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존 그린존 아워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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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건이 터지면 우리는 삽시간에 다각도의 원인 분석과 해결안을 내놓고 정부에 개선정책을 촉구한다. 각계 각층의 의견이 쏟아져 나오고, 몇몇 책임있는 기관들에 대한 손보기도 이뤄진다. 급하고 화끈한 기질로 인해, 우리는 문제 해결 역시 급하고 화끈하게 해온 것 같다.다른 사건도 아니고 많은 젊은 생명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인천 호프집 화재참사를 두고도 반응은 비슷하다. 손대야 할 부분은 신속하고 과감하게 손대야 하겠지만, 점진적으로 달라져야 할 부분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청소년 보호와 관련해 최근 청소년 통행금지 또는 제한지역을 일컫는 레드 존(Red Zone)의 확대문제가 자주 거론된다. 레드 존이 늘어나기만 하면 청소년은 건전하게 보호될까. 레드 존 규제의 의미와 한계에 대해 우리는 좀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청소년들은 성인 세계에 대한 동경과 모험심이 강하다. 위험을 무릅쓰고 성인문화를 드나들고 흉내내는 게 청소년 하위문화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그래서 청소년들의 모방심리나 충동을 제재하기 위한 제도적 규제장치는 늘 필요하다.그러나 레드 존을 확대함으로써 더 갈 곳이 없게 되는 청소년을 겨냥한 또 다른 형태의 유해환경이 생겨날 수 있으며, 다양하게 발달되는 어른들의 여흥문화를 좇아 레드 존은 늘어만 갈 수도 있다.레드 존이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이 넘쳐나는 에너지와 감정을 발산하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공간, 그린 존(Green Zone)이 상대적으로 많아져야 한다.레드 존에 발길을 돌릴 틈 없이 마음껏 공부 뒤풀이도 하고 취미와 문화활동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이 마련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는 문화에 인색한 가정과 학교 사회가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어른들만 간다는 카페를 학교안에서 운영하여 카페 분위기를 학생들에게 건전하게 맛보게 하는 학교가 서울시내에 있다.외국의 어느 학교는 매일같이 오후 수업의 반 정도를 다양한 운동경기를 하는 데 사용하여 학생들에게 건강한 의미의 진빼기를 한다고 한다. 감정과 에너지는 단순한 발산의 차원을 넘어 창조 에너지로 승화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노는 활동의 범위와 종류가 교육적으로 제고되어 마련되는 그린 존은 훌륭한 교육의 장이 될 것이다.레드 존, 그린 존보다 더 살아나야 할 것은 아워 존(Our Zone)이다. 각 동네마다 어른들이 앞장서서 청소년들을 보살피고 가르치는 우리 의식, 공동체의 노력이 되살아나야 한다.실제 집에서나 학교에서 아무리 얘기해도 상관하지 않는 아이들에 무력감을 느끼는 부모와 교사들을 대신하여, 현장으로 청소년들을 찾아가는 전문직 자원봉사자들의 모임이 많이 있다. 이들은 지역내 약사 의사 교사 변호사 경찰 종교지도자 등으로서 경찰 학교 보호관찰소 상담실로부터 위탁받은 청소년의 가정 학교 오락실 업소 등을 찾아다니며 각자가 발휘할 수 있는 힘과 자원을 활용하여 청소년의 궤도수정을 성공적으로 돕고 있다.이러한 공동체의 모임이 활동기반과 체제를 갖추어 활성화된다면, 레드 존에서 끌어내거나 못가게 하는 식이 아닌, 삶의 그린 존을 볼 수 있게 하는 진정한 의미의 선도와 지도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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