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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한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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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한 교훈


 


 



 



기자가 시카고에서 그들이 모였던 1923년의 그 날로 시작해서 꼭 25년이 지난 후에 부를 자랑하던 그 사람들의 생애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추적해서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모였던 첫번째 사람 강철회사 사장인 찰스 슈언은 25년 후 한푼 없는 거지가 되어 죽었습니다. 두번째 사람 밀 농사로 거부가 되었던 알써 카튼 역시 사업이 파산되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쓸쓸하고 고독한 가운데 아무도 그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채 죽어 갔습니다. 세번째 사람 뉴욕 은행의 총재였던 리차드 위트니는 자기를 둘러싼 여러 가지 상황이 잘못되어 감옥에서 고독하게 여생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네번째 사람 미국의 지무장관까지 지냈던 엘버트 홀은 감옥에서 막 보석으로 풀려 나와 집에서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섯번째 사람 웰스프리트의 회장이었던 J.C.리버모아는 자살로 인생의 막을 내렸습니다. 여섯번째 사람 국제은행의 총재였던 리온 프레이져 역시 자살로 자기의 삶을 마쳤습니다. 일곱번째 사람 부동산업계의 거부였던 이반 크루컬은 자살 미수로 병원에서 치로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 인생의 희극은 미국인들에게 부의 허무를 증명하는 일에 커다란 충격과 교훈을 던져 주었습니다.



허황된 문화에 집착하는 현대인

 헨리 뉴웬이란사람이 쓴 책 가운데 [마음의 문을 열고]란 책이 있다. 거기에는 한 비유적인 이야기가 실려있다.

 정신과 의사에게 한 부인이 찾아왓다. 그런데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발작을 하면서 기물을 파괴하고 혈기를 부렸다. 간호사 두 사람을 불러서 가까스로 진정을 시킨 후에 진료를 시작하려던 의사는 환자가 오른 손 주먹을 꽉 쥐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손을 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펼 수가 없어서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서 손가락을 하나 둘 펴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새끼 손가락을 펴니까 딸그랑 하고 밑에 떨어지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퍼렇게 녹이 슨 1센트자리 동전이었다.

 그 환자는 자기 존재와 1센트자리 동전과 동일시했던 것이다. 동전을 잃어 버리면 자기 존재가 전부 없어져 버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누가와서 칼로 찌르고 이것을 빼앗아가지 않을까, 이걸 빼앗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보존해야 할까, 하는 두려움과 공포속에서 매일을 시달렸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동전을 움켜쥐고 살았던 것이다.

 이것은 현대인들의 삶의 한 단면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허황된 문화는 우리를 잘못된 것에 집착하게 하고 거기에 말려들게하여 결국에는 파괴시키는 위력을 지니고 있다.



바이올린 10만불짜리를 5불짜리로

  추운 겨울 저녁, 영국 런던 시내의 한 악기점으로 남루하게 옷을 입은 한 사람이 들어 왓다. 그의 옆구리에는 헌 바이올린이 들려져 있었다.


 "저는 지금 배가 고파서 견딜 수가 없읍니다. 제발 이 바이올린을 사주세요. 얼마래도 좋읍니다. 저는 무엇을 먹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악기점 주인 베츠씨는  1기니를 주고 그 바이올린을 사고 사람을 보냈다.(1기니는 당시 영국 화폐 단위로 약 5달라)


 베츠씨는 그 고물 바이올린을 무심코 켜보려고 손잡이 활을 줄에 대고  한번 당겨 보았더니. 깜짝 놀랄만큼 좋은 소리가 풍부하게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얼른 불을 밝히고 먼지 투성이늬 바이올린 속을 들여다 보았더니, 기절할 만한 글씨가 쓰여져 있었다.


   Antonio  Stradivari, 1704(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1704 제작)

 악기점 주인 베츠씨는 그 바이올린이 행방불명이 되어 일, 이백년동안이나  그 많은 사람이 찾으려고 애쓰던 거장 스트라디바리가 제작한 바이올린임을  곧 알 수가 있었다.  악기점 주인은 얼른  밖으로 나가 팔고 간 사람을  찾으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배가 고파서 밥 몇끼니 먹을 수있는 값 5불에 팔아버린 바이올린은 무려 10만달러짜리 었던 것이다.

  우리의 귀한 생이 10만불보다 더 귀하건만  당신은 막연한 이유로 5불짜리로 취급하고나 있지 않은지---


 


돈 물질 죽음

1888년 한 유명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다이나마이트를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이나마이트를  제조한 다음에 일약 당대에 명사가 되었고 수많은 돈을 벌고 사람들의 관심과 촉망을 받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  언제나 하던 버릇처럼 신문을  펴서 기사를 읽기 시작하는데, 깜짝 놀랄 만한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그  서두에 자기가 죽었다는 기사가 씌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과 제가 만일 당신과 저의 죽음을  알리는 신문 기사를 읽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요? 그 신문 기사의 보도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세계 최초로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한 유명한 알프렛트 노벨이 죽다.”

이 기사를 읽은 그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실 자기 동생이 죽었는데, 기자들이 혼돈하여 자기가 죽은 것으로 보도를  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사망 기사 앞에서 이 사람은 깊은 침묵과 말할 수 없는 도전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수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폭탄을 만들어서 재물을 얻었고 명성을 얻었지만, 결국 내 인생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폭탄을 만든 제조업자가  드디어 죽다”라고 보도한 신문을 찢어 버리면서 그는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훗날 그는 하나님과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재산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것이 저 유명한 알프렛트 노벨의 노벨 평화상이 시작된 이유임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돈을 벌지만 이것을 무엇을  위해서 써야 할지 알지 못하는, 철저하게 자기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 사람을 향한 주님의 마지막 도전은 얼마나 결정적입니까?



논개 祭


      판소리 사설은 예외없이 전라도 사투리요, 전라도에서도 지리산 산자락의 사투리다.   그 사투리로 읊지 않으면 판소리 진국맛이 나지 않는다.  그도 그러할 것이 판소리가 그 자락에서 발생하여, 그 자락에서 발전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역사문화지도를 그린다면 바로 지리산 일대는 서민문화가 가장 원숙하게 발달한 지역으로 표시될 것이다.  판소리 아홉마당의 주인공 모두가 춘향이나 흥부처럼 신분도 권력도 재물도 없는 서민이요, 그

애환과 절의가 주제가 돼 있음이 그 증거다.

      그렇듯이 이 문화권에서는 민중의 흉금에 공감되는 서민영웅 또한 많이 탄생되고 있다.  이를테면 장수삼절이 그것이다. 

임진왜란때 왜군들이 고을에 침입하면 향교를 태워없앰으로써 정신적 지주를 말살하는 것이 작전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팔도의 향교는 거의가 불타 없어졌다.  유일하게 타지 않고 남아난 것이 장수향교다.  횃불들고 몰려든  왜군앞에  인왕처럼 버티고 서서 [나를 태워죽인후 향교를 태우든지 말든지 하라]고 막아선 이가 있었다. 양반들은 모두 도망치고  없는데 혼자서 지키고 있던 향교의 하인 정경손인 것이다.  그의 간곡한 정성이 왜군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그의 충절로 유일하게 살아남아 왜군들이 말살하려던 정신적 명맥을 애오라지 잇고 전후 재건하는 향교의 본이 되었으며,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향교로서 유지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삼절중 다른 서민 영웅이 숙종때 장수 현감 조종면의 이름 없는 말 몰이꾼이다.  송탄천을 가는데 날으는 꿩에 말이 놀라 뛰고 말에 탔던 현감이 소에 빠져 죽었다.  상전을 안전하게 모시지 못한 책무를 절감하고 손가락을 잘라 암벽에 꿩과 말 그림을 그리고 뒤따라 투신 순절한 것이다.

      마지막 삼절중 하나가 논개다.  장수 현감시절의 최경희 장군을 부군으로 모신 논개는 진주성 전투에서 부군을 잃자 왜장 게다니무라를 끌어안고 물속에 투신, 복수를 한 것이다. 당시 논개의 나이 19세였다. 지체와 벼슬과 신분이 높은 사람들에 비해 순수하고 자발적이며 공감가는 절의가 아닐 수 없다.

      내일부터 장수에서는 이 절의를 기리는 논개제가 열린다. 

논개사당과 논개 탄생지를 대폭 확장, 성역화하는 등 삼절 유적지 성역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열리는 서민문화권의 자리메김이요, 위상제고라는 차원에서 주목되는 잔치랄 수 있다. 

전국에는 서민이라서 묻혀있는 이름없는 영웅들이 비일비재하다. 

그들을 발굴하여 빛을 비추는 선구적 잔치다.



인생 공허 죽음 허무 물질 돈 재물 탐욕 욕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 젊은 나이에 세계를 제패하여 10년을 정복자로 살았던 알렉산더 대왕, 그가 마음먹고 밟는 땅은 모두 그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회오리 바람처럼 세계를 휩쓸었던 만큼, 알렉산더는 죽음 앞에도 남보다 유달이 빨리 섰습니다. 자신의 날이 다한 것을 안 알렉산더가 부하들에게 유언을 했습니다.

 "나의 관 양 옆에 구멍을 뚫고 나의 두 손이 보이게 하라. 그리하여 천하를 쥐었던 알렉산더도 죽을 때는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보이게 하라.


  당신은 지금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손 안에 든 것이 많음으로 인하여긍지를 느끼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 날, 당신의 손은 빈손일 것이며, 그손마저 순식간에 썩어져 버릴 것을 깨닫지 못하는 한, 당신은 어두운 데서 울며 이를 갈 것입니다. 바로 그 날에...



불행 깨닫게 한 복권당첨

  미국의 한 화학연구소 수위로 있던  맥이란 사람이 얼마 전 40억원짜리 복권에 당첨됐다.맥은 바로 직장을  그만두고 2억원에 달하는 승용차를 구입하고 새 아내를 맞아  10억원이 넘는 저택으로 이사했다.그러나 맥은 날이 갈수록 마음이  허전해지는 것을 깨달았다.성실하게 일하며  살던 때가 더 행복했다는 사실을 안 그는  나머지 돈을

아프리카 구호단체에 보내고 다시연구소의 수위로 돌아갔다.그는 『입원했다가 퇴원한 사람』처럼 말한다.『복권당첨은 꿈이었지만 일자리는 현실입니다』



   빈 둥우리 증후군


 물음...

 삶의 의욕을 잃고 있는 40대 후반의 가정주부입니다.

 누구 말대로 정말 출구가 보이지 않는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읍니다. 표면상으로는 충분히 행복한

 인이나 저의 내면에서는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하는 것같습니다.

 아이들은 잘 자라 아들은 군대 가고 딸은 대학 3년, 속썩인 법 없고, 남편은 사업에 성공하다 보니 잠자는 얼굴도 보기 힘들고  아지자기한 부부간의 대화가 끊긴지 오래 전입니다. 남편은 옷 갈아입기 위해 집에 들어오는 하숙생처럼 되어 버렸고, 어느 때는 남남같다는 섬뜻한 생각이 들때가 있읍니다.


 대답...

 40대 전후반, 혹은 50대 초반의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앓고 있는 "빈둥우리 증후군"이라는 병을 앓고 계신듯 하군요...

 부부가 한 몸인데 대화가 없다는 것은 심장이 멎어서 피가 통하지 않는 죽은 몸이나 다름없으니,  오늘 당장 이

 순간부터 기쁜 마음으로 남편을 용납하고 대화를 시작하시라고 말씀드릴 것입니다...


 


 유명한 목사 크라브스 샤펠의 이야기가 있다.


"나는 어렸을때의 주일학교에서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였지요. 우리 주일학교에서 멋진 파티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나누어주었지요. 우리는 차레대로 나가서 선물을 받았습니다. 

 우리 학반에서  우리보다 훨씬 크고 바보라고 불리우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입을 헤벌리고 앉아서 자기 이름을 부를 때까지 열심히 기다리고 있었죠.

 선물꾸러미는 몇개 남지 않았습니다. 자기 이름이 없지않나해서 소년은 실망한 나머지 벌써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산타 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 트리 뒤로 가더니 커다란 선물꾸러미를 꺼내어 들고는 그 소년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는 기쁜 나머지 얼른 뛰어가서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선물을 푼 그의 얼굴은 삽시간에 슬픈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매우 실망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그 소년을 놀리기 위해서 선물을 바꿔 빈상자를 곱게 포장해 두었던 것입니다.  소년은 상자를 흔들어 보고는 그 속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는 고개를 떨구고는 눈물을 흘리며 밖으로 뛰어나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결코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일이 다시는 되풀이됫서는 안되는 잔인한 장난이었다고 발할지 모르겟으나 세상은 나와 당신을 상대로 이런 냉대를 일삼고 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풍성한 인생을 주신다.(사55:1-)



 사람이 산다는 것

        저무는 한해...옳게 살았는지 돌아보자


인생은 연극비슷

전능의 신 제우스가 인간과 동물을 만들어 보라고 프로메테우스에게 명령을 내렸다. 만들다 보니 인간보다 동물의 수가 더 많어졌다. 그러자 제우스는 짐승수를 줄이고 사람수를 늘리라고 다시 프로메테우스에게 명령했다. 프로메테우스는 이미 만들어진 짐승들중의 일부를 부수고 인간으로 바꿔 놓았다. 이리하여 모습이나 마음이나 다같이 인간인 사람과 모습은 인간이지만 마음은 짐승인 사람의 두가지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인간의 수명은 처음에는 20년이었다. 그것을 인간은 늘 불만스레 여기고 있었다. 때마침 겨울이 되자 추위를 견디다 못한 말이 인간에게 와서 겨울을 나게 방 하나를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인간은 "너의 수명중의 얼마를 내게 나눠준다면 방 하아를 빌려주겠다"고 말했다. 말은 이 흥정을 받아들이고 자기 수명중에서 15년을 떼어 주었다. 그 다음에 소가 와소 똑같은 부탁을 했다. 인은 말때와 똑같은 조건으로 소에 방을 빌려 주었다. 마지막에 찾아온 개에게도 똑같은 조건으로 방을 빌려 주었다. 이리하여 인간의 수명은 65세가 되었다. 그후부터 인간은 원래의 수명인 20년 동안은 선량하게 살지만 말한테서 받은 나이가 되면 허풍이 많고 거만해지고, 소에서 받은 나이가 되면 남을 지배하려들고, 개로부터 받은 나이에 이르면 잔소리가 많아지고 화도 잘 내게 되었다.


셱익스피어는 '마음 내키는대로'라는 희극에서 인생을 다음과 같이 7단계로 나누었다.


  "세상은 모두가 하나의 무대, 인간이란 남자나 여자나 한낱 어릿광대에 지나지 않는다.

   모두가 그 무대에 등장했다가 7幕(막)을 연기한 다음에 퇴장한다.


   첫째막에서는 유모품에 안겨서 칭얼대는 어린애 역활을 한다.


   다음에는 가기싫은 학교에 억지로 다니는 학생이되고


   그 다음에는 애처롭게 연가나 부르는 연인노릇을 한다.


   다음에는 싸움을 좋아하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명예욕에 불타는 군인이 된다.


   5막째에는 뇌물로 아랫배가 튀어 나오고, 그럴싸한 격언을 뇌까리며 위엄부리고,

   그러면서도 제법 자기 일에는 열심인 재판관 노릇을 한다.


   그러다 6막에 들어가면 몸에 맞지도 않는 젊었을 때의 옷을 걸쳐 입고,

   허리에는 돈주머니를 꿰찬 얼빠진 늙은이가 되버린다.


   마지막 막에서는 노망하여 눈도 안보이고 이빨도 없는 어린애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사람의 인생이란 이처럼 어리석음의 연속이다. 인생을 한껏 1백세로 늘려 잡는다 해도 여기서 어린시절과 노인시절을 빼면 정말로 인간다운 삶으로 여길수 있는 것은 50년이다. 여기서 잠자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들을 뺀다면 25년밖에 안남은다. 여기소 또 병이며 걱정거리로 빼앗기는 시간들을 빼면 10여년밖에 만지를 않는다. 그나마 그 짧은 동안에도 자기가 죽은 다음의 명예까지 걱정해야 한다니 인생처럼 고달픈 것도 없다. 전국시대 楊朱(양주)의 넋두리다.


갈수록 영악해져

그 짧은 동안이나마 제법 슬기롭게 잘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莊子에는 '나이가 50이 되어서야 겨우 지난 49년 동안의 잘못을 깨닫게 되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세상만사는 모두 변한다. 오늘의 진리가 내일의 허위일수도 있고, 오늘의 부정이 내일의 정의로 둔갑하는 수도 있다. 그런 속에서 올바른 삶의 길을 지켜 나간다는 것처럼 어려운 것도 없다.

박쥐가 땅에 떨어져서 족제비에 붙잡혔다. 살려달라고 박쥐가 애원하자 족제비는 "새들은 우리의 적이니까 너를 살려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박쥐는 "나는 새가 아니라 쥐입니다"면서 간신히 그 자리를 모면했다. 그러지 얼마후에 또 다시 땅에 떨어져서 다른 다른 족제비에게 붙잡혔다. 그 족제비는 "나는 쥐를 제일 싫어한다'고 말하면서 잡아먹으려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나는 쥐가 아니라 새입니다"고 우겨서 살아났다.

그러나 이솝은 이와 정반대되는 얘기도 들려주고 있다.


체면-양심 지키자

새들과 짐승들 사이에서 전쟁이 벌어지려 하고 있다. 새들이 박쥐에게 자기네편을 들어달라고 간청했다. 박쥐는 잘못 편들다 혹시 낭패보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새가 아니라 짐승이다"라면서 편들기를 거절했다. 이번에는 짐승들이 자기네 편을 들어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나는 새이다'라고 발뺌을 했다. 다행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새들과 짐승들은 제각기 평화를 축하하는 잔치를 벌이기로 했다. 박쥐는 두곳에서 모두 박대를 받았다.

사람이 명예며 체면이며 책임이며 긍지며 양심 따위를 내버리고 그냥 살아남기로 마음만 먹는다면 산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다. 영악한 사람은 바람 따라 잘 나부끼기도 한다. 한 해가 또 저물어 간다. 마치 치사스럽고, 추악하고, 뻔뻔스런 인간들만으로 엮어진것 같은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는 것이다.



스페인왕과 행복

  옛날, 스페인의 어느 왕이 행복해지려고 사치와 연락을 즐기면서 매우 호화롭게 살았다. 그러나 그럴수록 왕은 행복감은 커녕 도리어 마음이 허전하고, 불안,초조 하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하루는 신하들을 모아놓고 어명을 내렸다. "경들은 속히 전국을 수소문하여 스스로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찾아서 데리 고 오렸다!" 


  신하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몇 날이고, 몇 달이고 걸려서 만나는 사람들을 죄다 붙들고, "당신은 행복합니까?"하고 물었다. 그러나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오직 하나 밖에 없었으니, 그는 누더기 옷을 걸치고 막대기 하나를 들고 두메 산골에서 양을 치고 있는 목동이었다.


아빠보고파 온다더니

    칼기 리비아 사고 : 최연소 희생자 국교 5년 이은진양;  "옷에 불이 붙어 뜨겁다고 소리치는 딸을 지척에 두고도 구출하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31일 새벽 1시쯤 성남시 태평2동 인하병원 1811호 병실. 방학을 맞아 어린 남매를 데리고 리비아에서 10년째 근무하는 남편 이윤규씨(37.대우중기사업부과장)를 만나러 가던 중 불의의 사고로 딸을 잃은 김정아씨는 가족.친지등 20여명의 오열 속에 말을 잊지 못한 채 연신 눈물을 쏟았다.

    ...이들이 서울을 출발한 것은 26일 오후 6시 30분. 이들의 좌석은 14번 A.B.C.로 비교적 앞자리였다. 복도쪽인 C석에 준호군이 앉고 숨진 은진양이 가운데, 어머니는 창가에 앉았다. 비행기가 트리폴리 공항부근에 도착한 27일 오후 2시쯤 (한국시간) 준호군은

안전벨트를 푼채 어머니 무릎에 앉아있었고 누나 은진양은 벨트를 매고 앉아있었다.

    "착륙안내방송이 끝난지 2-3분쯤 지나 내릴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꽝소리와 함께 비행기 뒷좌석에서부터 불이 나 준호를 꽉 껴안았습니다. 티비와 의자등이 앞으로 쏠리고 옷에 불이 붙은 상태에서 준호가 살려달라고 소리쳐 어떤 남자분이 꺼내줘 목숨을

건졌습니다."

    김씨는 악몽의 순간을 되새기며 온몸을 떨었다. 은진양이 옷에 불이 붙은채 뜨겁다고 소리치며 의자에 몸이 매달려 불길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모습을 보고서도 두 모자는 "은진아"를 외치며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사고직후 아버지 이씨는 급히 차를 몰아 5km쯤 떵어진 공항으로 달려와 살아남은 두

사람을 끌어안고 울부짖었을 뿐 어린 딸의 모습은 흔적도 볼 수 없었다.



   알베르 까뮈   시지프스의 沸瓣


  알베르 까뮈가 쓴 시지프스의 沸瓣를 보면 까뮈는 그 책에서  麗椅亘한인생을 이야기해주며 습관과 타성에 젖어버린 현대인의 기계적인 삶과 참된 인식이 잠들어버린 무관심, 무책임한 오늘날의 사람들을 그렇게 표현했다.

인생의 부조리를 어떻게 각성할 것인가 ?  까뮈는 膵가霽으로

  1) 인생의 허무, 무의미를 느끼고 자살하든가 ?

  2) 생의 유한한 범주를 넘어 무한한 沸께 귀의하든가의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까뮈는 제 3의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길이 桃蹴이라는 것입니다.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날마다 산꼭대기로 올리면서 그렇게 명령한沸께 끝없는 반항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바른 해결책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영웅들의 모습



알렉산더


알렉산더가 아직 아이였을 때 그의 아버지 필립포스 세가 땅을 많이 정복하자 '아버지가 다 정복하면 내가 나중에 정복할 땅이 없어진다.' 고 말했다.

부왕이 암살되자 약관 스므살에 왕위에 오른 그는 아버지보다 훨씬 넓은 땅을 정복했다. 그는 이란을 정복한 후 멀리 인도까지 원정하였으며 정복지에는 자신의 이름을 붙힌 알렉산드리아 시를 70개소나 건설하였다.

그렇게 관대하고 인자하고 부하를 사랑하던 알렉산더도 전승의 교만에 도취하여 자신을 신격화하고 절제를 잃어버리자 술과 색에 기울어져 성질이 난폭해졌다.그래서 원정의 제일 공로자인 노장 파비니오의 부자를 죽이고 은인 그라이다스도 죽였다.

인도 원정을 마치고 페르샤로 돌아오는 길에 바빌론에 들렸다. 신관은 그곳을 들리는 것이 불길하다고 예언하였으나 그것을 무시했다. 어느날 밤 그는 오랜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니야카스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연회를 마친다음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 총애를 받는 신하 메디야스가 들어왔으므로 다시 술을 마셨다. 그 이튿날 석양 때까지 자고 일어 났다가 다시 술을 마셨다. 몸이 약해지자 열병이 걸렸다.

알렉산더는 크토리아 왕녀 크로사나와 결혼하였고 다시 다리우수 왕녀 스타티라와 결혼하였으나 아들이 없었다. 왕의 병이 깊어지자 한 신하가 물었다.

      "대왕께서 별세하신 후에는 누구에게 나라를  맡기려 하시나이까 ?"

      "가장 강한 자에게 " 왕의 대답이었다.

병이 더하여 진다는 소문이 군대 안에 퍼지자 다투어 그의 마지막을 보기를 원했다.

그러나 평소의 측근자들만 무장해제를 하고 왕의 병상에 들어갈 수 있었다. 왕은 슬피 우는 부하들의 손에 입을 맞추어 결별의 뜻을 표하였지만 후계자에 대하여서는 별 말이 없었다. 그날 밤에 세상을 떠나니  BC 323 년 6 월 28일 그의 재위 12년 8개월 그의 나이 33세 였다.

33세에 죽은 또 한사람이 있다. 그는 많은 사람을 살렸으나 알렉산더는 많은 사람을 죽였다. 음부는 세상 영웅들을 옴을 영접하고 있다. (사14:9)


    폼페이우스


한 때 로마의 삼두 정치의 한 사람이었던 폼페이우스는 씨이저와의 대결에서 패 한 후 그가 지배하던 로마 판도 안에서는 숨을 장소가 없었다. 부하 몇을 데리고 낮이면 숨고 밤이면 도망가서 소아시아에 있는 애인 코네리를 데리고 그는 이집트로 다시 향했다.

생각해 보면 억울하고 서렵기 그지 없었다. 대 정치가요 대장군이던 자신이 도망가는 신세가 되다니. 스파르타쿠스의 노예 반란을 진압했고 지중해의 해적을 소탕한 자신이 아니가? 대 로마 제국을 지배하던 종신 집정관이 아닌가? 전날 이스파니아,시리아를 정복했고 개선장군으로 입성하던 때의 만세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이 아닌가?

과거 이집트를 도와 준일이 있으므로 그 인연을 믿고 이집트로 가는 길이었다.거기서 다시 기회를 보자는 속샘이었다. 그는 베르샴에 배를 세우고 이집트 정부에 자기가 왔음을 통지하였다.이집트 정부에서는 만약 그를 환영하면 씨이자의적이 되고,만일 그를 환영하지 않는다면 후에 그가 다시 세력을 얻을 때는 불리할 것으로 판단한 그를 거짖으로 환영하여 죽이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폼베이우스 일행을 맞으려오는 배에 탄 사람들이 무장을 하고 있었다. 아기를 안고 불안스럽게 바라보던 아내 코네리는 남편의 소매를 당기며 이집트 배로 내려가지 말라고 만류했다. 그러나 그는 작별의 키스를하고 이집트 배로 내렸다. 거기에는 옛날 자기의 부하였던 한 로마의 사관이 타고잇는 것을 보고 반가와서 "자네는 옛날 나를 따르던 부하가 아닌가?" 하니 그 사관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관은 해안에 상륙하자 번개같이 폼베이우스를 찔려 죽이고 그 부하도 죽였다.

그는 폼베이우스의 목을 잘랐다. 가족들은 해안으로 가서목없는 시체를 안고통곡하다가 화장하여 유골만 가지고 돌아왔으니 BC48년 9월 28일, 그의 나이 59세였다.

뒤를 쫓아 알렉산드리아에 상륙한 씨이자 앞에는 폼베이우스의 머리와 원수의 도장인 반지가 운반되었다. 씨이자는 눈물을 흘렸다. 옛날의 동지요, 사랑하던 사위였기 때문이다.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약4:14


    남이 장군


남이 장군은 1441 년 (세종 23년) 의산군(迎買가) 휘(壑)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의령 (迎苟),태종(車靭)의 외손자 이다. 좌의정 권남의 4녀와 결혼 1457년 (세조3년) 17세로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세조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

1467 년 (세조 13년) 이시애(譽枇爽)가 북관(瀨가)에서 난을 일으키자 雁境偶으로 토벌대에 참가 이를 평정하고 稶개공신등에 오르고 迎買가에 봉해졌으며 이어서 서북편의 가俺者를 정벌하여 불과 27세의 나이로 병조판서가 되었다.

1468 년 栒靭(예종)이 즉위한지 얼마 안되어 대궐에서 숙직하던 어느날 밤 남이 장군은 擢紡이 나타난 것을 보고 묵은 것이 사라지고 새 것이 나타날 징조라고 말했다.

그로서는 구역질나는 선비의 생리,음모를 잉태하는 족벌 사회, 어두움 만으로 둘러싼인 점점 커져가는 부패의 공을 저 멀리 차 버리고 싶었을 것이다.그러나 평소 그의 승진을 질투하고 있던 璵猥가이 이르 엿듣고 그의 시 "暇`沙曳斜膽菜가"을  恐菜가으로 고처 역모를 꾸민다고 모함을 했다.

      "백두산 돌을 칼갈아 가루내고

       두만강 물을 말먹여 바닥내리

       사나이 20세에 나라를 바로잡지 못하면

       후세에 그 누가 대장부라 이르랴."

      그는 모진 고문을 받았다.살을 태우고 뼈를 깍이는 갖가지 형벌과 온갖 감언이설에도 그는 끝끝내 굴하지 않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누구하나 그의 무고함을 변호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부친과 절친한 사이로 그의 결백을 누구 보다도 잘아는 당시의 영의정 가芙(강순)마져 하얗게 센 머리를 조아리고 掩가牢齧이렀다.

      남이는 역모의 배후를 캐내려는 고문 끝에 다리가 부러졌다. 그는 이제 자기의 운명이 마지막에 이르렸음을 알았다. 불타는 눈으로 강순을 바라보며 남이는 입을 열었다.

    저자, 강순이 나를 시켰소. 그것은 노한 음성이었다. 순간 영의정 강순은 새파랗게 질렸다. "남이야 네가 내게 무슨 원한이 있어 나를 이렇게 모함하느냐?" 그러나 남이는 의연히 말했다.

      "원통한 것은 당신이나 나나 마찬가지이다. 나의 원통함을 알고서도 구하지 않으니 당신 또한 원통하게 죽는게 당연하지 않느냐 ?"

      1818년 순조 18년에 남이 관직이 복구됨 시호는 曾屢로.


      逗梱買蕪 碁皎서

      梱譏가璧 식畸牢

      暇沙曳斜 膽菜가

      輻俳간秦 境瑢曆



 노산 이은상

  차창을 내다보니 산도 나도 다 가더니,

내려서 들러보니 산은 없고 나만 왔네

다 두고 저만 가는 게 인생인가 하노라.        


우탁 인생의 늙어감을 한탄한 시조


한 손에 막대잡고 또 한손에 가지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堪瓮優

  고대 로마의 扼攬가 세네카는 94세까지 장수했는데 그는 평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畏盲하고 있다." 고 탐욕스럽게 먹고 마시고 縝罐 에 빠지며 히비의 감정 변화가 지나치니 단명할 수 밖에 없다는 것. 백살이 넘는 族가購들만 가입한 鼇憐遯北浦 가 회원들을 조사해서 얻은 장수비결 8池은 毅璡,毅가, 驢8籠(焙浜),가炙, 가疎, 노동, 흥분안하기, 서두르지 않기 등이다.



(자고새 이야기)


  자고새라는 새를  들어보셨습니까? 성경   예레미야17장10,11절에 나오는 특이한 종류의 새입니다. 이   자고새는 참으로 어리석은 새였습니다.왜냐하면  자기가 낳지도 않은  알을  모아서 품기 때문입니다.남의 알을 잔뜩모아  앉아서  온갖 고생을  하며 정성을 드립니다.  그러나 알에서 깨어난  새들은 조금만 자라면 각각 제 어미를 찾아 떠납니다. 그동안 자고새가  가져던 고생과  품어준 수고는 모두 허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인의 모습이  이 자고새 같습니다. 진짜   필요한 것은 제쳐두고 다른 것을 얻기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베드로는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이 분입니다.



천년동안의 삶(인생의 허무,만족)

야야티라는 한 위대한 왕이 있었다. 그의 나이가 어느덧 백살이 되었을 때, 그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생을 살만큼 산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부귀 영화를 다 누려 본 것이다.

어느 날, 죽음의 신이 야야타에게 찾아와서 말했다.

  "이제 그대는 떠날 때가 되었다. 준비를 하라, 나는 그대를 데리러 왔다."  야야타는 이윽고 사신을 바라보았다.   그는 마치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한 전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야야타는 두려움에 떨며 말했다.

  "너무 일찍 오셨습니다."   사신이 말했다.

  "내가 일찍 왔단 말인가? 그대는 백년동안이나 살았다. 이제 그대의 자식들 마져 늙은이가 되었다. 그대의 장남이 지금

   여든살이다. 더 무엇을 바라는가?"   야야타는 백여명의 아내와 백여명의 자식을 갖고 있었다.

그는 사신에게 말했다.

  "저를 위해 부탁을 들어 주십시오. 당신이 누군가를 데려가야 한다면 나를 대신하여 내 자식들 중 한 사람을 데려 가시고 저를 백년만더 살게 해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야야티는 그의 자식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아 이야기를 하자 나이든 자식들은 한결같이 입을 열지 않았다.  

이 때 겨우 열여섯밖에 안된 가장 어린 막내 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제가 대신 죽겠습니다."   그러자 야야티를 부르러 온 사신이 그에게 말했다.

  "너야말로 너무나 순진한 소년이구나 아흔 아홉며이나 되는 너의 형들이 모두 입을 다물고 있는데 너는 아직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했다. 그런 너를 데려가는 것은 너무나 가슴아픈 일이다. 다시한번 생각하도록 해봐라."

어린 소년이 말했다.

  "더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나는 오히려 큰 깨달음을 얻고 가는 겁니다. 백살을 사신 아버지도 인생에 만족하지

   못하는데 나역시 더 살아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헛되게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적어도 나는 아버지를 위해 이렇게 좋은 일을 할 수 가 있습니다. 자. 나를 데려가 주십시오."  

그래서 사신은 그 어린 막내 아들을 데려갔다.

그리고 백년 뒤 사신은 다시 야야티를 찾아왔다. 그는 이번에도 이렇게 말했다.

  "백년은 너무 짧습니다. 다른 아들을 드릴테니 나에게 한 번만 더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야야타는 다시 백년을 더 살게 되었다. 그런데 언제나 이런식으로 그는 천년을 더 살 수 있었다. 마침내 죽음의 신이 열번째 그를 찾아 왔을 때, 그제서야 야야타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처음 저를 데리러 왔을 때처럼 여전히 인생에 만족을 못하지만 이젠 당신을 따라가겠습니다. 이제 한가지

   사실만 확실히 알았습니다. 천년을 살고도 만족을 얻을 수 없는 것이라면 만년을 산다해도 그것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폼페이우스


    한 때 로마의 삼두 정치의 한 사람이었던 폼페이우스는 씨이저와의 대결에서 패 한 후 그가 지배하던 로마 판도 안에서는 숨을 장소가 없었다. 부하 몇을 데리고 낮이면 숨고 밤이면 도망가서 소아시아에 있는 애인 코네리를 데리고 그는 이집트로 다시 향했다.

    생각해 보면 억울하고 서렵기 그지 없었다. 대 정치가요 대장군이던 자신이 도망가는 신세가 되다니. 스파르타쿠스의 노예 반란을 진압했고 지중해의 해적을 소탕한 자신이 아니가? 대 로마 제국을 지배하던 종신 집정관이 아닌가? 전날 이스파니아, 시리아를

정복했고 개선장군으로 입성하던 때의 만세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이 아닌가?

    과거 이집트를 도와 준일이 있으므로 그 인연을 믿고 이집트로 가는 길이었다. 거기서 다시 기회를 보자는 속샘이었다. 그는 베르샴에 배를 세우고 이집트 정부에 자기가 왔음을 통지하였다.

이집트 정부에서는 만약 그를 환영하면 씨이자의적이 되고,만일 그를 환영하지 않는다면 후에 그가 다시 세력을 얻을 때는 불리할 것으로 판단한 그를 거짖으로 환영하여 죽이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폼베이우스 일행을 맞으려오는 배에 탄 사람들이 무장을 하고 있었다. 아기를 안고 불안스럽게 바라보던 아내 코네리는 남편의 소매를 당기며 이집트 배로 내려가지 말라고 만류했다. 그러나 그는 작별의 키스를하고 이집트 배로 내렸다. 거기에는 옛날 자기의

부하였던  한 로마의 사관이 타고잇는 것을 보고 반가와서 "자네는 옛날 나를 따르던 부하가 아닌가?" 하니 그 사관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관은 해안에 상륙하자 번개같이 폼베이우스를 찔려 죽이고 그 부하도 죽였다. 그는 폼베이우스의 목을 잘랐다. 가족들은 해안으로 가서목없는 시체를 안고 통곡하다가 화장하여 유골만 가지고 돌아왔으니 BC48년 9월 28일, 그의 나이 59세였다.

    뒤를 쫓아 알렉산드리아에 상륙한 씨이자 앞에는 폼베이우스의 머리와 원수의 도장인 반지가 운반되었다. 씨이자는 눈물을 흘렸다. 옛날의 동지요, 사랑하던 사위였기 때문이다.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약4:14



풍요속의 자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기 위해 세계에서 제일 잘 산다는 덴마크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덴마크가 잘 사는  나라라는 것은 들어 알고 있 었지만 직접 가보고는 정말 놀랐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강원도 두메산 골 정도 되는산간벽지가 그  시설은 우리나라 여의도보다 월등히  나 았습니다. 그런데또 한 가지 놀란 사실은  인구 5백만명밖에 안되는 이 조그만 나라에 자살하는 사람 수가 1년에 3천명이 넘는다는 것 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 무엇하나 부족함 없이 풍족한 나 라에서왜 이렇게 자살하는 사람이 많을까요.  잘 사는 나라에 높은 자살지수. 이것은 생(생)의 만족이란 물질의 부요함만도 아니고 어떤 목표에 있는 것만도 아니라는 것을 잘 증명해 주는  것 같습니다. 세 상에서, 그 어느 것에진정한 가치를 두고 끊임없이 노력하여  그 목 표에 도달한다고 해도 그것이 사람의 영혼에 진정한 만족을 가져다


 주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더 큰 허무와 삶의 깊은 회의에 직면할 뿐 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 그 어느  것에서도 영원한 것을 찾을 수 없고 우 리의영혼에 참 만족을 줄 수 있는 것도 발견할 수는 없습니다. 그 러나 예수의 십자가, 그 사랑만은 영원한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모 시고 살때 어떤 상황에서도 만족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허무의 벽

 잠 7:25; 딤후 3:16,17; 삿 13:8; 계 13:14


  개신교가 들어오기 전 한국의 사회는 미신이 지배하는 주술사회였다.  국민 대다수가 글을 몰랐고, 운명을 믿으며 그 생활 속에서헤어나올 생각조차하지 않았다.  사람들을 지배한 샤머니즘의 주요관심은 인간의 윤리가 아니라 영계(영계)가 조작하는 재액으로부터의 인간해방이었다.   잘못된  사상속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위해 선교회에서 실시한 것은  성경교육과  성서적 신앙과 윤리관 고취였다.


  근대식 교육으로 말미암아 여성들의 완고한 미신사상을 극복해 나가기 시작했다.  여선교회는 한국 여성들의 미신타파를 위해서 강력한 복음의 무기를 사용했고, 현대식 방법으로 과학을 교육함으로써 미신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하였다.  교육은 인간을 둘러싼 허무의 벽을 무너뜨리고 그 속에 있는 자아의 눈을 뜨게 하며, 인간의 자아가 참된 가치관을 찾아 참 인간으로 돌아오게 하는 내적 운동을 일으켰다.  물론 제대로 신학교육을 받지  못한 한국인 지도자들이 샤머니즘을 배경으로 교육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무의 벽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감당했다.



 황랑지몽


  인생이 꿈과같고 영고성쇠가 하잘 것없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膈(격) 나라의 심기제(巳가薏) 의 소설 溱莊가(침중기) 의 이야기에서 나온 말입니다.이 말을 달리 한탄지몽이라고도 합니다. 堪巫(감무)란 청년이 조(伊)나라 옛 수도인 한탄(하부성)에서 輕躪 여옹(纖屍)의 베게를 빌어서 조는 동안 노생은 명가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여 출세하고 재상까지 지내며 부귀영화를 누리는 꿈을 꾸었읍니다. 눈을 뜨자 자기는 여전히 도사의 베게를 베고 곁에는 도사가 앉아있고 노생이 자기전에 끓이던 敗絮(패서)이 아직도 꿇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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