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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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진실 붙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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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을 읽다보면 행간에서 잡히는 느낌들이 있다.많은 경우 이 느낌들이앞서 간 선배들의 속마음을 전해준다.그 중 확실하게 전달되는 한 가지 느낌은 ‘두려움’이다.박해 앞에서 담대하라는 거듭된 권고는 박해받는 사람들 마음 속에 엄연히 자리잡은 두려움을 엿보게 해준다.재판정에서 증언을 어떻게 할 것인가,국가 권력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주제 역시 막강한 권력 앞에 선 힘없는 소종파 기독교인들의 흔들리는 마음을 노출한다.두려움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당시 팔레스틴은 로마의 식민지배 아래 있었고,유대 봉건 세력이 로마로부터 일정 부분 통치를 위임받았다.예루살렘 성전체제와 유대 의회인 산헤드린이 팔레스틴의 종교,사회적 위임통치기구였다.로마 군대는 가이사랴 빌립보에 상주하고 있었다.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당시 유대사회는 식민지 봉건사회였다.이런 사회에서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체제에 의해 고발당하고 로마에 의해사형판결을 받았다.예수는 로마 식민지배 체제에 의해 공공연하게 반국가사범으로 처형당한 사람이다.초대 기독교는 황제의 깃발이 나부끼는 제국의속국에서 황제의 권력에 의해 극악한 범법 행위자로 처형된 사람을 교주로모시는 종교였다.참으로 어려운 출발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 기독교는 세계도피적 종교가 아니라 세상 한 가운데서의 종교를 추구했다.게다가 바울은 로마제국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된 사람의 종교를 로마제국의 종교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고,실제로 그의 꿈은 실현됐다.어떻게 그 일이 가능했는가.길은 아래에 있었다.바울은 삶의 바닥,사회의 바닥으로 내려갔고,거기서 진리를,하나님을 발견했다.거기서 참된 두려움의 대상을 찾았다.참된 두려움의 대상을 찾으니 다른 두려움의 대상은 힘을 잃었고,상황을 돌파해나갈 수 있었다.로마제국의 폭력도,유대당국의 위선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바울과 초대 기독교인들은 많은 시행착오도 겪고,지배문화에 동화되는 경우도 있었지만,예수의 십자가의 진실을 붙들었다.그들에게 십자가는 무슨 마술적 부적이나 공허한 구호가 아니었다.당시 가부장적 계급사회에서 힘겹게 살아가던 많은 사람들에게 기독교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과 대안적인 사회의 비전을 제시했고,초기 가정교회에서 실현된 평등한 제자직에 관한 비전은많은 노예들과 여성들을 기독교로 이끌었다. 우리가 초대 기독교인들처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진실을 붙들고 삶의 바닥으로,아래로 내려갈 때 두려움과 증오,어둠은 그 힘을 잃는다.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거짓된 두려움을 조장하는 세력을 몰아내고,두려움을 떨치고 삶의 바닥으로 내려가 초대 기독교인들처럼 새로운 세상의 비전을 마련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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