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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예술가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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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난한 예술가의 초상내 서재 앞에는 유화 한 점이 걸려 있다.고동색과 초록색이 많은 무겁고 침울한 느낌의 풍경화다.그림 속의 어두운 계곡은 한 예술가의 아픔을 전한다.몇년전 어느날 남루한 옷차림의 K화백이 사무실로 들어섰다.아들이 남의 물건을 훔쳤다는 것이었다.K화백에겐 그림이 인생의 전부였다.젊어서부터 그리고 또 그렸다.그게 다였다.그는 돈을 위해 그림을 파는 건 타락으로 생각했다.이따금씩 찾아오는 몇명의 교습생이 평생의 밥벌이였다.젊은 날 환상을 보고 그와 결혼했던 아내는 아들 하나를 남긴 채 떠나버렸다.그는 허름한 화실 뒤 한쪽에서 아들과 살았다.끼니 때가 되면 코펠에 밥을 해서 나누어 먹었다.밤늦은 시간이면 아버지와 아들은 옷가지들을 들고 빌딩 화장실에서 교대로 빨래를 했다.아들은 어느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외판사원이 되었다.그러나 피는 속일 수 없었다.아들은 산업디자인을 공부하고 싶었다.예술을 향한 젊은 피가 혈관 속에서 끓었다.어느날 한 사무실에 업무차 들어갔던 아들은 의자 위에 놓인 남의 지갑을 갖고 나왔다.처음 만져보는 그 속의 신용카드.그것은 소원을 들어주는 마법의 등잔이었다.아들은 서점에 가서 산업디자인에 관한 원서들을 고른 후 카드를 내밀었다.가슴에서 방망이질이 계속됐다.아무 일도 없었다.대담해진 그는 이번에는 백화점에 가서 컴퓨터를 골랐다.그래픽을 하자면 필수적인 도구였다.백화점에서 컴퓨터가 배달돼 온 그날 저녁.그는 집으로 찾아온 경찰관에 의해 체포되었다.재판이 있던 날은 스산한 가을비가 내렸다.그 전날은 K화백이 수십년을 등뼈같이 지켜오던 지조가 무너진 날이었다.처음으로 그림을 팔러 화랑에 갔다.애걸하며 화랑에서 받은 어음을 다시 사채업자에게 갖고가 할인을 했다.그 돈으로 아들의 피해자와 합의를 했다.“재판장님,죽을 죄를 지었습니다.너무 디자인이 공부하고 싶어서 그만…”법정에서 참회하는 아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넘쳐흘렀다.방청석 구석에 앉았던 아버지는 오열했다.그리고 3주 후.K화백이 정성들여 포장지에 싼 그림 한점을 가지고 왔다.“이 그림은 변호비 대신입니다.언젠가는 꼭 이 그림의 가치를 인정받 는날이 올 겁니다”다시 몇년이 흘렀다.그가 개인전을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다.나는 초대장을 못받았다.그의 자존심 때문이었을 것이다.그림은 안타깝게도 한점도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이제 우리도 예술을 사랑할 때가 됐다.그리고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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