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모음(마틴 루터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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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모음(마틴 루터 외)
▶1512년 마딘 루터가 로마를 방문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는 로마를 향해 가면서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순결한 교회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교황은 이 세상의 사람들 가운데 가장 완전하며 절대 모호한 존재라고 믿고 그는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로마에 도착하자마자 그의 마음에는 말 할 수 없는 회의가 밀려왔습니다. 멀리서 듣고 생각했던 것과 현장에서 보고 느꼈던 것은 너무나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사실은 로마에 가면 소위말해 거룩한 계단, 성 계단이라 해서 이름 붙여진 '상크라 스칼라'라는 계단이 있습니다. 그래서 카톨릭 순례자들은 그 계단을 올라갈 때 발로 디디고 걸어 올라가지 않고 두 무릎과 팔꿈치로 군에서 낮은 포복을 하듯이 기어올라갑니다.
한 계단 기어올라가서는 돌계단에 키스를 하고 또 한 계단 올라가서 돌계단에 키스를 하고 회개하고 또 기어올라가서 키스하고 회개하고 소위 고행을 하는 계단이었습니다.
마딘 루터도 다른 순례자들과 함께 그 계단을 기어올라가면서 그 계단에 입을 맞췄습니다. 또 한 계단을 기어올라가서 입을 맞춥니다. 그러면서 마딘 루터의 마음속에 '이것이 아닌데..이것이 아닌데...'하는 말할 수 없는 회의가 밀려왔습니다.
'내가 신앙이 없어서 그런가? 내가 하나님 앞에 부족해서 그런가? 이게 결코 구원의 길은 아닌데...' 계단을 기어올라가면서 갈등을 합니다. 한참 그렇게 계단을 기어올라가는 마딘 루터의 머리 속에 한 구절의 성경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 성경 말씀이 롬1:17절의 말씀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마딘 루터는 이 말씀을 번쩍 깨닫고 나서는 '맞다. 바로 이거다. 내 두 무릎과 팔꿈치로 이 돌계단을 기어올라가면서 참회하고 고행을 한다고 내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의인은 바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놀라운 성경의 진리를 깨닫고 그는 로마를 떠나 다시 독일로 돌아와서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읽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 그는 하나님의 놀라운 '이신 칭의'의 교리를 체계화시키면서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의료 선교하는 의사 한 분이 아프리카 어느 외진 마을로 들어가서 선교를 하고 있을 때 이야기입니다. 그 마을에 외국 유학을 다녀와서 그 마을을 잘 사는 마을로 변화시키겠다는 일념으로 불철주야 일하는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돈도 많고 가문도 좋고 공부도 많이 하고 그 마을에서는 최고 엘리트였습니다. 공부하느라고 혼기도 늦은 노총각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과연 어느 처녀에게 그가 프로포즈를 할지 모두 궁금해하였습니다.
그 마을 처녀는 모두 자기에게 프로포즈하여 주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대단히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이었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 그 나라는 청년이 암소를 끌고 처녀 댁으로 가서 '이 암소를 받으시고 딸을 주십시오'라고 청혼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훌륭한 가문 좋은 처녀일수록 암소 수가 많습니다. 보통 한 마리이고, 어쩌다가 두 마리입니다. 그 마을 최고 기록이 세 마리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청년은 그 암소 9마리를 끌고 청혼하러 가는 것이었습니다. 의료 선교사가 어느 집으로 가는 지 따라 가 보았습니다. 외진 곳 가난한 노인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빼빼 마르고 병든 아버지에게 볼품 없는 처녀 딸이 있었는데 그 딸에게 청혼하는 것이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을 비롯한 모두가 놀랐습니다. 그 청년이 정신이 돌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청년이 의료 선교사를 초대하여 가 보았습니다. 그 못 생기고 볼품 없었던 처녀가 귀부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아한 여인을 의료 선교사는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의사는 속을 생각하였습니다. '아. 이 사람이 그 때의 말라깽이 처녀와는 이혼하고 새로이 아내를 맞았구나!'
그러나 그 청년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 사람이 그 때의 그 볼품 없었던 처녀입니다.'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 하고 있는 데 그 청년이 말을 이었습니다.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저 처녀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외국에서 공부하던 긴 세월 속에서도 저 사람의 맑고 고운 눈동자를 한시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 처녀에게 청혼하였습니다. 제가 청혼할 때 몇 마리 암소로 할 것인가를 오래 동안 고민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암소 몇 마리인가가 아내에게는 자신의 가치를 결정할 기준이 될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제 아내가 자신의 가치를 한두 마리 암소로 낮추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우리 마을 최고 수준이 세 마리인데 내가 9마리로 청혼하면 저 여자가 내 가치는 9마리라고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을 높일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역시 9마리로 높였더니 아내는 그 때부터 자신이 자신을 높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이 마을에 최고 수준이라고 생각하지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꾸미기 시작하여 오늘 날 귀부인처럼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의사는 그 청년의 지혜로움에 감탄하며 두 손을 꼭 잡아 주었다고 글을 썼습니다.
▶부모가 신앙생활을 잘 하면 자녀가 복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이 신앙생활을 잘 하니까 아브라함의 후손이 복을 받았습니다. 욥이 신앙생활을 잘 하니까 욥의 후손들이 복을 받았습니다. 다윗이 신앙생활을 잘 하니까 다윗의 후손이 복을 받았습니다.
이를 조상 적 믿음 또는 유전적 믿음 또는 가정적 믿음이라고 합니다. 자녀를 가장 사랑하는 길은 부모가 예수님을 잘 믿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감동스러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축구를 몹시 좋아하는 아들을 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키도 작고 몸도 야윈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축구를 너무나 좋아하여서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축구부에 가입하여 공을 찼습니다.
그러나 축구를 좋아하였지 공을 잘 차는 것은 아니어서 늘 후보 선수였습니다. 단 한 번도 선수로 정식 시합에 출전하여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언젠가는 주전 선수로 출전하게 될 것이란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습을 하였습니다. 그 소년이 속한 팀이 경기를 하는 날이면 아버지는 축구장으로 나와 관중석에서 소리를 지르며 응원하였습니다.
대학에 입학하여서도 역시 축구부에 지원하였습니다. 감독은 정신력이 좋다고 축구팀에 넣어 주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너무 기뻐하며 앞으로 치러질 4년 간의 대학 축구경기 입장권을 한꺼번에 다 샀습니다. 그러나 그는 대학 4년 동안 단 한 번도 출전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경기 때마다 관중석에 앉아 소리를 지르며 응원하였습니다. 졸업을 얼마 앞두고 마지막 시합이 있기 일주일 전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듣고 그 소년은 고향을 다녀왔습니다.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온 것입니다.
그 때 그가 후보 선수로 있는 팀이 뒤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감독에게 제발 자신을 출전시켜 달라고 빌었습니다. 감독은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열성적으로 간절히 매달리자 이를 허락하였습니다. 경기장에 나간 그는 경기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잘 뛰었고 공도 잘 막았습니다.
마침내 그는 동점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경기 종료 1분을 남겨놓고 승리 골을 터뜨렸습니다. 기적이었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감독은 그를 껴안고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가하고 물었습니다. 처음으로 출전하여 승리의 골을 터뜨린 그는 울먹이며 대답하였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장님이셨습니다. 아버지는 빠짐없이 경기를 보러오셨지만 내가 뛰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셨습니다. 그러나 며칠 전 돌아가셨기 때문에 하늘에서 제가 경기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셨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보는 앞이라 죽으라고 뛰었습니다.'
그 후부터 그는 주전 선수가 되었습니다. 부모가 훌륭한 집에서 훌륭한 자녀가 나옵니다.
▶한 여자 집사님이 가정을 비관하고 자살을 생각했습니다. 남편도, 자식도, 시어머니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자식들은 집을 치우기가 무섭게 어지러 놓고, 남편도 시들해 졌고, 시어머니는 시시콜콜 간섭만 하고, 그래서 자살을 생각해 봤는데, 자살하자니 구원받지 못 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 죽고 싶습니다. 그러나 자살할 수 없습니다. 나를 빨리 천국으로 데려가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응답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네가 너무나 고통을 당하고 있구나. 네 기도를 응답하겠다. 너를 천국으로 데리고 오겠다. 그러나 몇 가지만 순종할 수 있느냐?' '네. 몇 가지 죽기 전에 순종하겠습니다. 제 기도만 응답하여 주세요.'
'그러면 네 장례를 치러야하니 네 집을 청소를 깨끗이 하라. 많은 사람이 와서 보아도 정말 깨끗하다는 평을 받도록 해라'
여 집사는 집안을 안팎으로 청소하면서 최선을 다 했더니 집이 몰라보게 좋아져 다른 집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또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딸아! 다음으로 할 일이 있다. 네 자녀들이 엄마가 죽었다고 슬피 울 것이다. 며칠 안 남았으니 원 없게 흠뻑 사랑하여 주거라'
여 집사는 흠뻑 사랑해 주었습니다. 자녀들이 최고 만족을 느끼도록 해 주었습니다. 안 가던 곳을 데리고 가서 구경도 시켜주고 요리도 만들어 주고 일류 식당도 데리고 가서 맛있게 먹여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또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딸아! 다음으로 할 일이 있다. 남편이 너를 아쉽게 느끼며 좋은 아내였는데 죽었다고 천추의 한이 되도록 3일만 사랑해 주거라'
그 집사님은 남편은 최상급으로 사랑해 주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부탁이다. 네가 죽으면 시어머니가 슬피 울도록 사랑해 주거라' 그렇게 해 주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며칠 후 주님이 오셔서 '딸아! 이제 천국으로 가자'는 것입니다.
집사는 마지막으로 집을 돌아보았습니다. 아름다운 집이었습니다. 자식들을 보았습니다. 행복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남편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자기를 사랑할 수가 없었습니다. 시어머니를 보았습니다. 너무나 귀중한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주님! 조금 더 있다 가겠습니다.'
벧전4:8절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우리나라 볼펜의 대명사로 알려진 모나미 153 볼펜은 1963년 이름 없는 회사에서 출발했습니다. 당시는 볼펜 한 자루에 15원하던 시절로, 이 볼펜이 나오면서 잉크병도, 철 필도 사라지고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관공서, 학교, 회사에 모나미 153 볼펜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더니 곧 KS 마크를 획득한 국가적 볼펜이 되었습니다.
이 볼펜이 나오게 된 유래가 있습니다. 어느 한 회사가 어려워 볼펜을 생산할 공장이나 기술도 없이 도산의 위기에 빠졌습니다. 이 때 이 회사의 송삼석 회장은 기도원으로 들어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그는 기도하면서 자기의 생애를 돌아보았는데 그때까지 그는 사업을 한다고 하나님께 무엇 하나 제대로 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주일성수 하지 않은 것을 회개했고, 십일조를 온전히 하지 않은 것을 회개했고, 감사에 인색한 것과 부정적인 자기 입술을 회개했고, 기도하지 않은 것을 철저하게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철저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기도한 후에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요21:11절 말씀을 읽다가 크게 영감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지시에 따라 한 곳에 그물을 던졌는데 그때 153마리의 고기를 잡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는 구절을 읽으며 그는 "그렇다! 내가 만든 모나미 볼펜의 이름을 모나미 153으로 정해야겠다. 그러면 이 사업을 아무리 해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고 망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믿음의 확신이 왔습니다.
그는 기도원에서 내려와 '모나미 153'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볼펜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전 세계 모든 사람의 손에 이 볼펜이 다 들려지길 바랍니다. 50억 자루가 팔리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모나미 153이 잘 팔리던 전성기인 1978년, 일 년에 12억 자루를 팔았다고 합니다. 이후 다양한 필 기류들이 나와 주춤했으나 IMF 이후에 다시 매출이 뛰어 이제는 50억 자루를 팔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할/
▶한국교회 100년 역사에서 자랑스러운 한 여종이 있습니다. 그 여종이 '백선행' 집사님입니다. 그는 16세에 자식도 하나 없이 과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안 먹고, 안 쓰고, 삯바느질하여 번 돈으로 재봉틀을 사서 방직을 하여 200냥을 벌었습니다.
200냥을 벌어놓고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 시아버지, 남편 좋은 양지바른 곳에 무덤을 써서 잘 모실 수 있는 선산을 사야지' 하고는 모은 돈 200냥으로 선산을 구입하려고 먼 친척 뻘 되는 사람에게 산을 사달라고 했더니 대동강변에 있는 산을 하나 사 주었습니다.
산 문서를 받아 쥔 백 과부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무덤을 이장하려고 산 구경을 가보니 이것은 산이 아니라 나무하나 살 수 없는 바위산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사기를 당한 것입니다. 그는 너무나 크게 실망하였으나 이것도 하나님의 뜻이 있으려니 하고 감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이 이 산을 샀더라면 그가 망할 것인데 이 손해를 나에게 돌리시니 감사합니다."
백선행 집사는 예수님 마음으로 이 일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일로 백 과부는 망했다는 소문이 평양에 자자했습니다.
그 후에 일본 사람들이 대동강에 다리를 놓으려고 계획하고 시멘트 공장을 세우려고 석회암 지질조사를 하던 중 대동강에 있는 석회암산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주인을 찾으니 백선행 집사의 땅이었습니다.
기업주 '오노타'는 소개인을 넣어 300냥에 산을 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백선행 집사는 팔지 않는다고 거절을 했습니다. 거절하므로 더 받으려는 줄 알고 나중에는 일백 냥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거절하자 나중에는 오천 냥을 준다고 했는데 또 거절했습니다.
"이 산은 절대로 팔 수 없으니 절대로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백과부가 석회암이라는 것을 알고 배짱을 부리는 줄 알고 산값의 백 배인 2만냥을 준다고 했습니다. 또 거절했습니다.
드디어 일본 사람은 백 집사가 목사님 말씀은 잘 듣는다는 얘기를 듣고 도지사를 동원하여 백과부가 출석하는 교회 목사님에게 설득하도록 했습니다.
목사님은 심방을 하여 산을 팔지 않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때 백 선행 집사는 "목사님,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이백 냥에 이 산을 사 가지고 사람들이 나더러 망했다고 하는데 이 산을 이만 냥에 사간다면 그 사람은 망할게 뻔한데 그 사람이 망하는 것을 어떻게 봅니까? 믿는 내 양심으로는 나 혼자 망하고 말지 다른 사람 망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자초지종을 말해주자 목사님으로부터 자기 산이 석회암 산임을 알고 이만 냥에 산을 팔았습니다.
그는 그 재산으로 교회를 짓고, 학교를 세우고, 기독교 회관 건물을 짓고, 평양신학교 재단 설립에 예산을 바쳤습니다. 그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사회 장을 치렀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한 집사를 위해서 사회 장을 치른 예는 없었습니다.
예수님 마음을 품고 착한 마음으로 남에게 유익을 주려고 자기를 비우고 선하게 살았기에 후대에 그 이름을 '선행'이라 지어 불렀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시골길을 가는데 큰 고목 나무가 있어서 잠시 쉬었다가 가는데 어떤 여인이 그 나무에 와서 음식을 차려놓고 절하고 빌더랍니다.
그래서 '무엇을 비느냐'고 물으니 '복을 달라고 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나무가 왜 속이 이렇게 썩은 줄 아느냐? 이것은 자기가 복을 줄 수도 없는데 당신 같은 사람들이 자꾸만 와서 복을 달라고 하니 답답해서 이렇게 속이 썩었다'고 말하고 예수를 소개하여 영접시켰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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