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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정치거인의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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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독일의 할아버지’ 헬무트 콜이 부패스캔들에 휘말려 추락하고 있다. 20세기말 최대의 이변이 아닐 수 없다. 퇴장의 미학을 무시하고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자기오만에 빠져 권력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대정치인이 부패의 덫에 걸려 종말을 맞는 참담한 모습이다. 그는 독일 보수세력의 최고지도자로 작년 총선에서 중도 좌파의 기수 슈뢰더 사민당수에게 패배한 후 기민당 명예총재로 의원직을 고수하면서 정치자금을 숨겨 관리하다가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된 것이다. 아마도 그는 2000년 벽두에 사법처리 당할 위기에 직면했다.기민당 당수 25년에 총리 16년을 역임하면서 베를린장벽 붕괴와 냉전해체 및 분단독일을 통일시켜 유럽역사상 최대의 정치 리더로 존경받은 콜의 말로는 뜻밖의 종말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는 미국의 부시 전대통령, 옛 소련의 고르바초프 전대통령과 프랑스의 미테랑 전대통령과 함께 베를린장벽붕괴 이후 냉전체제 종식과 유럽통합 작업을 성공적으로 관리하고 경영한 20세기의 거인으로 평가됐으나 이제 도덕적 오명을 남긴 정치리더라는 역사의 평가를 받게 되었다. 유럽현지에서 역사적 대변혁을 요리한 그의 정치력에 감탄했던 기자에게는 부패스캔들이 주는 충격은 헤아릴 수 없이 크다.콜이 1870년대 최초로 게르만민족을 통일시켜 독일을 강대국으로 키운 비스마르크의 집권기간을 능가한 총리로 추앙되었다. 그러나 16년 집권기간에 정치자금에 대한 불미한 소문은 간간히 나돌았다. 통독이후 전독일 보수세력을 결집한 대기민당을 출현시키기 위해 많은 정치자금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4번이나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도 정치자금의 수요가 컸던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권력에서 밀려난 후 1988년 연말에 당수직을 볼프강 슈아블에게 물려주어 명예총재로 일보 후퇴함으로써 그는 정치생활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그러나 그는 정치자금관리에 투명성을 상실함으로써 부패의 늪에 추락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 것 같다. 1999년11월말 그는 스위스은행에 비밀계좌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여기에 숨긴 돈이 정치자금이 아니라 개인치부를 위해 관리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킨 것이다.국제회계감사기관인 ‘에른스트 앤드 영’회사는 1993년부터 98년까지 스위스의 비밀계좌에 4백만 마르크(약 25억원)가 숨겨져 있었다고 주장했다. 콜은 스위스은행에 비밀계좌를 유지해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일부 정치헌금을 여기에 입금시키고 세무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정치자금 액수가 2백만 마르크 미만이라고 고백했다. 걸프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던 독일은 대신 전쟁비용을 부담했으며 일부 중동나라에 무기를 공급했다. 정치헌금은 독일탱크를 사우디 아라비아에 공급하고 커미션조로 받은 1백만 마르크였으며, 그후에 개인적으로 받은 헌금을 비밀계좌에 넣고 관리해왔다는 것이다. 1991년 걸프전쟁기간에 칼하인츠 슈라이버라는 무기상이 탱크판매를 성사시킨 후 현찰을 주었다고 한다. 콜이 이를 직접 받은 것은 아니었다. 기민당 경리국장 키에프와 회계담당 웨이라우츠가 스위스에서 직접 돈 보따리를 넘겨받아 비밀계좌에 입금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수인 콜이 검은 돈을 직접 관리했으며 세무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사실이 분명히 법을 위반했기 때문에 아무리 국가에 공이 많은 정치지도자라도 형사소추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스캔들의 개요이다. 슈라이버가 카나다에서 체포돼 투옥됨으로써 콜의 숨겨진 정치자금과 비밀계좌가 알려진 것이며 이것은 콜과 보수 기민당에게 폭탄이 돼 폭발했다. 검찰과 언론들은 비밀자금의 액수가 더 많은 것으로 추정하고 진실고백을 기대하고 있으나 콜은 입을 다물고 있는 실정이다.기민당과 검찰이 그에게 가하는 압력은 매우 가혹한 것 같다. 안젤라 멜켈 기민당 사무총장은 ‘콜의 정치시대가 종말을 고했다’고 밝혔다. ‘콜에 대한 신뢰는 기민당의 신뢰이며, 기민당에 대한 신뢰는 독일의 신뢰였다’고 설명한 그는 콜이 명예총재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직을 포기하고 ‘당을 완전히 떠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아마도 우리가 그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 것이 탈이다’라고 스캔들의 원인이 당에게도 있음을 그는 시인했다. ‘콜 없는 기민당에 미래가 없다는 전망이 있지만, 우리가 당의 책임을 완전히 떠맡음으로써 21세기 새 시대를 열게 될 것’이라고 밝혀 그는 콜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독일국민이 궁금하게 여기는 것은 콜이 얼마의 헌금을 받아 얼마를 정치자금으로 썼고, 얼마가 남아 있으며 또 헌금한 기업과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콜은 세무당국에 헌금을 신고하고 세금을 내지 않은 것이 중대한 실수였다고 자인했다. 그러나 그는 헌금자 명단과 헌금액을 밝히지 않아 부패스캔들은 더욱 증폭되는 추세다.기민당은 그에 대한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메르켈 사무총장의 결별선언에 대해서도 슈아블당수등 당지도층은 거리를 두고있는 형편이다. 슈아블은 ‘우리는 모두가 같은 견해를 갖지는 않는다. 콜은 모든 진실을 솔직하게 밝혀야 한다’라고 말해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수사의 칼날이 콜과 기민당의 결단을 재촉하고 있다. 검찰이 콜에 대한 의원직 면책특권을 해제해 줄 것을 요구할 예정이라고 보도됐다. ‘통독의 할아버지’가 2000년 벽두에 부패혐의자로 법정의 심판을 받는 광경을 세계가 구경할지도 모른다. 수십억원에 해당되는 정치자금 때문에 ‘통일의 할아버지’를 응징하는 독일의 투명한 정치는 수천억(수억달러) 비자금을 삼킨 군사 독재자들이 사면돼 전직대통령으로 지도자행세를 하는 한국정치권의 오늘과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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