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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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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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통찰력이 생긴다. 바로 믿음의 세계인 것이다.아르키메데스가 따끈한 목욕통에 들어가 여느 사람처럼 삭신이 풀린다고만 했다면 부력에 대한 기초원리는 발상되지 않았을 것이다.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맛있게 익었다 하고 식욕만을 돋우었던들 만유인력 또한 발상되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의 진리나 과학의 원리는 이처럼 일상의 주변에 널려있는 것이다. 추려지거나 가려지지 않고 널려있는 그 줄기를 보아내는 것이 과학적 두뇌다. 그 보아내는 역량을 길러주는 일상의 가르침이 노자다. 그래선지 중국 과학원의 공학박사 과정에서 이 노자를 통달 암송하지 않으면탈락시킨다는 작금의 보도가 있어 머리를 돌아보게 한다.노자의 몇대목만 훑어 보아도 아르키메데스나 뉴턴처럼 일상속에서 과학적 발상을 유도하는 대목이 적지않다. 하늘과 땅 사이는 마치 대장간의 풀무같은 것이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으면서 무에서 우러나는 힘이 끊임없고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그 힘이 커진다. 어떤 자연 동력 법칙이라도 나옴직 하지 않은가. 수레바퀴는 서른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으로 집중돼있다. 그 아무것도 없는 그 중심이 수레로써 작용을 하고있다. 이 대목 자체가 역학법칙이다. 보일 것 같지만 보이지않는 것을 이라 하고, 들릴 것 같으면서 들리지 않는것을 희라 하며, 만져질 것 같으면서 만져지지 않는 것을 미라 한다. 이 세가지 것이 하나가 되어있으면서 나타나지않고 있는데 그 속에 무서운 힘이 숨겨져있다. 원자력의 동양적 표현이 아니고 뭣이겠는가. 감각으로 지각못할 오묘한 실상을 적시하고 과학이 다리 놓기를 기다리는 노자다.이것을 중국과학원이 갈파하여, 미시적으로 옹졸해져만 가는 학문적 사고와 시야를 거시적으로 펼쳐내는 수단으로 노자를 첨단과학에 접목시킨 것일 게다. 뿐만 아니다. 노자의 가르침에는 발가락끝으로 서면 오래 서있질 못하고 큰 보폭으로 걸으면 멀리 가지 못한다는 등의 학문 태도에 대한 현대적 교훈도 적지 않아 학위과정의 필수과목으로 선택되었을 것이다. 쓸모와 편의만을 생각하는 기용으로 치닫는 현대문명에 학문마저도 편승하고 있는 작금이다. 이에 역사의 언덕에 노자를 올려세워 붉은 깃발을 흔들게 함으로써 대도가 아님을 고하는 것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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