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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장의 소매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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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영국에는 도둑이 무척 들끊었다. 헨리 8세는 7만 2천 명 가량의절도범을 사형에 처했다. 참으로 엄청난 숫자다. 엘리자베스 왕조시대에는 그 숫자가 더욱 늘어났는데 대략 8만 9천 명이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졌다.이처럼 강력한 형벌, 엄벌주의 충격요법이라고 볼 수 있다. 백성들의눈에는 아예 절도의 뿌리를 뽑아내겠다는 확고한 의지로 비쳤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만 해도 사형은 공개적으로 집행됐는데 그 이유는모든 절도자는 이처럼 사형에 처해진다는 인과응보를 보임으로써 범죄예방 효과를노리끼 위해서였다.그러나 아이러니칼하게도 절도를 근절시키기 위해 공개 집행하는 바로그 형장에서 절도가 저질러졌다. 몰려든 군중 사이에 소매치기가끼어들었던 것이다. 군중들 사이에서 놀라움과 체념이 엇갈리는 신음소리가 새나왔다. 강력한 충격요법으로 절도를 뿌리뽑아 보려 했던왕실은 되돌아오는 강력한 충격에 망연자실했다.이처럼 강력과 엄벌주의는 항생제처럼 면역성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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