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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만드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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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박물학자 안톤 반 레벤후크는 17세기 중반 자신이 발명한 렌즈 하나짜리 현미경으로 정액을 관찰했다. 기다란 꼬리를 물결치듯 흔드는 수많은 `극미동물'이 헤엄치고 있었다. 1683년 그는 자신의 관찰 결과를 바탕으로 "인간은 알(난자)이 아니라 남성의 씨앗 속에 있는 극미동물로부터 온다"고 결론지었다. 실제로 보지는 못했지만 그는 정자 속에 들어있는 아주 작은 인간의 원형이 자라 사람이 된다고 믿었다.난자가 불필요하다는 이런 생각이 잘못됐음은 요즘 초등학생이라도 안다. 가치로만 따지면 난자가 정자보다 훨씬 값지다. 단순히 숫자로만 쳐봐도 그렇다. 남성은 매일 약 2억마리의 정자를 생산한다. 한번 사정하는 정액에 들어있는 숫자다. 연금을 탈 나이가 훨씬 지나서도 남자는 정자를 생산한다. 반면 여성이 평생 생산하는 난자의 수는 약 400개에 불과하다. 그나마 50대가 지나면 생산이 중단된다. 흥미롭게도 여성은 배아 상태부터 약 700만개의 미성숙 난자를 갖고 있다. 태어날 때쯤엔 200만개 정도를 뺀 나머지 미성숙 난자는 모두 자살한다. 세포의 자살행렬은 사춘기에 이를 때까지 계속된다.이런 수적 불균형은 인공임신 시장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정자은행이 풍부한 기증자로 넘치는 반면 난자는 늘 공급이 부족하다. 최근 미국의 3대 명문대인 스탠퍼드대, 매사추세츠공대, 캘리포니아공대 교지에 난 광고는 그 극적인 예다. "키 175 이상, 수능시험성적 1400점 이상, 가족 병력 없을 것"을 조건으로 내건 이 광고가 눈길을 끌었던 것은 시가의 10배인 5만달러(약 6천만원)라는 보상금때문이었다. 물론 난자기증은 간단치 않다. 기증자는4주 동안 매일 배란촉진 주사를 맞아야 한다. 적지 않은 부작용이 뒤따른다. 게다가 난자형성을 점검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초음파와 혈액검사를 받고 마침내는 전신마취의 수술을 통해 난자를 끄집어낸다.이런 번거러움을 극복하기 위한 연구가 한창이다. 주목받는 기술이 난소조직 이식과 체외 난자성숙 기술이다. 사람의 난소조직 일부를 쥐에 이식해 난자를 생산하거나 아예 시험관에서 난자를 성숙시킨다는 것이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암 치료를 앞둔 소녀가 난소조직의 일부를 떼어내 보관해둔 뒤 나중에 임신할 수 있고 난자기증도 간단해진다. 그러나 실용화에는 갈 길이 멀다.똑같은 시도가 정자에 대해서도 이뤄지고 있다. 9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랄프 브린스터팀은 집쥐의 고환에서 생쥐의 정자를 키워냈다. 이어 돌리 이후 최초로 동물복제에 성공해 유명해진 미국하와이대 야마기마치 교수는 지난해 쥐의 정자를 석달 동안이나냉동건조한 뒤 수태시키는 데 성공했다. 정자를 다루는 기술은 장벽을 하나씩 넘어섰다. 마침내 지난 2월 일본 돗도리대 연구팀은 쥐의 고환에서 사람의 정자를 성숙시켜 사람의 난자를 수태시켰다. 쥐는 사람의 `대리부' 구실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곧이어 지난 17일 이탈리아의 세베리노 안티노리는 쥐의 고환에서 성숙시킨 정자로 난자를 수태시켜 4명을 탄생시켰다고 발표했다. 안티노리는 지난 94년 폐경기가 지난 62살의 부인을 출산시킨장본인이다. 학계에서는 아직 그의 발표를 미심쩍어하지만 `쥐인간'의 출현은 이미 현실이 됐다.마지막 성역이었던 인간의 생식은 이미 첨단기술이 아닌 전통기술의 도마 위에 올라 있다. 죽기 직전 또는 죽은 직후 남편의 정자를 이용한 임신과 출산은 이미 전세계에서 수십건이 보고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죽은 아들의 정자와 기증받은 난자로 손자를 임신하겠다는 한 부인이 논란을 불렀고, 영국의 한 여성은 자궁 없는 딸의 난자와 사위의 정자로 임신해 손자를 출산했다.유전공학을 바탕으로 한 생식의학의 발달과 상업화가 도달할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인터넷으로 난자를 검색해 주문하고, 항공우편으로 정자를 우송하는 일이 머지않아 실현될지 모른다. 그리하여 아이는 더이상 `갖는 것'이 아닌 `만드는 것'이 될 때 아버지와 어머니의 개념은 어떻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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