. 로프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혼자 가기를 주장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안내인은 극구 만류했지만. 기어이 그는 로프에 대해 싫증을 느끼고 자유로워지기를 선언했다. 마침내 안내인은 포기하고 말았다.


 얼마 가지 않아서 젊은이는 발이 얼음에서 이끌어졌는데, 얼음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자신을 막을 길이 없었다. 로프가 없었으므로 안내인이 그를 붙잡아서 다시 끌어당길 수도 없었다. 벼랑 밑의 얼음 위에는 그 젊은 의사의 시체가 놓여 있었다. 종이 울리고 마을 전체가 그의 성공을 축하하며 기뻐하였지만 불행히도 결정적인 순간에 로프가 싫어서 안내받기를 거절한 것이다.


 당신도 로프에 싫증을 느끼는가?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를 붙잡고 막으실 때, 때로 우리는 이에 대해 싫증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안내자가 필요하며, 이는 위험한 길이 끝날 때까지 필요한 것이다. 당신의 인도자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지 말라. '당신께서 나를 이끄소서'라고 기도하라. 그러면 때때로 하늘의 종이 '너는 무사히 본향에 다다랐다'고 알려 줄 것이다.





 


     목자


 16살 난 토드(Todd)는 주일 저녁 예배 시 공연했던 연극에서 목동의 역할을 했다. 그가 옆문에서 무대 쪽으로 나오자 작고 까만 양이 그를 따라왔다. 이 양은 근처에 사는 농부에게서 빌린 생후 한 주밖에 안된 어린 양이었다. 토드가 신호에 따라 그의 역할을 하자, 그 양은 그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였다.


 1막이 끝나자 그 양은 토드 곁에 있었고 이따금 바지의 냄새를 맡고 손을 핥았다. 토드가 나가자 양은 달래지도 않았는데 따라 나갔다. 연극이 끝나고 강당에 불이 들어오자 학생부 담당 교역자가 말했다.


"여러분은 양이 왜 토드를 따라 갔는지 아십니까? 토드는 지난 이틀 동안 그 양을 자기 집에 데리고 있었습니다. 어제 밤에는 4시간마다 일어나 양에게 우유를 먹였습니다. 여러분, 이 양은 목자가 누군지 잘 알고 있었던 거지요!"


 이것은 믿는 자와 그리스도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요10:14) 또 말씀하시길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10:27)





 


      무엇을 할까요


 제가 대학교 다닐 때의 일입니다. 이른 아침에 주님과 깊은 시간을 갖고 하루 계획을 빈틈없이 짰습니다. 모두 다 주님의 계획인 줄 알고 성령님께 도움을 구하면서 하루의 일들을 처리해나갔습니다. 그런데 저녁 8시 경에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밤 10시에 끝나야 할 일들이 그 시간에 모두다 끝나버린 것이었습니다. 기분이 좋아서 '자! 그러면 무얼 할까?' 생각하다가 주님께 묻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오늘 해야 할 일들이 다 끝났는데 이제 무얼 하면 좋을까요? 책을 볼까요? 영화구경을 갈까요?”


 이러면서 잠시 동안 기도하는데. 갑자기 어떤 한 친구가 올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생각이 끝나자마자 문 밖에서 노크 소리가 났습니다. 문 밖에 서있는 사람은 '예수'를 알고 싶어서 찾아온 친구였습니다. 두 시간 동안 주님의 말씀을 주고받으면서 유익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그가 주님을 영접하게 된 것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 시간에 제가 주님께 “계획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지 않았다면. '뜻'을 알 수도 없었고 그대로 따를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시간을 빼앗긴다는 억울한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언제든지 물어보면 약속하신 말씀대로 성령께서 서슴없이 우리를 지도해주시는 것입니다.





 


      문제 해결 방법


 비행기가 생긴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습니다. 1세기도 채 지나지 않았습니다. 처음으로 비행기가 등장했던 시절의 어떤 이야기입니다.


한 비행사가. 아직은 시원찮게 만들어진 비행기지만, 시운전을 하기 위해서 비행기를 타고 바다 위를 날기 시작했습니다. 육지를 떠나 약 10 킬로미터 정도 나갔는데 갑자기 조종실 바로 아래서 무엇을 긁는 소리가 났습니다. 신경을 기울여서 가만히 들어보니 틀림없이 쥐가 전선을 갉아 먹는 소리였습니다. 그 선이 끊어지면 이 비행기는 큰일 나는 판국이었습니다. 조종사는 순식간에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여 어쩔 줄 몰라 하면서 그 쥐를 떨쳐버리기 위해 비행기를 옆으로 막 까불어 봤지만, 여전히 갉아 먹는 소리는 계속 들려왔습니다.


 그때 섬광처럼 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이 조종사는 비행기 까불기를 그만두고 곧장 고도를 높여서 쏜살같이 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약 30 킬로미터 정도 올라가니까 그 갉는 소리가 딱 멈추었습니다. 나중에 내려와서 보니까 쥐는 기압을 못 이겨 죽어 있었습니다.


 인생의 문제 앞에 부딪쳤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아우성치지만 우리는 더 큰 문제 속에 빠집니다. 그러다가 기진맥진해서 다 포기해 버리고 절망하고 맙니다. 멈추십시오. 인간의 노력과 수단을 놓으시고 높은 곳으로 오르십시오. 그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십시오. 구하는 이들의 삶속에 값없이 주어지는 이 은혜, 그리고 이 은혜 속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놀라운 보호하심과 위로하심과 교제하심과 풍성하신 만족의 축복이여! 이 은혜를 아십니까? 왜 이 은혜를 거절하십니까?





 


      뽀빠이


 어린이들에게 절대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화 가운데 '뽀빠이'라는 외국 만화가 있습니다. 주인공은 뱃사람으로 불의를 대적하여 언제나 승리하는 정의의 사자로 어린이들에게 우상적 존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어떤 위기가 닥쳐와도 시금치만 먹으면 엄청난 힘을 얻고 악을 물리쳐 버립니다.


 이 만화에는 다음과 같은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의 농가에서 시금치를 많이 재배했습니다. 수요보다 공급이 과잉하여 값이 떨어지고 수많은 농가는 도산하게 되었습니다. 농민의 대표자들은 이 문제를 놓고 연일 회의도 하고 건의도 했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생각다 못한 농민들은 광고 회사에 찾아가서 시금치가 잘 팔리도록 광고를 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광고 회사는 연구 끝에 만화가에게 부탁하여 '뽀빠이'를 탄생시켰습니다. 그 후부터 시금치는 모자라지도 않았고 남아서 버리는 일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삶의 공식입니다. 시금치가 안 팔려 도산할 위기가 오면 뽀빠이가 태어나 엄청난 기적을 일으키게 될 때라고 신뢰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좌절은 금물입니다. 게으름과 나태, 무기력은 최대의 적입니다. 사업이 막히면 어디에선가 뽀빠이가 나를 찾아내라고 손짓하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절망이 찾아와 생활의 문을 막으면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만화의 뽀빠이보다 더 강한 주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면서 살피는 하나님을 천하장사 뽀빠이에게 비교할 수 있을까요? 그 분의 오른손이 오늘도 나를 붙들고 생의 여행을 계속하는 것 입니다.





 


     선장의 명령


 젊었을 때 수부 노릇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배가 항구를 출발한 후에는 제가 '키'를 맡게 되어 있는데 항상 선장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 했습니다. '오른쪽으로 틀라'고 하면 오른쪽으로 틀고, '왼쪽으로' 하면 왼쪽으로 하고 오직 선장의 명령대로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제가 생겼습니다. 배가 계속 앞으로 나가고 있는데 제 앞에 조그마하게 보이던 산이 점점 크게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잔뜩 긴장을 하고 키를 잡고 가는데 배는 산으로 다가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보기에는 배가 산으로 올라갈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그만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선장님! 배가 산으로 올라갈 것 같아요.” 옆에 있던 선원과 부드럽게 이야기하던 선장의 얼굴이 그때처럼 굳어진 것은 아마 처음 보았을 것입니다. 너무도 놀란 얼굴로 한참 보더니 큰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그대로!” 그 얼굴과 큰 소리에 저도 놀라서 앞을 보고 가고 있는데 한1―2분 지났을까, 그때야 비로소 "오른쪽으로 90 틀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부랴부랴 키를 돌리면서'휴. 살았구나' 했는데, 사실은 제가 얼마나 잘못할 뻔했는지는 나중에야 안 사실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겁을 먹고 잔뜩 긴장했던 지점에서 배를 돌렸으면 보이지 않는 큰 암초에 부딪쳐 배가 파선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또 그 지리를 가장 잘 아는 분은 선장이었으므로, 선장은 자기가 보아둔 지점이 있어서 옆에서 볼 때 그 지점과 일치가 되는 순간에 비로소 틀면 배가 안전하게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저는 몰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더욱 큰 잘못은 선원이 선장에게 명령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을 몰랐다는 데 있었습니다. 이 경험은 하나님의 뜻과 때를 구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도 이와 같습니다. 만약 '때'가 되지 않았는데 먼저 나가거나 옆으로 돌릴 때는 대부분 보이지 않는 암초에 걸려 파선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승리의 신앙생활


 어느 초등학교에서 한 어린이가 미술 시간에 도화지를 내놓고 그 위에 열심히 그림을 그리려고 애를 썼습니다. 크레파스를 가지고 이리저리 줄을 그어봅니다. 아무리 해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그림이 되지 않자 나중에는 마음이 초조해지고 불안해져 그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계시던 선생님이 옆에 오셔서 그 어린 아이를 위로해주었습니다. “지금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고 속상해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도와줄게.” 그래서 어린 아이로 하여금 크레파스를 손에 단단히 쥐게 하고 난 다음 그 어린 아이의 손을 선생님께서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선생님의 손이 어린 아이의 손을 인도하여 도화지 위에 이리저리 선을 긋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어린 아이의 눈앞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아름다운 미술품이 되어 나온 것입니다. 어린 아이는 자기 손이 선생님의 손에 잡힌 것도 잊어버리고 마치 자기가 그 그림을 그린 것처럼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크레파스를 들고 도화지 위에 열심히 그림을 그리나 좋은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이럴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를 도와줄 자 보혜사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은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크레파스로 선을 그어 그림을 그리게 하는 선생님과 같이, 우리의 생애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붙잡고 우리를 통하여 능히 그리스도를 전파하며 승리의 신앙생활을 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는 실력자로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신뢰의 교훈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북 알라스카의 에스키모 사람들을 위한 여름 선교여행을 가자는 초대를 받은 일이 있었다. 여러 달 동안 나는 이것이야말로 나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확신 속에서 꿈을 키워왔으나. 나에게는 그 일을 실현시킬 돈이 없었다. 나의 부모님들께서 모두 심하게. 그리고 만성적으로 앓고 계셨고 따라서 우리 온 가족의 돈은 병원비용을 대느라고 다 날아가 버렸던 것이다.


 4월에 나는 다른 팀 인원들과 더불어 그 여행 계획을 진전시키기 위한 주말 휴가를 떠났다. 주말을 보내면서 내가 가야 한다고 하는 확신은 더욱 강해졌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데 집에 돌아와 보니 30달러짜리 수표가 든 편지가 와있지 않은가. 그 편지는 나의 여름 희망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왔다. 하지만 다음과 같이 짧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당신의 이번 여름비용을 위하여.”


 나는 이 수표를 내가 가야 한다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허락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그 이후 하나님 이외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죠지 뮬러의 원칙을 따랐다. 그런데 그 후 여러 달 동안 내가 여행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채워 주시는 것을 목격하였다. 당시 10대였던 나에게 있어서 그 일들은 나의 신앙을 크게 성장시키는 체험이었다.


 이것이 돈 문제로 인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배울 수 있게 된 나의 첫 번째 경험이었다. 그때 이후로 하나님께서는 신뢰와 믿음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나에게 가르치시기 위하여 은혜롭게 돈을 사용하셨다. 확신하건대 당신도 비슷한 경험들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엄마! 빨리 내려


 지방에 볼 일이 있어 고속버스를 타고 어린 아들과 함께 가던 여 집사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아들이 울면서 차에서 내리겠다고 너무나 보채며 울고 야단이었습니다. 고속버스는 중간에 설 수가 없는데 할 수 없이 운전기사님에게 부탁하여 중간에 내렸습니다.


중간에 내려 분이 나서 아들을 실컷 두들겨 주었습니다. 타고 갈 일이 난감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나가는 차를 세우고 연유를 말했더니 마침 방향이 같아서 타고 갔습니다. 타고 가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먼저 탔던 고속버스가 뒤집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죽고 많이 다쳤습니다.


 그때서야 아들을 꼭 안고 "미안하다. 하나님이 너를 통해서 인도해 주셨구나."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면


 어느 날 밤 10시경, 세인트 루이스에 사는 젊은 그리스도인 사업가에게 그의 사무실 옆에 있는 가구점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전화가 왔다. 그는 급히 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36대의 소방차가 맹렬한 불길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으나 속수무책이었다. 불길은 화염에 휩싸인 건물의 옥상으로부터 하늘로 10미터 높이로 치솟았으며, 그 사업가의 사무실과 맞붙은 벽에까지 번져가고 있었다. 마음을 가라앉힌 그는 폭발성이 강한 화공약품이 보관되어 있는 그의 사무실로 들어가 급히 중요한 서류를 싼 뒤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한 후, 모든 사태를 하나님께 맡기고 사무실을 나왔다.


 다음 날 아침, 그가 사무실에 도착해보니 가구점 건물은 심하게 파손된 다른 건물들과 함께 완전히 타버렸다. 그러나 그의 사무실 창문으로부터 불과 2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까지 소방관들이 수백 리터의 물을 뿜어댔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무실은 전혀 피해가 없이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가 보니 채광창을 통해 들어온 몇 방울의 물이 그가 견본품으로 받았던 소금 봉지에 떨어져 있을 뿐 다른 피해는 전혀 없었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의 앞날을 보살펴주신다는 것,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우리의 미래가 아무리 불확실할지라도 우리가 자신의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기만 하면, 그분께서는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며 보호하신다.





 


     오귀스트의 등대


 오귀스트 바르돌디는 1856년 프랑스를 떠나 이집트로 갔다. 그는 피라미드의 위엄과 나일 강의 웅대함, 사막에 있는 웅장한 스핑크스의 아름다움에 외경심을 느꼈고, 그의 예술혼이 자극을 받았다. 그는 이 여행에서 또 한 사람의 방문객인 페르디난드 레셉스를 만났는데, 그는 홍해에서부터 지중해까지 운하를 뚫는다면 상선들이 아프리카 대륙의 끝을 따라 도는 긴 여행을 하는 수고를 덜 수 있으리라는 아이디어를 팔기 위해 그 곳에 와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오귀스트는 한 가지 착상을 떠올렸다. 그는 이 운하의 입구에 세울 등대를 설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은 평범한 등대여서는 안 될 것이며, 서구 문명의 빛이 동방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을 상징해야 했다.


 수에즈 운하를 건설하는 데는 10년이 걸렸다. 10년 동안 오귀스트는 자기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일에 매달렸다. 그는 도안을 그리고 진흙으로 모형을 만들었다. 계획에 계획을 거듭하여. 마침내 마음에 드는 모형을 하나 완성하게 되었다. 그것은 완벽한 설계였다. 오직 한 문제만 남아 있었다. 누가 재정을 후원해 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사방으로 수소문해 보았지만 어느 누구도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수에즈 운하는 개통하게 되었다―등대도 없이. 오귀스트는 낙담하여 프랑스로 돌아갔다. 10년 동안 헛되이 땀과 노력을 쏟은 셈이었다. 그가 설계한 등대는 정말 멋진 것으로, 거대한 겉옷을 입고 사막의 스핑크스보다 더 높이 서있는 숙녀의 형상이었다. 그녀는 한 손에는 정의의 책을 들고 있었고 다른 한손으로는 운하의 입구에 빛을 비출 횃불을 높이 들고 있었다.


 오귀스트가 프랑스로 돌아온 후로 프랑스 정부는 그의 예술 작품을 여러모로 살펴보고 그 진가를 인정하게 되었다. 그가 계획하고 설계한 것은 뉴욕 항을 밝혀주는 자유의 여신상으로 그 최고의 완성을 보았다. 그의 절망은 기쁨으로 변했다.





 


     윌커슨의 결심


 데이비드 윌커슨은[십자가와 깡패]라는 책의 저자이자, 뉴욕시에서 십대 청소년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큰 복을 받았던 성직자인데, 그의 저서 서두에서, 그가 어떻게 해서 이 복음전파의 새로운 길로 인도받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펜실바니아 주 중심 지역에서 오순절파 설교자로 있었는데, 그의 개인적인 표준에 비추어 보더라도 그는 그 일을 상당히 잘해 내고 있었습니다. 교회가 점차 성장하였고, 새 건물도 몇 채 짓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만족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어느 날, 그는 저녁 늦은 시간에 TV를 보는 대신에 기도를 하며 보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많이 망설인 후에 TV수상기를 팔아 버리고 주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한동안 이 일을 계속해 나갔습니다.


 마침내 이렇게 기도하며 시간을 보낸 결과 그는 맨하탄에서 마약 중독과 범죄에 빠진 젊은이들을 돕는 일을 시작하도록 인도받았습니다. 데이비드 윌커슨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한 시골 목사를 도시의 심장부이자 도시의 가장 아픈 곳으로 인도하심을 의미했습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해당할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기도 전에 기꺼이 그것을 행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그의 길을 계시하시고 점차 더욱 넓어지며 또 더욱 흥미로운 길로 당신을 이끄실 것입니다. 그가 당신에게 가까이 다가오셔서, 당신이 가야할 길로 당신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인도자 되신 주님


 장님인 나의 길을 잡아주는 캘리포니아 산 안내 견 더스틴이 롱 아일랜드의 우리 아파트 밖에서 애를 먹고 있었다. 처음 맞는 눈보라 속에서 그 녀석은 혼란에 빠져 있었다. 난 앞을 볼 수 없기에 내가 길을 잡을 수도 없었다. 아무도 밖에 나와 있지 않았으므로 나를 이끌어줄 만한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안내 견들이 장님에게 길을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장님이 길을 인도하는 법이다. 45분 동안 애를 쓴 후 더스틴과 난 마침내 돌아오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안내 견들은 규칙적으로 걷도록 해주어야만 한다. 한 친구는 “다음번엔 하나님께 동행을 부탁해보게”라고 제안했다. 그래서 난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더스틴과 저와 동행해주십시오. 바람이 너무 심하여 우리의 방향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를 인도해주소서.” 눈이 우리의 얼굴에 몰아쳐서 길을 헤쳐 나가기가 어려웠다. 더스틴이 낑낑거리는 듯한 소리를 냈다. “그래, 이 녀석.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리고 나서 난 더스틴에게 다른 사람이 우리의 길을 인도하고 있을 때 내리는 명령을 내렸다.


“더스틴, 따라가라.” 더스틴은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놀랍게도 가는 길을 정확히 알고 있는 양 힘차게 걸음을 내디뎠다. 우린 큰 길까지 가게 되었고 문제없이 우리 아파트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한 젊은 여성이 터벅터벅 다가와 자청해서 우리 집 문까지 우릴 안내해주었다. “당신네들 발자국만 따라왔어요. 당신과 당신 개, 그리고 다른 한 분 말이에요.” “다른 한 분이라고요.” 내가 물었다. “개 발자국이 있었고, 그리고 당신 발자국과 좀 더 큰 분의 발자국이 있었는데요. 누구와 함께 오지 않으셨나요.” 난 한동안 말을 멈추고 있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아, 네, 함께 왔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내 곁에 계신다.





 


     인생의 안내자



 아프리카의 콩고에서 일하던 스티븐슨 선교사의 수기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스티븐스는 콩고의 정글 한복판에 조그마한 오두막집을 짓고 살면서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전도하였습니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풍우가 몰아치던 어느 날, 뜻밖에도 백인 청년 두 사람이 이 선교사의 오두막집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비바람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들이 선교사의 오두막집 문을 두드리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저희들은 진스강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강으로 가는 길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유감스럽게도 이 정글에는 길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 이때 스티븐슨 선교사는 빙그레 웃으시며 대답했습니다.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제가 당신들을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선교사는 청년 두 사람을 데리고 가면서 나무와 각종 식물로 뒤엉킨 정글에서 인생을 설명했다고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인생의 정글에서 길을 잃어버립니다. 갈 길을 알지 못합니다. 공포와 불안이 우리 마음을 지배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갈 것인가를 고민하지 마십시오. 길을 아는 그분이 내 곁에 계시다면! 그분이 내손을 잡고 인도하신다면! 하나님이 당신 곁에 거하십니까?


 당신이 하나님을 붙잡고 간다면 인생의 수다한 결정의 길목 앞에서 방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분이 당신과 함께 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결정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몇 년 전에 우리는 아프리카의 웰링톤에 선교 연구원을 개설한 바 있다. 건물이 매우 훌륭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개원식에 즈음하여 그 선교연구원 원장은 내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연설을 했다. 그의 연설요지는 다음과 같다.


“지난 해 우리는 주춧돌을 놓기 위하여 함께 이곳에 모였습니다. 그때 우리들의 시야에 나타난 것이 어떤 것들이었습니까. 쓰레기와 자갈들. 벽돌 부서진 것들. 그리고 허물어진 건물의 잔재들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바로 그러한 폐허 위에 주춧돌을 놓았을 때에 어떤 종류의 건물이 들어설 것인지 짐작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세부적으로 건물의 모양을 그려볼 수 있었던 사람은 오직 건축가 한 사람을 제외하고서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사람의 머릿속에는 모든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일꾼들과 석공들 그리고 목수들이 모두 일을 시작하면서 그의 지시를 받았으며 또 모든 노동자들도 다 그의 명령을 겸손하게 따랐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골조가 형성되고 또 이렇게 아름다운 건물이 완성된 것입니다. 이에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오늘 우리가 개원하는 이 건물은 장차 어떤 영향을 줄는지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아시며. 이 건물은 그분의 사역을 위한 초석을 놓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벌써 당신의 사역자들을 다 확보해놓고 계시며 또 모든 계획을 아주 분명하게 설계해두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위치에서 쓰임 받을지는 기다리고 볼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가 필요한 때에 우리들에게 찾아오셔서 직임을 맡기실 것이다.





 


     준비하신 길


 오래 전에 미국 뉴저지의 어느 산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산에 여행을 와 있었고. 또 농부들은 산 중턱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그 산 아래서부터 산불이 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위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이 산불에 포위되고 말았습니다.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 저마다 이 산불을 피하여 그 산 아래로 내려가 모험을 다가 많은 사람들이 타서 죽기도 하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어떤 사람이 이 많은 무리를 향해서 이렇게 소리쳤다고 합니다.


“여러분. 허둥대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 산꼭대기로 올라갑시다.”


 그의 침착한 인도를 받아서 사람들이 산 정상에 올랐을 때. 온 수풀이 불타고 있었지만 산 중턱에서부터 개울을 따라 흐르고 있었던 물가에는 그들이 걸어갈 수 있는 분명한 길이 하나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 지혜로운 사람의 인도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 그 개울을 따라 산불을 무사히 피했다고 합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허둥대지 마십시오. 높은 곳으로 오르십시오. 길이 있습니다. 인생의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난관에 부딪칠 때마다 피할 길이 있습니다. 주께서는 아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가야 할 것과 우리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가를.. 이 난관 중에도 길을 내시며 요단강에 길을 내시고 홍해 바다에 길을 내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삶이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 때마다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높은 곳으로 오시오. 그리고 내가 준비한 그 길을 보십시오.”





 


     진짜 아버지와 가짜 아버지


 '닥터 지바고'의 마지막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다. 장군과 타냐의 대화 장면이다.


장군은 타냐에게 어떻게 아버지와 헤어지게 되었느냐고 묻는다. 대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이었기 때문에 타냐는 "혁명의 와중이고 거리는 불이 나고 복잡해서 그저 도망치는 중에..."라고 말을 얼버무린다. 그때 장군이 "헤어진 정말 이유는 무엇이지?" 하고 다그치자 타냐는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았던 말을 실토한다. "사실은 아버지가 내 손을 놓아 버렸어요." 이때 장군은 타냐에게 말한다. "내가 사실을 가르쳐 주마. 코마로프는 네 친아버지가 아니었다. 너의 아버지는 바로 닥터 지바고야. 만일 그가 네 친아버지였다면 아무리 거리에 불이 나고 혁명의 와중이라도 절대 네 손을 놓지 않았을 거야."


 진짜 아버지와 가짜 아버지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진짜 아버지는 결코 딸의 손을 놓지 않는다.


진짜 하나님과 가짜 하나님의 차이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신을 좇는다. 그러나 명예의 신도 물질의 우상도 조만간 내 손을 놓을 것이다. 평생이라는 시간과 정성과 물질을 다 기울였던 그 안개 같은 나의 우상들은 코마로프가 불붙는 거리에서 어린 타냐를 떼어놓았듯이 얼마 뒤에 나를 배반할 것이다. 그리고 허무한 우상들을 좇던 우리는 외로운 패배자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분별


 존 웨슬리가 32세의 선교사로 조지아주에서 일하고 있을 때 그는 한 아름다운 크리스천 여성과 사랑에 빠졌다. 그는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했으나, 그의 친구들은 그에게 독신으로 있는 것이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그녀와의 결혼을 반대했다. 한 친구가 그 문제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제비뽑기를 하자고 제의했다. 웨슬리는 그 제안에 동의했다. 그 친구는 세 장의 종이를 준비해 한 장에는 "결혼하라", 또 한 장은 "올해는 생각지 말라", 마지막 장에는 "더 이상 생각지 말라"라고 썼다. 그래서 그는 그녀와의 결혼을 포기했다. 15년 후 그는 부유한 미망인과 결혼했다.


 그러나 그녀는 부적당한 배우자였으며, 웨슬리의 전도사역에 큰 장애물이었다. 20년간의 비참한 결혼생활 후에 그녀는 그를 떠났다. 제비뽑기로 하나님의 뜻을 알려는 것은 잘못이다.


 그는 조지아에서 결혼했어야 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 살 때,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시험하는 표적을 통해서 하시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성경의 원리와 훌륭한 크리스천들의 조언과 환경과 그가 우리 마음에 주신 바른 소원을 통해서 우리를 인도하신다.





 


     하나님의 선한 손길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대학교 총장까지 지냈던 유명한 석학이 있었다. 그분은 원래 그리스도인이었는데 사회적 명성이 높아지면서 점점 하나님을 멀리했다. 그리고 부와 명예와 지식으로 교만하다 폐병에 걸리게 되었다. 그런데 폐병이 점점 심해져 요양소로 격리되었다. 그는 요양소에서 과거의 화려했던 시절을 생각하면서 여러 번 자살의 충동을 느꼈다.


 어느 따뜻한 봄날, 그가 침대에 누워 창밖을 보고 있었는데 한 마리의 나비가 창문 틈새로 우연히 들어왔다. 그리고 곧 그 나비는 밖으로 나가려고 창문 틈으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서 그는 나비를 잡아 밖으로 날려 보내려고 하는데 나비는 자기를 죽이려는 줄 알고 자꾸만 그의 손을 피했다. 그 모습을 보며 그는 나직한 울음과 함께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고 한다.


“하나님! 나는 저 나비와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평안과 안식의 장소로 인도하시기 위해 선한 손길을 펴시는데 난 얼마나 그 손길을 피해 다녔던가요?”


 인생들이 하나님의 손에 잡히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의 손에 잡힌다면 그것은 가장 슬픈 일이지만,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잡히는 것은 가장 기쁜 일인 것이다. 하나님은 인생들을 참으로 사랑하신다. 지금도 하나님은 그의 사랑을 줄기차게 인생들에게 뿜어내고 계신다.





 


     하나님의 양


 앤드류 보나(Andrew Bonar) 박사는 스코틀랜드의 고산지대에서 양이 어떻게 바위틈에 끼어 못나오게 되는가를 말한 적이 있다. 이 산지의 풀은 아주 달아서 양들이 무척 좋아한다고 한다. 그러나 양들이 그 풀을 뜯어먹기 위해 10 내지 12피트를 뛰어내리면 다시 올라올 수 없게 된다. 목자는 양들이 고통스러워 우는 것을 듣게 된다. 그러나 양들은 거기서 풀을 다 먹어치우기까지 여러 날을 있게도 된다. 목자는 양들이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을 만큼 약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로프를 자신의 몸에 감고는 내려가서 죽음에 처한 양을 건져 올린다.


"왜 목자들은 양이 처음 빠졌을 때 내려가지 않습니까?"라고 나는 물어보았다. "그렇게 하면, 양들은 어리석어서 목자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자신의 힘을 다해 절벽으로 내달아서 죽게 되기 때문이죠."





 


     한 선장의 고백


 한 노령의 포경선 선장의 고백이다.


“꽤 오랜 세월이 흘렀군요. 제가 케입 혼을 떠나 고래잡이를 떠났을 때 무인지경에서 항해 중이었습니다.


 어느 날 남쪽에서 강풍이 정면으로 불어오고 있었습니다. 계속 이 방향으로 돛을 세워 오전 내내 거의 전진하지를 못했습니다.


11시 경 제가 타륜 곁에 서 있을 때 갑자기 내 마음에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왜 이 파도에 배를 난타시키느냐? 아마 북쪽으로 가도 남쪽만큼 많은 고래가 있을 것이다. 바람을 거스르지 말고 바람을 따라 달려가는 것을 상상해보자'. 이런 갑작스런 아이디어의 결과로 뱃길을 돌려 남으로 가지 않고 북으로 항해하기 시작했습니다. 1시간 뒤 정오에 장두에서 감시원이 '전방에 보트들이 보인다'고 소리치더군요. 즉시 4척의 구명정을 포착했는데 거기에는 10일 전에 배의 화재로 인해 파선되어 겨우 생존한 승무원 14명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구명정을 타고 계속 표류하면서 필사적으로 하나님께 구조를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그들을 구조하기에 가장 아슬아슬한 시간이었습니다. 하루만 더 늦었어도 그들은 생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늙은 고래잡이 선장은 덧붙여 말했다. “당신이 종교를 가지셨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실은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저는 매일 하나님께서 나를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 써주실 것을 기도하면서 일과를 시작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날 나의 뱃길을 돌리도록 하나님께서 내 마음 속에 아이디어를 넣어주셨다고 확신합니다. 그 아이디어가 14명의 생명을 구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실 말씀이 많다. 그는 우리 마음에 주실 생각도 많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데 매우 바쁘게 되어 있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들어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들에게 그의 뜻을 계시하시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우리들은 가끔 “주여, 당신의 종이 듣사오니 말씀하옵소서”라는 태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한 오두막이 불탔다


 몇 년 전에 고기잡이배들이 뉴잉글랜드의 동부 연안에 있는 한 작은 어항으로부터 출어하였다. 오후에 그들은 큰 폭풍을 만났다. 밤이 되었을 때 그 어선들 중 단 한 척의 배도 항구로 들어오지 못했다. 밤이 새도록 그들의 부인들 어머니, 아이들, 그리고 애인들은 해변을 오르내리면서 손을 모아 하나님께 그들을 구해달라고 기도하였다.


 그 상황에 공포는 더하여 한 오두막이 불타게 되었다. 그러나 남자들이 모두 나가 없었기 때문에 그 집을 건진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아침이 되었을 때 기쁘게도 모든 어선들이 연안에 있는 항구로 무사히 돌아왔다. 그러나 거기에는 절망의 얼굴을 한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의 집이 불타버린 남자의 아내였다. 그가 육지로 올라 와서 그의 남편을 맞이했을 때 그녀는 울며 말했다.


"여보 우리는 망했어요. 우리 집과 그 안에 있던 모든 것이 불에 타버렸어요." 그러나 남자는 말하였다. "그 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오. 모든 어선들을 항구로 무사히 인도한 것은 우리의 불타는 오두막에서 나오는 불빛이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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