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잎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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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옥수수밭을 매면서 옥수숫대 사이에 끼여 저절로 자라는 호박순을 보았습니다. 그냥 뽑아 던지기에는 너무 아까워 지난 겨울에 미리 땅을 파서 똥오줌까지 부어놓았던 호박 구덩이에 옮겨 심었습니다. 뿌리를 다치지 않게 하느라 제법 땅을 넓게 파서 흙째로 옮겼는데도 하루 햇볕에 그 싱싱하던 잎들이 축 늘어져 버리는 것을 보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역시 안되는구나’하고요.그런데 다음날 새벽에 가보니 시들어 늘어진 넓은 잎 사이로 조그마한 새 잎이 손을 내미는 게 보이지 않겠어요 참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물도 부족하고 뿌리도 힘을 잃어 제대로 물을 빨아들일 형편이 안되는데, 물이 많이 필요한 어미잎들이 저 살겠다고 나서면 새끼들까지 죽이게 된다, 우리 어미잎들이 희생해서 새끼잎들을 살리자고 밤새 의논을 했던 것 같아요. 아, 식물 사이에서조차도 자식 사랑, 새 생명에 대한 배려는 이렇듯이 절절한 데가 있구나 싶어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그걸 보면서 ‘왜 우리한테만 이런 무거운 짐을 지우려 드는 거야. 아직은 자신을 돌보기에도 급급한데…’라며 속으로 투정하던 마음이 부끄러워졌습니다. 호박잎만큼도 안되는 소갈머리에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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