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예화 60편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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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예화 60편 모음
1.그냥 다만 한 걸음씩
어떤 분이 '한국교회개혁 95개조' 라는 글을 보내주셔서 읽어보았습니다.
교황 레오10세는 베드로성당 공사비 때문에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그 면죄부를 파는 일행이 비텐베르크(Wittenberg)에 왔을 때 이를 본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로마카톨릭의 잘못을 95개 조항으로 작성하여 1517년 10월 31일에 비텐베르크 성당 벽에 붙인 것을 종교개혁의 시작으로 보는데, 아마도 그것을 흉내내어 '한국교회개혁 95개조'를 작성한 것 같았습니다.
읽어보내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요, 지당하신 말씀이며, 정말 그 주장대로만 한다면 한국 교회가 개과천선(改過遷善)할 절호의 기회가 될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던(?)젊었을 때 의 제 혈기라면 한국교회를 개혁할 '전사'가 되자고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나섰을 것 같은데 아, 저도 이제 나이를 먹어 가는 것인지, 사람이 비겁해져 가는 것인지, 아니면 철이 들어가는 것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별로 관심도 없고 흥도 안 나네요.
그래서, 교회 개혁의 과업은 그분들에게 맡겨드리고, 저는 다만 제 자신을 개혁시키고자 합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의 한 꾸석탱이 한 뼘 작은 공간만이라도 변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저는 주님과 함께 갈 수 있는 곳까지 한 걸음씩 천천히 노닥거리며 길을 걸어볼까 합니다. 주님 얼굴 바라보며 그분을 조금이라도 닮아 보는 것!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개혁'인 것 같아요. ⓒ최용우
2.뭐가 문제인가?
요즘 교회신문을 보면 '개혁, 변화, 갱신,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뭔가 새로운, 혁신적인' 이런 단어들이 많이 보입니다. 한국교회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저런 단어로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대답은 하나같이 궁색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니까 뭔가 위기의식을 느끼기는 하지만, 그것을 돌파할 만한 의지는 없는 셈입니다.
"이는 힘으로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4:6)
'힘'이나 '능'은 인간적인 방법을 말합니다. 인간적인 학설(이즘)이나, 무슨 세미나, 무슨 운동, 무슨 목회 방법, 설계도, 무슨 단체, 지식, 기술, 테크닉 요령 등등 이것이 21세기 교회의 대안이라고 야심차게 주장하는 것들이 많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인간적 수단과 방법들을 비웃으시며 그냥 내버려 두십니다. 어디 한번 해 보라고...
하나님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하나님은 너무 많은 일을 하는 유능한 사람을 쓰시는 게 아니라, 나는 못하겠다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있는 사람 억지로 끌어내어 쓰시기를 좋아합니다. ⓒ최용우
3.영원한 종교 개혁
카톨릭의 부패와 무능에 반기를 들고 루터와 쯔빙글리, 칼빈에 의해 종교 개혁을 해서 떨어져 나온 프로테스탄트(Protestant)교회가 채 5백년도 안 되어 제2의 종교 개혁이 필요하다고 아우성입니다.
교회사를 연구해 보면, 이 '개혁'의 아우성은 벌써 오래 전부터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개혁교회의 개혁은 완성이 아니라 지금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 진행형이면서 미완성인 셈입니다.
좀 더 들여다보면, 개혁교회의 열망인 그 개혁이란 한마디로 '부조리한 세상에서 떠나 성경으로 돌아가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개혁이 끊임없이 계속될 수밖에 없고 미완성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현실의 부조리를 단호하게 중단하고 성경으로 돌아가게 하는 아무런 개혁 프로그램도 없다는 것입니다.
개혁교회가 아무리 개혁을 말해도, 모든 것이 '개교회성장'에 맞추어져 있는 현재의 모습으로는 개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개혁'의 아주 작은 단초가 될 수 있을 프로그램이 수도원 영성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부조리한 현실에서 떠나 성경으로 돌아가 평생 말씀대로 살고자 했던 사람들'이 바로 수도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최용우
4.개혁기념 행사가 개혁을 대신하지는 못합니다.
종교개혁 기념 행사가 개혁을 대신하지는 못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기념 행사를 함으로써 개혁에 힘쓰지 못하는 우리의 모자라는 모습을 덮고 있지 않습니까?
실제로 개혁의 대상이 될 사람들이 앞장서서 개혁을 소리높이 부르짖음으로써 자신은 개혁에서 빠져나가는 수가 적지 않습니다.
해마다 시월 하순이면 흔히 오백년 전 독일에서 루터를 중심으로 일어난 개혁을 기억하면서 오늘의 개혁을 다짐하는 강연회가 열립니다. 이 시대의 문제를 두고서 심포지움도 하고 토론도 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어그러지거나 느슨해진 모습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더 나은 앞날을 일구기 위해 애쓸 것을 다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우리가 개혁을 많이 부르짖는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스스로 개혁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가 됩니다.
실제로 개혁하는 사람은 개혁에 대해서 그리 많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무슨 개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조차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저 말없이 조용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실제로 개혁해 나갈 따름입니다.
<박동현 교수/장신대학교 구약학>
5. 개혁, 영적 몸부림의 결과
오스 기니스의 명저 「소명」에 마르틴 루터에 관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중세 성당의 캄캄한 종루 계단을 고통스레 오르던 그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손을 뻗어 계단 줄을 잡았다. 그러고는 머리 위로 울려 퍼지는 종소리에 놀랐다. 자기도 모르게 종의 줄을 잡아당겨 온 동네를 깨웠던 것이다. 루터는 개혁을 위한 종합적 비전을 품고 치밀한 계획을 세운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 구원받고자 괴롭게 몸부림치다, 지금 우리가 종교개혁이라 부르는 16세기 격변의 순간이 시작되자 깜짝 놀란 사람이다.”
루터가 구원받고자 몸부림친 것은 그의 모든 경건, 모든 선행, 모든 고행, 모든 의식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려는 갈망을 채워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갈증 때문에 그는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는 우리가 얻어 내거나 우리가 가진 자격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님을 깨달았다. 우리가 아무리 선한 행위를 쌓으며 선해져도 하나님의 은총을 얻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설계하시고 우리에게 목적을 주신 하나님만이 죄 문제를 해결하시어 그 둘 사이의 긴장을 없애실 수 있다. 이런 몸부림이 종교개혁을 이끌었다.
「예수, 가장 위대한 생애」/ 찰스 스윈돌
6.삶을 개혁하라
얼마 전에 우리 교회 성도 한 사람이 시장에서 친구와 나눈 대화를 내게 들려주었다. 그 성도의 친구가 먼저 말을 건넸다.
“자네 꽤 오랫동안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지?”
“물론이야. 25년째 듣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자네는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어야 해!”
그리고 그 대목에서 내가 그 성도에게 물었다.
“그 친구가 당신을 가리켜 ‘자네는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야!”라고 말하지 않고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어야 해!’라고 말했다는 거죠?”
그 성도가 대답했다.
“네. 그 친구는 제가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 당신이 복음의 메시지를 25년 동안이나 들었다면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어야 함이 마땅하다.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제껏 들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와 다를 바가 없다. 결국 하나님이 과수원지기에게 “꺾어 버려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라고 명하신다. 아! 수십 년 동안 하나님 말씀을 듣고도 조금도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허다하니 내 마음이 심히 슬프다!
「네 주께 굴복하라」/ 찰스 스펄전
7.종교개혁의 기적
16세기 마르틴 루터가 로마 교황청에 ‘프로테스트’한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와 같았다. 당시 교황은 유럽 각국의 왕을 인준할 정도의 권력을 지녔고, 정권에 따라다니는 금권을 가졌으며 이를 지키는 군대도 거느리고 있었다. 이 막강한 권력 앞에 면죄부를 포함해 적어도 95개 조항이 비성서적인 거짓이라고 달려들었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당장 종교재판에서 정죄되고 처형을 당할 신세가 됐다. 그러나 그는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셔서 옛 원수 마귀를 향해 날 대신해 싸우니 누가 당하랴”며 용기를 가졌다.
그의 주장을 취소하라고 요구하는 재판정에서는 “나는 다른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주여, 나를 도우소서”라고 했다. 그렇게 죽음으로 끝날 일이었으나 임마누엘 주님은 생명의 일을 하셨다. 진리 편에 서는 세력을 만드시고 그들을 통해 루터를 비밀의 성 안에 머물게 하시어 보호하셨다. 여기서 그가 성경적 투사의 ‘은혜에 의한 믿음으로 구원받는 진리’를 계속 전함으로써 기독교가 시작됐다. 서재일 목사(원주영강교회)
8.종교개혁은 진행형
역사는 기억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희망의 샘이다. 사건들을 기록한 역사도 있지만, 사건의 흐름 속에 담긴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뜻'의 역사가 있다. 전자는 기억하고 파악하는 것으로 족할지 모르지만, 후자는 오늘의 삶 속으로 가져와 소화하고 생수처럼 마시고 힘을 얻어 결단하고 행동하는 밑거름이 되게 한다.
종교개혁 사건은 역사적 유물도, 박물관의 전시물도 아니다. 종교개혁은 이어져 왔고, 지금도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중세 기독교의 기독교답지 못한 타락과 허물이 종교개혁의 현장이었다. 개혁을 외치며 개혁의 분신으로 자처하며 태어난 '개신교'가 어느새 개혁의 대상이 된 듯하다. 이럴 때일수록 외부의 개혁 요구에 자기방어로 맞서기보다는 하나님이 준엄하게 명하시는 '항상 개혁하는'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개혁하는 교회를 먼저 선택하셨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요 은총이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9. 느헤미야의 개혁운동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1세(B.C. 464-423) 때에 왕의 술 맡은 관원이었다. 이 직책은 왕의 생명과 직결 되는 자리였기에 성실한 성품이 아니고서는 맡을 수 없는 직위였다.
그는 B.C. 445 년 조국 이스라엘이 당하고 있는 어려운 처지를 듣고는 자기가 모시고 있는 왕으로부터 예루살렘 총독직을 허락 받고는 허물어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였다. 그 시대에 성(城)이란 국가의 상징이기도 하고 주권의 상징이기도 하던 때였다. 느헤미야가 허물어진 성을 재건하였다는 것은 민족의 역사를 재건하였다는 의미이기도하다.
느헤미야가 총독의 신분으로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13년전(B.C 457년)에 에스라가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먼저 귀환하여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새롭게 하며 성전 건축 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에스라가 주도하였던 개혁운동은 아직 사회의 기틀이 너무나 취약하였던 때이였기에 큰 성공을 이루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 때에 느헤미야가 준비된 일꾼으로 등장하여 과감하고도 효율적인 내용으로 개혁운동을 진행 시켰기에 이번에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게 되었다. 느헤미야가 주도한 개혁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다섯 가지 성공의 비결이 있었다.
느헤미야는 조국이 처한 비극적인 현실을 직면하고는 조국의 역사를 새롭게 하는 일에 인생을 투자하였다. 그는 초인적인 의지와 과감한 추진력으로 이스라엘의 무너진 역사를 재건하는 일에 헌신하였다. 그는 온갖 시련과 장애를 만나게 되었으나 끝내 극복하고 성공에 이를 수 있었다. 그의 개혁운동이 성공할 수 있게 된 것은 다음의 다섯 가지 비결이 하나 같이 조화를 이룸으로 성취될 수 있었다.
첫째 그는 철두철미한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는 개혁운동을 진행함에 있어 시작에서부터 마지막 마무리 할 때까지 기도로 임하였다.
둘째 그는 철두철미한 준비의 사람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사용하신다. 그는 하나님께서 조국 이스라엘의 허물어진 성벽을 쌓고 중단된 역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사명을 자신에게 준 것으로 믿게 된 후로 이 사명을 달성함에 필요하다고 생각 되는 모든 사항을 철두철미하게 준비하였다.
셋째 그는 주어진 목표를 이룸에 있어 철저하게 팀워크를 중요시 하였다.
느헤미야서 3장 전체가 그가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함에 있어 팀워크의 가치를 얼마나 중요시하였는지를 말해준다.
넷째 그는 재물과 이권에 투명한 미스터 크린(Mr. Clean)이었다.
그가 다른 지도자들에 비하여 더욱 돋보이는 것은 자기 자신만이 투명하고 깨끗하였을 뿐 아니라 자신의 수하 사람들 모두가 깨끗한 처신을 하도록 지도하였던 점이다.
다섯째 그는 개혁의 원리를 하나님의 말씀에 두어 개혁운동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벽에 부딪힐 때마다 백성들과 함께 말씀을 읽으며 개혁운동의 목표와 방향과 내용을 새롭게 다짐하곤 하였다.
우리 사회도 지난 10여 년간 개혁 이야기를 되풀이 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정을 인하여 우리의 개혁이 벽에 부딪히고 있다.
이런 때에 느헤미야의 개혁운동을 되새겨 보는 것은 우리의 개혁운동의 출구와 활로를 찾는 데에 좋은 지침이 될 것이다. /김진홍 목사(두레교회)
10. 에스라의 개혁운동
크리스천들에게 “솔로몬이 어떤 왕이었느냐”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지혜로운 왕’이었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이는 50점 밖에 되지 않는 답이다. 솔로몬이 지혜로웠던 것은 그의 집권 초반과 중반의 경우였다.
그의 후반부는 어리석은 왕으로 변질되어 나라의 장래를 완전히 그르치는 정치를 펼쳤다. 성경은 그가 그렇게 어리석게 된 이유를 숱한 비빈(妃嬪)들에 휩싸여 여인들이 그를 변질시켰다고 지적하고 있다.(열왕기상 11장 참조)
솔로몬의 실정과 그의 아들 르호보암 왕의 어리석은 처세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남?북이 분단되는 비극을 겪게 된다.(왕상 12장 참조)
한 번 분단이 된 후에는 뭇 사람들의 숱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통일을 이루지 못한 채로 남? 북이 따로따로 강대국에게 망하게 된다. 먼저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게 멸망당하게 된다. B.C. 722 년이었다. 그때 앗시리아 군대에 끌러간 포로들은 훗날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역사에서 실종 되고만 것이다.
그러나 남 유다는 그 후 150여년을 더 지속하다가 바벨론에게 망하게 된다. B.C. 587 년이었다. 바벨론에 망하게 되기 전에 이렇게 살면 나라가 망하게 된다고 피눈물을 흘리며 호소하였던 선각자가 있었다. 선지자 예레미야이다. 그는 나라가 망하지 않게 될 대안(代案)을 제시하기를 상?하?관?민(上下官民)이 회개하는 길이라고 다음 같이 호소하였다.
“유다 국민들아, 예루살렘 시민들아, 할례를 받아 나에게 몸을 바쳐라. 마음에 수술을 받아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의 사악한 행실을 보고 화를 내어 너희를 불처럼 태우리니, 그 불을 꺼줄 사람이 없으리라.”(공동번역 예레미야 4장 4절)
그러나 누구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태평성대에 국가의 위기를 조성하며 민심을 현혹 시킨다고 그를 투옥하고 말았다. 그가 갇힌 감옥은 최악의 조건인 왕궁 뒷 뜰에 있는 우물이었다. 우물 바닥은 진흙뻘이어서 가슴에까지 뻘흙이 차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그가 석방 된 것은 예루살렘 성을 함락 시킨 적군, 바벨론군에 의하여서였다.
에스라가 정복군인 바벨론 군에 의하여 우물 감옥에서 석방 되어 나오고 보니 그렇게도 ‘회개하면 살 길이 있노라’고 절규하였던 조국은 이미 망하고 난 후였다. 그는 슬픈 조국의 모습을 바라보며 예레미야 애가(哀歌)를 지었다.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밤에는 슬피 우니 눈물이 빰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들 중에 그에게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들도 다 배반하여 이제는 원수가 되었도다.”(애가 1: 1,2)
그는 옛날 동료들이 포로로 잡혀 굴비처럼 손이 묶여 끌러가는 모습을 대하고 그들에게 다음 같이 희망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예레미야 29:10,11)
이제는 조국도, 성전도, 인권도, 희망도 아무것도 없어진 채로 그냥 한 노동력으로만 끌려가는 그들에게 고국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희망의 소리가 그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포로로 끌려가긴 하지만 하나님이 허락하는 때에 고국으로 귀환할 것에 대한 예언을 한 것은 예레미야가 처음이 아니었다. 그보다 이미 150 여년 앞서 선지자 이사야가 다음 같이 예언한 바 있다.
“고레스에 대하여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이사야 44 :28)
마치 굴비 묶음처럼 줄줄이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포로들은 바벨론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강변에 세워진 포로 수용 시설에 머물며 기약 없는 종살이를 시작케 되었다. 그들은 나날의 고달픔과 서러움을 시로 읊어 남겼다. 시편 137편이 그 시절에 쓰여진 대표적인 작품이다.
“우리가 바벨론 강 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기억하며 눈물 흘렸노라.
강변 버드나무 가지에 우리의 수금을 걸어놓고서.
우리를 잡아온 그 사람들이
그 곳에서 노래하라 청하였지만
우리를 끌어온 그 사람들이
기뻐하라고 윽박지르며
‘시온 노래 한 가락 불러라’하였지만
어찌 남의 나라 낯선 땅에서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 수 있으리요.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 손이 말라버릴 찌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치 아니하거나
예루살렘보다 더 좋아하는 다른 것이 있다면
내 혀가 입천장에 붙을 지로다.”
그런데 어느날 해방의 날이 왔다. 그 날은 글자 그대로 도적같이 왔다. 구약성경 에스라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홀연히 임하는 해방의 날을 이렇게 말해 준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에스라 1 : 1-3)
여기서 말하는 ‘바사’는 페르시아 제국을 일컫고 고레스 왕은 페르시아를 건국한 Cyrus 대왕을 말한다. 그는 나는 새가 아니고는 들어갈 수 없다던 바벨론 수도를 성 밑으로 땅굴을 파고드는 작전을 펼쳐 하룻밤 사이에 점령하고 말았다. 그 후 그는 바벨론 제국에 끌러와 종살이 하고 있던 소수 민족들에게 각기 자기 나라로 돌아가 자기들이 믿던 신을 섬길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해방의 날을 맞게 되어 꿈에서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 갈 수 있게 되었다. B.C. 539 년 10월이었다.
페르시아(PERSIA)의 사이러스(CYRUS) 대제의 배려로 포로 생활에서 풀려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감격과 기쁨에 대하여는 1945년 8?15 광복절의 기쁨을 경험하였던 우리들로서는 능히 짐작할 수 있는 바이다. 암울하였던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어느 날 해방을 얻게 된 그들로서는 그 기쁨이 오히려 꿈만 같고 현실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때의 감격을 시편 126 편에서 다음 같이 시로 읊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들을 풀어주시던 날,
그날이 꿈이든가 생시든가!
그 날 우리들에게는 함박 같은 웃음이 터져 나왔었고
흥겨운 노랫가락이 입술에 넘쳤도다.
그 날 이교 백성 가운데서 들려오는 말소리,
‘놀라워라, 여호와께서 자 사람들에게 하신 일들! ’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일을 하셨으니,
우리는 얼마나 기뻤던가?
여호와께서 저 네겝 강바닥에 물길 돌아오듯이,
우리의 포로들을 다시 데려오듯이
눈물을 흘리며 씨 뿌리는 자
기뻐하며 거두어들이리라.
씨를 담아 들고 울며나가는 자,
노랫소리 흥겁게 곡식단을 안고 흥겁게 들어오리라.”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에스라 7 ; 10)
대제국 바벨론을 쓰러트림으로 페르시아를 건국한 고레스 왕은 건국 다음 해인 B.C. 538 년에 포로로 끌러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귀환령을 내렸다. 환희에 넘쳐 찬양을 부르며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황무지나 다름없이 변해 버린 고국 땅에 새로운 사회, 새로운 국가를 세우는 일에 전심전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당시의 지도자였던 에스라는 세 가지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을 기준으로 삼아 국가재건 내지 개혁운동을 펼쳐나갔다. 에스라 7장 10절이 그 원칙을 말해준다.
첫째는 지도자인 에스라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공부하고 실행하였다.
둘째는 자신이 익히고 실행한 말씀을 백성들에게 철저히 가르쳤다.
셋째는 지난날의 허물을 철저히 회개하는 도덕성 회복 운동을 펼쳤다.
예나 지금이나 개혁을 성취하려면 개혁운동의 기준이 되는 원칙과 목표가 분명하여야 한다. 그런 원칙과 목표가 분명치 않는 개혁운동은 끝내는 실패로 끝나게 되고 만다. 에스라는 그 원칙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았다. 그래서 그 말씀을 먼저 자신이 철저히 공부하고 익힌 후에 스스로 실천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실천한 내용을 국민들에게 가르쳤다. 그리고 그 말씀이 요구하는 기준을 따라 상하관민이 함께 그릇되게 살았던 삶을 회개하는 데서 개혁을 시작하였다.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살아 있는 말씀이요 원칙이다. / 김진홍 목사
11. 참된 행복 참된 개혁
사람들은 행복이 편안, 성장, 일에
있는 줄 압니다만 오해입니다. 참된 행복은
내면의 평안, 과정의 성숙, 사랑과
사명의 성취에 있는 것입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겠다고요?
어불성설입니다. 개혁은 언제나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먼저 나 자신이 변화되면
점차 내 가정, 공동체, 민족과 역사가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 김석년의《지혜자의 노래》중에서 -
* 참된 행복, 참된 개혁,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깥 조건을 탓하지 마십시오.
자기 내면(內面)의 문제입니다.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남과 싸워 이기면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와 싸워 이기면 위대한 인격이 될 수 있습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12. 개혁의 불길 기도의 불길
칼럼니스트 짐 프랭클(Jim Frankel)은 “현대 문명이 붕괴된다면 미래의 역사가들은 ‘현대인들은 향락하다가 죽었다’라고 비웃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신은 그가 왜 이렇게 말했는지 이해하겠는가?
그의 말을 기독교적으로 바꿔서 정곡을 찌른 사람이 있으니, 그는 바로 A. W. 토저다. 그는 “현대인은 배꼽을 쥐고 낄낄거리며 지옥으로 가고 있다”라고 꾸짖었다.
이런 말들을 들을 때 나는 지금이야말로 로마 가톨릭의 빛바랜 담장 안에서 제2의 사보나롤라(Savonarola, 1452~1498. 이탈리아 가톨릭 종교개혁의 선구자)가 출현해야 할 때라고 믿게 된다.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는 바알의 신(神)들에게 둘러싸인 섬과 같다. 세상은 악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당신이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범죄한 개인, 범죄한 국가가 갈 곳은 오직 자비로운 하나님의 보좌 앞이다”라고 대답하겠다. 성경을 날마다 읽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비난할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비난할 것이다. 우리 주변의 불신자들은 우리를 비난할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비난할 것이다.
그러나 내일이면 너무 늦을지 모른다. 우리가 지금 당장 회개하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기도의 제단에 불을 붙이지 않는다면, 심판 때에 우리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 「무릎 부흥」/ 레오나드 레이븐힐
13. 개혁할 때가 있고 수성할 때가 있나니
조참은 한나라 2대 惠帝의 재상이었습니다. 조참은 소하의 부하로서 한 고조를 섬겨 한 고조가 천하 통일하는 데 큰공을 세운 인물입니다. 제위에 오른 한 고조는 제왕학 실습으로 장남 肥(훗날의 혜제)를 齊王에 봉하고, 그를 보필할 인물로 조참을 제나라 승상으로 파견하였습니다.
그 후 한 고조가 죽고, 장남 비가 제위에 올라 혜제가 되었습니다. 그 때까지 제나라 승상으로 외지에 있던 조참은 혜제 2년 저 유명한 명재상 중의 명재상 소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황제의 명을 받지도 않은 상황에서 <내 이제 한나라 재상이 되었으니 어서 낙양으로 가야겠다!> 하고 짐을 싸들고 떠났습니다.
혜제 2년, 소하의 뒤를 이어 한나라 재상이 된 조참은 허구 한날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노는 일 밖에 없었습니다. 자기만 노는 것이 아니라 그 아래 부하들도 모두 노세 노세 젊어 노세 판으로 만들었습니다. 혹 뜻 있는 선비나 친구들이 조참의 이런 모양을 보고 충고라도 할라치면 조참은 그 낌새를 미리 알아채고, 더욱 질펀한 잔치 자리를 마련하고 먹고 마시고 취토록 만들어 입도 벙긋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혹자가 혜제에게 알렸습니다.
이제 천하의 황제가 된 젊은 혜제는 무엇인가 새롭고 위대한 개혁 정치를 하고 싶은 판인데 명색이 재상이란 사람이 마냥 퍼질러앉아 놀자 판이니 심사가 좋지 않았습니다. 하여 혜제는 조참을 불렀습니다. "이보시오. 재상, 내가 이제 황제의 위에 올라 무엇인가 새로운 개혁 정치를 베풀려고 하는 참인데 재상이란 사람이 마냥 노세 노세 하고 앉았으면 어찌 하오?". 책망을 받은 조참이 아뢰기를 "폐하, 전쟁과 군사력 통솔 면에서 폐하와 천하를 통일하신 고조 황제와 비하면 어떠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혜제는 "내 어찌 감히 고조와 비할 수 있겠소!". 그러자 조참은 "하오면 폐하, 선대의 저 유명한 재상 소하와 저를 비하여 볼 때 누가 더 훌륭하다고 보십니까?". 혜제 왈 "君似不及也!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그대는 소하와는 아예 비교조차 안 되는 인물이야!"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조참 曰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처럼 위대한 고조께서 그처럼 위대한 소하와 더불어 천하를 평정하고 법률을 제정하고 질서를 세우시어 만 백성이 안정을 얻게 하신 이 나라이옵니다. 오늘 폐하께서는 바로 그런 나라를 물려받은 것이옵고, 臣은 그런 나라를 지킬 소임을 물려받은 것입니다. 개혁, 새것, 혁신 같은 소리는 접으시고 받은 유산을 잘 보존하심이 최상인 줄 아옵니다!". 혜제 曰 '善. 君休矣! 옳도다, 그대의 말이 정말 맞는 소리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사마천, 사기, 경인문화사, 509쪽>
14. 한 사람의 영향
1517년 독일의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했던 비텐베르크 시는 마르틴 루터 시로 개명된 지 오래다. 오늘날 독일 전 국민의 98%가 루터교인이다. 하나님이 함께한 종교개혁자 한 사람의 영향은 시대를 초월한다. 독일 학교의 방학은 모두 기독교와 연관되어 있다. 매년 10월1일부터 두 주간은 추수감사절 방학이고 추수감사절과 성탄절, 부활절에도 각각 두 주간 방학을 한다. 모든 국민은 교회를 위해 종교세를 낸다. 목사는 정부 공무원이며 모든 아이는 유아세례를 받고 13세가 되면 1년간 매주 두 시간씩 100시간 이상 성경을 배워서 14세가 되면 입교식을 한다. 이 날은 부모님과 일가친척이 다 모여 축하잔치를 연다. 독일은 결국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통일을 이루었다. 중간에 막힌 담을 헐고 하나 되는 것이 십자가 정신이다. 새해에는 하나님의 손에 잡힌 그리스도인이 되자.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이 새 역사를 만든다. /최낙중 목사(관악교회)
15.웨슬레의 개혁 운동
웨슬레가 살던 시대에 농민들이 도시로 이주해감에 따라 새로운 도시 빈민층이 탄생하였다. 석탄에 의해 불이 붙은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웨슬레는 킹스우드의 광부들에게 설교하면서 산업혁명에 의해 가장 잔인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을 접촉하고 있었다. 웨슬레는 석탄을 캐는 광부들에게 깊은 깊은 관심을 보였고 그들의 영적이고 물질적인 복리를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는 무료 의료원을 세우고 신용조합을 만들었으며 학교와 고아원을 설립했다. 그의 목회는 더 나아가 납을 캐는 광부들, 철공, 구리공, 석공, 하역부, 농장 일꾼, 죄수,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근로자들까지 포용하였다. 이 모든 사람들- 사회의 희생제물이 된 사람들- 에게 웨슬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의 노력은 복리의 차원을 넘어서서 창조적인 경제적 대안을 제시할 정도였다. 예리한 안목이 담긴 많은 글들을 통해 그는 개혁을 외쳤다. "땅에 홍수처럼 만연하고 있는 온갖 부정과 불의에 대담하게 항거하는 것이 원수의 목전에서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가장 숭고한 방법들 가운데 하나다."라고 확신하였다.
16. 종교개혁자 녹스
스코틀랜드의 종교 개혁자 녹스는 스코틀랜드를 기독교국으로 만든 성도인데, 그는 나라를 지극히 사랑하고, 부정에 대하여 용감하게 싸운 사람이기도 하다. 여왕 메어리 스튜어트가 구교 세력을 회복시키고, 개신교를 압박하려 할 때에 녹스는 용기 있게 일어나, 그것을 나라 지도자들에게 공개하고, 또 메어리 여왕이 구교도인 사촌동생 단리와 혼인한 일에 대하여 그 부당함을 지적했다. 그때 여왕은 스파이의 말을 듣고, 녹스를 불러다 놓고 울면서 말하기를 "네가 내 혼인 건에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했다. 그러자 녹스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 나라 백성의 일원(一員)으로 지었으니, 나도 이 나라에 해로운 일에 대하여는 미리 경고할 책임이 있다"
1562년에 메어리 여왕은 녹스를 반역죄인으로 죽이려 했으나, 녹스는 의회에서 진리대로 분명히 말함으로써 의회는 그에게 무죄선고를 하였고, 또한 그의 용기 있는 행동 때문에 스코틀랜드는 드디어 기독교 국가가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도 나라에 해될 일이 있을 때, 국민은 경고해야될 책임을 가지고 있음은 예나 지금이나 매 일반이다.(삼하12:7)
17. 종교개혁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23: 5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개혁의 기치를 들었을때 당시에 교황청의 세력은 누구도 대항할 수 없는 아주 막강한 것이었습니다. 교황은 한낱 수도사에 불과한 루터 같은 사람은 수천 명도 더 파멸시킬 수 있는 막강한 권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보름스 의회 앞에서 루터가 심문당할 때 그는 으르렁거리는 이리떼 속에 서있는 어린 양과 같았습니다. 아무도 그가 거기서 살아나오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루터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 전까지는 교황청은 그에게 아무 위협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진리를 깨우치고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95개조 항의문을 내건 다음부터 교황청은 무서운 원수로 변해 버린 것입니다. 그의 용기 있는 결단을 통해 우리는 참다운 진리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원수의 부릅뜬 눈 앞에서 상을 받는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처럼 여겨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만큼 삶을 활기 있게 만드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들의 가치를 더욱더 잘 알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기도: 하나님의 축복의 상에 참여케 하소서
18. 종교개혁
프린스톤 신학교의 유명한 성서 신학자인 오토 파이퍼라고 하는 분이 계셨는데 이 교수가 강의 시간에 학생들 앞에서 하는 말씀이 "자네들 그 종교 개혁을 마틴 루터가 일으킨 줄로 생각을 하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일세" 라고 점잖게 말씀하십니다. 학생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게 아니면 누가 한 거냐? 도대체 그럼 누가 종교개혁을 일으켰나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노교수께서는 다시 천천히,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종교개혁은 루터가 갈라디아서를 읽을 때, 루터가 그 갈라디아서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그 말씀이 그 안에서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갈라디아서의 진리가 그 사람을 폭발시켜서 루터는 그 진리를 전파하지 않고는 다른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네." 종교개혁은 루터가 한 것이 아니고 갈라디아서의 진리가 한 것이라고 아주 신중한, 대단히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공교롭게 제가 프린스톤 대학에서 공부할 때에 바로 마틴 루터의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그 때에 루터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께서는 다른 것은 전부 참고하게 하고 오로지 루터의 갈라디아 주석을 한 학기 내내 Page by page, 읽고 토론하고 연구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루터는 갈라디아 주석을 두 번 썼습니다. 처음에 쓴 것은 좀 작고 뒤에 쓴 것은 아주 큰데 신구약 성경보다도 큽니다. 이 갈라디아 주석을 읽어 나가노라면 루터가 얼마나 갈라디아서에서 불같은 은혜를 받았는지 엄청난 생명력을 경험했는지를 우리도 읽을 수가 있습니다. 성경이 주는 진리, 이 생명력이 그를 포로해서, 그를 사로잡아서 마침내 종교개혁을 이룬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진리가 나를 잡아서 당신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는 조용히 순종할 따름입니다.
19.개혁을 외치는 소리
에스더는 이방 나라의 왕비가 되었지만 자신의 민족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왕 앞에 나아가기 전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4:16) 결국 에스더의 결단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은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임했더니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역설의 진리입니다. 종교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신앙의 선배들인 루터, 칼뱅, 츠빙글리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타락한 로마 카톨릭을 향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수했던 그 결과로 오늘의 개신교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개신교도 세월이 흐르면서 비성경적인 요소들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비성경적인 전통과 기득권을 버리고 손해를 보더라도, 생명을 잃을지라도 진리를 위해 개혁을 외치는 소리가 많아져야 합니다. 교회는 오직 주를 위해 자기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 자들을 통해서 개혁되는 것입니다.
카톨릭 300년, 개신교 100년의 역사가 지난 오늘날 그리스도 복음의 씨앗은 실로 기적적이라 할만큼 성장되어 왔습니다. 우리 나라 전체 인구의 25%에 달하는 기독교인의 수적 증가는 앞으로 100년 후에는 전체 인구의 90%이상을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태를 기대할 만큼 놀라운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인구가 25%에서 90%가 된다고 해서 우리 나라가 자유와 평등과 정의가 실현되는 평화롭고 살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을까요? 교회가 개혁되지 않고, 크리스천이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한국사회는 결코 변화되지 않을 것입니다.
* 성경: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9)
20. 창조적인 선각자
1904년 영국 웨일스에 한 젊은 광부가 있었다. 머리카락은 탄진으로 범벅이었고 손톱에는 새까맣게 때가 끼어 있었다. 휴식 시간, 탄광의 광부들은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나누었으나 청년은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었다.청년은 달변가가 아니었다. 학문에 밝은 사람도 아니었다.청년의 꿈은 영국을 도덕적 타락으로부터 구해내는 것이었다.그는 한 목사를 찾아가 강연을 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자네 같은 탄광노동자의 강연에 과연 누가 귀를 기울이겠는가.단지 30분만 강단을 빌려 주겠네."
청년은 강단위에 올랐다. 목사를 포함한 17명은 그의 강의를 듣고 통회의 눈물을 흘렸다.5개월 만에 웨일스 시민 10만 명이 회개했다.2년 만에 2백만 명의 영국인이 회개운동에 참여했다.학생, 법조인, 주부, 교사 등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통렬한 회개운동을 펼쳤다. 재판관들은 법정에서 재판을 중단하고 피고를 위해 기도했다. 이 청년의 이름은 [이반 로버츠]이다. 한 사람의 <창조적인 선각자>가 영국을 타락의 늪으로부터 구출해냈다. 새로운 역사는 항상 창조적인 소수에 의해 쓰여 진다.
21. 딕시의 개혁
도로시 딕스라는 한 미국 여성이 일으킨 개혁 운동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학교 선생으로 29살에 폐병에 걸려 각혈을 했습니다. 의사는 요양을 잘 한다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충격적인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녀는 요양을 위해 영국으로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신약 성경을 되풀이해서 읽다가 “예수님께서 내게 무엇을 하길 원하실까?”라는 질문을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떤 목사님이 찾아와 그녀에게 캠브리지에 있는 교도소의 여자 죄수들에게 성경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해 왔습니다. 그녀는 교도소, 보호소, 병원 등을 방문하면서 정신병자들에게 행하는 잔학 행위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새장, 벽장, 지하실, 마구간 등에서 사슬에 묶이고 벌거벗겨져 몽둥이로 매를 맞아 가며 복종을 강요당하는 정신병자들에게 관심을 가져 달라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여러 주를 다니면서 정신병자를 위한 병원을 세우고 법을 개정하도록 촉구했습니다. 또한 캐나다, 스코틀랜드, 영국 그리고 이태리에서 이를 위해 가두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병들어 죽었을 때 그 병원의 원장은 미국에서 가장 현명한 여인이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22.휘장을 걷어라
1917년경 김길창 목사는 함안 기동교회의 조사로 부임하였다. 26세의 젊은 그의 안목으로 볼 때 교회 안에 혁신해야 할 문제들이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첫 번째가 교회 당 안의 남녀석을 구별하는 휘장 제거였다. 그래서 그는 어느 토요일 밤 기동교회의 청년들을 교회당에 모아 놓고서 일대 계몽 강연을 했다.
"여러분, 장터에 가 보시오. 남자들만 모이는 시장이 있고, 여자들만 거래하는 시장이 따로 있습니까? 아니 한 집안에서 남자들끼리 살고 여자들끼리 따로 삽니까? 주 안에서 한피받아 한몸 이룬형제자매를 이 때묻은 휘장으로 갈라 놓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의 열변에 청년들은 크게 지지하였고 이튿날 주일예배를 마친후 김길창 조사는 교인들에게 휘장무용설에 대한 열변을 되풀이 한후 휘장을 없앨 것을 제의하였다. 이 때 연로한 안 영수를 제외하고 모두 찬동하여 함안 기동교회는 한국 교회 사상 휘장 제거운동의 첫 장을 열었다. 이 일이 있은 후 경남노회가 마산 문창교회에서 열렸는데, 당시 임사부(지금 정치부)에다 안 영수가 김길창 파면 신청서를 냈다. 그 내용은 "동방예의지국에 남녀가 유별하거늘 교회를 지도하는 조사가 본 기동교회당의 휘장을 제거하였기로 김길창으 조사직을 파면해 주시길 청원합니다"라는 것이었다. 보수적 성향이 짙었던 경남 노회는 안 영수의 청원을 받아들였고 김길창은 교회 조사일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 김길창이 파면당한 1주일 만에 문창교회 한석진 목사가 그를 불렀다. 그리하여 그는 그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가 문창교회에 부임한 지 1주일째 되던 날, 한석진 목사가 예배후에 온 교인들을 남게 하고는 "여러분, 김길창 조사께서 기동교회의 휘장을 걷은 일은 장한 일입니다. 우리는 김조사의 의견을 들어봅시다"라고 하였다. 그는 자신의 소신을 밝혔고, 그 자리에서 문창교회의 누루직한 때묻은 휘장도 제거되었다.
23.신앙의 절개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에 일생을 바쳤던 존 낙스는 하나님만을 의지했던 신앙인이었다. 그는 프랑스군에 체포되어 19개월 동안 죽을 고생을 하기도 했으며 영국여왕 메리 1세의 극심한 박해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신앙의 절개를 한번도 굽힌 일이 없었다. 오히려 핍박과 고난을 받을수록 기도와 신앙의 열기를 더해 갔다.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사람들은 이렇게 추모했다.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그 어떤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도가 이곳에 잠들다."
24. 사회개혁의 능력은 그리스도밖에 없다
라이맨 애보트는 부룩클린 플리머드 교회 목사직을 사임한다는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오래 전부터 꿈꾸어왔던 사회개혁과 자선이라는 것을 통해 나의 교구민들을 위한 사역을 할 수 있으리란 것이 결코 그런 식으로는 가능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에 힘입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의 십자가 외에는 개혁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습니다."
25.절대적 신념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 존 낙스(1513∼72)는 「박해의 상징」인 메리 여왕의 불의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하는 책을 출간,왕의 비위를 건드리는 바람 에 왕정파에 의해 체포된 적이 있었다.
『그대의 신앙과 그대가 말한 것을 철회할 생각이 없는 가?』 지휘관이 매섭게 쏘아보며 물었다. 그러자 낙스는 분명한 어조로 대답했다.
『마음이 그것을 생각했습니다.입이 말했고 손이 그것을 썼습니다.만일 그것으로도 모자란다면 하나님의 은총을 힘입어 피로 써 그것을 증명하겠습니다』
26.배를 멈추게 한 희생
대형 여객선이 서인도제도를 항해하고 있었다. 한 소년이 갑판에서 애완용 개와 즐겁게 놀고 있었다. 개는 소년이 공을 던지면 쏜살같이 달려가 공을 물어오곤 했다. 그런데 소년이 던진 공이 크게 튀면서 바다로 빠졌다. 개는 주인이 던진 공을 물어오기 위해 파도가 높은 바다로 뛰어들었다. 소년은 선장에게 달려가 배를 멈추어줄 것을 당부했다.
"개 한 마리 때문에 배를 멈출 수는 없다"
선장의 대답은 냉정했다. 그러자 소년이 바다에 풍덩 뛰어들었다. 선장은 할 수 없이 배를 멈추었다. 소년의 생명을 포기하고 항해를 할 수는 없었다. 결국 소년과 강아지는 모두 무사히 구출됐다. 거대한 여객선은 개 한 마리로 항로를 바꾸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이 달려있기 때문에 항해를 멈추었다. 국가의 개혁도 이와 같은 것이다. 모든 개혁에는 반드시 그만한 희생이 따른다. 희생의 크기에 따라 개혁의 폭도 달라진다.
27.매력의 비결
17세기 영국에서 경건운동인 「퀘이커敎」운동이 일어났다. 그들은 전통적인 형식을 부정하고 「내면의 빛」을 따르며 영적인 체험과 선행을 강조했다.
영국에서 이 운동이 한창 일어날 때 나이보다 훨씬 젊게 보이는 퀘이커 교의 귀부인이 『어떻게 자신을 가꿔 그런 매력을 지니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저는 입술을 위해 진리를, 음성을 위해 기도를, 눈을 위해 긍휼을, 손을 위해 자선을, 몸가짐을 위해 정직을, 마음을 위해 사랑을 사용했습니다』
28.사회개혁운동가의 아내
웰델 필립스는 노예제도에 항거하는 시민들의 봉기에 참된 용기가 필요하던 시기에 활동했던, 참으로 위대한 개혁운동가였다. 그는 그 자신의 대범한 성품으로 칭송 받았다. 그러나 그의 힘은 그 자신만의 것은 아니었다. 병약한 그의 아내는 필립스의 강연 여행에 동행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항상 필립스에게 굿바이 키스를 해주면서 다음과 같이 조언해 주었다.
"여보, 지금이에요. 망설일 것 없어요!"
29.도전하는 삶
친정어머니가 들려주셨던 이야기다: “세 마리의 쥐가 있었단다. 한 마리는 하수구로 떠내려 오는 밥알이랑 음식물 찌꺼기를 건져 먹으며 살았지. 추운 겨울에 그것들을 더러운 물에서 건져 먹으려니 쥐의 털은 물에 젖어 꽁꽁 얼어붙었지. 그래도 그 쥐는 매일 달달달 떨면서 그곳에서만 살다가 죽었지. 다른 한 쥐는 온몸에 똥을 뒤집어쓰고는 냄새나는 똥통에서 똥 냄새를 풍기며 살았지. 또 다른 한 쥐는 쌀 곳간에 살았어. 사시사철 넘쳐나는 하얀 쌀을 마음껏 먹고 졸음이 오면 따뜻하고 깨끗한 쌀가마니 위에서 쿨쿨 늘어지게 잠을 잤단다. 얘야, 쥐가 다니는 길이 따로 정해져 있니?” 내가 말했다. “아니요.”
“그래. 하수구에 살던 쥐가 곳간에 가면 절대로 안 된다고 길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하수구에 사는 쥐는 일평생 그 하수구를 떠나지 못한단다. 더러운 물에 떠내려 오는 밥 알갱이를 주워 먹지 못하면 배고파 죽을까 봐 그곳을 못 떠나고 달달달 떨면서 살다가 죽는 거야. 똥통에 있는 쥐도 마찬가지야. 더럽고 냄새나는 것을 견딜 수 없으면서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지. 왜 못 떠나니?”
“그 쥐도 그곳을 떠나면 죽을까 봐 겁나서요.”
“그래. 언제라도 네가 있는 곳이 하수구 같거나 똥통같이 더럽고 냄새나는 곳이거든 다른 곳으로 가거라. 사람에게도 가는 길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곳을 떠나면 금방 죽을 것 같아도 떠나라. 깨끗한 길을 계속 찾아 살거라. 깨끗한 길에서도 절대로 죽지 않는단다.”
-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 유정옥
30.도전하는 삶
「폐쇄공간에서의 한계」를 여성이 도전한다. 96년 12월부터 1년간 남극의 세종과학기지에 사상 처음으로 미혼의 여의사 이명주씨(26)가 파견근무를 한다. 지난 88년 준공, 지금까지 남자대원만 파견해 온 세종과학기지 월동대가 처음으로 여성대원을 파견하는 것. 이씨는 앞으로 고무 보트훈련, 스키훈련 등 폐쇄공간을 극복하기 위한 특수훈련을 받는다.
"의지의 新 여성시대"가 본격화되는가. 소외를 당하거나 밀폐공간에 들어섰다고 금방 의지를 포기하고 좌절하는 남성들이 부끄럽다.
31.교회의 책임
1806년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크게 패한 독일은 치욕적인 조약을 맺어야 했다. 그 사건 이후 독일에서는 민족적 자각과 사회적 각성운동이 시작되었다. 농민해방 행정개혁 군제개혁 등이 진행되는가 하면 민족주체성 확립을 위한 자성운동이 일어났다. 그 가운데 베를린대학 교수였던 피히테는 나폴레옹 점령 하의 베를린 학사원에서 1807년 12월부터 매주 한 차례씩 ‘독일국민에게 고함’이라는 강연을 했다. 피히테가 강조한 것은 독일재건의 길은 무엇보다 국민정신의 개혁에 있다는 것이었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당면한 현실의 개혁과 발전은 국민정신의 거듭남으로 시작된다. 우리 나라 교육이 심각한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교사 학생 학부모, 그리고 교육정책 담당자들이 어우러져 엮어낸 실패작이다. 교회의 책임은 국민 정신을 살리고 영혼을 살리는 일이다. 전인적 구원사건이 우리 속에서 구현될 때 개혁과 갱신의 종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박종순 목사
32.등불 켜고 준비하는 밤
옛날 어떤 의사가 한밤중에 13㎞나 떨어진 먼 시골로 중환자를 왕진하러 가야만 했다. 폭설이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그 집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의사는 가는 길목의 가장 가까운 첫 번째 집에다 전화를 걸어 창문에 등불을 켜 둘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이웃집에다 전화를 해서 역시 창문에 등불을 켜 두도록 부탁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환자의 집에 이르는 동안 모든 길목의 집들이 창문에 등불을 켜게 되었고 의사는 쏟아지는 폭설과 어둠을 뚫고 길을 찾을 수가 있었다. 바로 이러한 것이 우리 교회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서로 도와주는 길목의 등불이어야 합니다. /김의환 목사(성복중앙교회)
33.어떤 탄압에서도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나는 독일전란 때 자유를 애호하는 자였다. 나는 이것을 보수하기 위하여 대학교들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 독재자의 탄압 아래서 모든 대학교들도 침묵을 당하였다. 나는 다시 신문 편집자들을 보았다. 그러나 그들도 침묵을 당하였다. 나는 독일의 자유를 위하여 글을 쓰던 유명한 저술가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들도 벙어리가 되었다. 그러나 교회만은 히틀러의 탄압 아래서도 진리를 위하여 굳게 서는 것을 보았다. 나는 전에 교회에 대하여 흥미가 없었던 사람이었으나, 이제 나는 교회에 대하여 애정과 탄복을 느끼는 바이다."
34.공동 묘지화된 교회당
구라파 도처에 궁전 같은 교회들이 있고 교회 경내에는 대개는 공동 묘지가 있다. 구라파인들은 98%가 크리스찬이라고 등록이 되어 있으나 결혼식과 장례식, 평생 두 번 교회에 가는 교인이 대부분이고 그나마도 주로 노인들이 교회에 참석하는데 평균 3%가 출석 교인이어서 공동 묘지화된 교회를 보는 느낌이다. 미국 교회를 빌려서 예배 드리던 한국 교인들이 점점 주객이 전도되어 미국 교인수가 줄어들자 많은 교회들을 한국 교회가 접수하는 중이다. 미국 교회도 최후의 몸부림을 다하지만 미국의 영성의 시간은 오후 6시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기독교의 기류가 태평양 시대 기류를 타고 한국에 그 중심이 머물고 있다. 이 부흥을 잘 감당하면 영광스런 통일 복음 민족이 될 수 있으나(겔39장, 신28장), 잘못 감당하면 지금 짓는 거대한 교회들이 공동화하고 공동 묘지 같이 텅 비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김준곤 목사<예수칼럼>
35.교회를 재건하자
요한복음 2장 13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은 성전으로 들어가서 채찍으로 장사꾼들을 내몰았습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굴로 만들지 말라”고 야단을 치시면서 채찍으로 내리치셨습니다. 당대의 성전이 기도하는 거룩한 장소가 아니라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장소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채찍을 높이 드신 것입니다. 이 썩어 냄새나는 부패의 상징, 유대교의 상징인 성전을 완전히 개혁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한 자들은 바로 이 성전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성전을 독차지하고 있는 저들 때문에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가 일반 백성들 속으로 전파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해야 하는 성전이 오히려 하나님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 성전을 타고 앉아 있는 종교지도자들을 몰아내고 성전을 다시 재건하시려고 예수님은 성전에 오신 것입니다.
36. '출입금지'를 없애야
나는 교회의 청년부를 담당하면서 놀라운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오히려 믿음이 좋다고 칭찬 받았던 사람들이 전도를 못한다는 것이었다. 교회에서 가장 잘 믿었던 사람들이 사회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이제 우리는 '불의한 제물로 친구를 사귀는' 현명함을 가져야 한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출입금지' 라는 푯말을 치워야 한다.
미국 34대 대통령 아이젠하워가 콜롬비아 대학에서 학장직을 맡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한 교직원이 학생들을 무더기로 징계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그 이유는 학생들이 '출입금지' 라고 쓰여진 잔디밭에 들어가서 잔디를 훼손했다는 것이었다. 아이젠하워는 잔디밭에 직접 가보았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잔디밭을 가로질러 갔다. 왜냐하면 그 잔디밭을 가로질러 가지 않으면 수업을 받기 위해 상당한 거리를 돌아가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아이젠하워의 결정은 이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출입금지라는 푯말을 치우고 학생들이 마음대로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만드시오."
우리는 간혹 신앙적인 명분을 구실로 가장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문턱을 낮추어야 한다. 피곤한 사람들이 달려와서 쉬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문을 열어라. 그들에게 친절하게 해주고 가까운 친구처럼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또한 당신은 늘 신령한 그리스도인으로 서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 더 강해질 필요가 있다.
37. 중화 기독교
십억 인구를 가지고 최고의 정신 문화를 가진 중공에서 일어나는 일에 성령의 세계 선교사적 현장성을 찾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기독교의 최대 이단이라 할 수 있는 공산주의가 문화 혁명의 광란을 전기로 결정적 퇴조를 보이기 시작한 곳도 바로 중공이다. 중국은 중화하는 마력을 가졌다. 몽고가 와서 이 중화의 대해에 빠져 죽었다. 불교도 빠져 죽었다. 러시아와 서구가 와서 빠져 죽은 곳이다. 일본도 왔다가 빠져 죽고 달아났다. 공산주의도 빠져 죽었다. 그러나 중국이라는 중화 대해에는 모든 것이 남아 있다. 이 대해에서 일단 서구식 기독교는 적어도 중화 중국의 지하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난 가정 교회에 몰려나고 만 셈이다. 돈을 주면 오염된다고 기겁을 하며 거절하고, 월급받는 목사도, 싸움할 교권도 감투도 없이 모두가 믿음 때문에 매맞고 감옥에 가고 쫓겨다니는 죽다 남은 산 순교자들 형제 자매들, 그리고 누구나 전도자들인 5천만 중국 교회는 비서구적 미래 교회의 한 묵시적 모델일지 모른다. /김준곤 목사 <예수칼럼>
38. 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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