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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선교의 선구자 랄프 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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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현대선교운동을 하고자 하는 이들이나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앞서가는 선교연구기관 가운데 첫 손가락에 꼽히는 기관은 바로 미국세계선교연구소(U.S.Center for World Mission)이다. 이 기관은 랄프 윈터 박사와 동의어나 다름없다.1976년 10월 그당시 풀러신학교의 선교학과를 책임지고 있었던 선교학자 랄프 윈터가 미국세계선교연 구소를 창립한 것은 기적과 같은 것이었다. 1천5백만달러나 나가는 한 대학의 캠퍼스를 단돈 1백달라로 구입하려고 시도한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첨단의 슈퍼 컴퓨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1965년 형 닷지 스테이션 웨건을 끌고 다니는 신화적인 존재가 바로 랄프 윈터이다.그의 이러한 창의성과 도전적인 행보는 오늘날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교회성장운동적인 분위기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러한 분위기야말로 그를 현대 선교운동의 전략적인 지도자로서 가능케한 원동력을제공하였고 세계선교운동의 본산으로서 선교의 고급두뇌를 유치하고 교회성장전략을 공급할 수 있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오늘날 가장 혁신적인 선교비젼을 제공하는 지도자 랄프 원터는 1924년 서부 미국 L.A.장로교회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가 켈리포니아 공대를 마치고 해군을 마칠 때 까지도 그는 선교사가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코넬에서 박사학위를 한 후 프린스톤신학교를 나와 과테말라 선교사로 가게 되는데에는 그의 일생에 동반자였던 로버타 헴이라는 그의 아내를 눈여겨 보아야 한다.그의 아내는 랄프 윈터의 선교사역과 성공적인 인생에서 빼어 놓을 수 없는 존재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가 10년동안 일한 과테말라에서는 성공적인 선교사역을 필하였을 뿐 아니고 성장전략적인 연구로서 이미 정평이 나 있었기 때문에 그가 도날드 맥가브란의 풀러신학교를 들어오는데에는 하등의 어려움이 없었다.그는 평생을 풀러에 있어도 상관없는 정도로 성공적인 선교지도자였다.그러나 그는 1976년 마침내 세계선교연구소를 창립 독립하는데 성공한다. 그것은 그가 독립적으로 그리고 창조적으로 세계선교운동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엄숙한 현실앞에 서 있었고 동시에 세계선교의 사명이 얼마나 중대한 것인지를 철저히 깨닫고 난 후였다. 랄프 윈터의 일생은 선교로 일관되어 있다.선교는 그에게 아내와 자녀들에게까지도 하나되게 하는 원동력을 작용하였다.그는 선교운동의 지도자로서 만족하지 않고 선교운동의 조직화와 전략연구 수립에 전념하게 하였다. 그의 선교개념은 늘 전시상황하의 병사와 지휘관같은 자세로 세계선교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전시생활은 보통 때 보다 더많은 돈이 들 수도 있고 덜 들수도 있다. 만일 어떤 군인이 참호밖에 있으면 싼 레이션이나 먹게 될것이지만 전투기 조종사일 경우는 한달에 4만달라나 드는데 이처럼 선교에는 급하고 완만한 요구가 교차되는 현장임을 잊지말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선교의 우선순위의 문제인 것이다.<이상윤목사|구리신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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