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필버그 감독
본문
나는 나 자신에 대해 한 번도 편안하게 느낀 일이 없었다.왜냐하면 나는결코 주류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종종 나 자신을 마치 외계인처럼늒느끼곤 했다.나도 다른 사람처럼 되고 싶었다…그러나 영화를 제작할 수 있게 되자 단순히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만으로도 위대한 주(主)를 ‘창조해’ 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나는 영화를 통해,상상력을 통해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어느 곳에서든 살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쉰들러 리스트’ 촬영 당시 인터뷰에서.여기 주근깨 투성이의 어린아이가 있다.깡마른 몸매에 어눌한 말솜씨.게다가 그는 개신교 앵글로 색슨 백인들(WASP)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미국 사회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는 ‘유대인’이다.그는 유달리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다.‘왜’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이 아이를 보살피던 그의 고모는 마침내 ‘지쳤다’며 두 손을 들었다.아무리 녀석을 귀여워하려 해도 쉬지 않고 질문을 퍼붓는 통에 누구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떠나야 했다.또 이 아이는 유달리 겁쟁이다.열 살이 넘어서도 그의 방에서 유령이 나올 것 같다며 부모의 방을 찾는다.늦은 밤 혼자 깨어 있는 시간이면 사람을잡아가는 외계인이 올거라며 온 가족을 잠들지 못하게 소란을 피운다.그의 아버지는 촉망받는 공학도로 컴퓨터 업계의 기린아로 불렸지만 그는아버지와 달리 ‘학업’에 소질이 없었다.자식의 미래를 위해 수학,과학공부를 강요하던 아버지를 그는 ‘자신을 미워하는 일벌레’라고 생각했다.더군다나 그가 자라난 가정은 결손 가정의 대표적 사례처럼 보였다.아버지는 일에 빠져 있었고 어머니는 작은 일에 희비가 엇갈리는 ‘철부지’ 같은 인물이었다.결국 그는 사춘기 시절 부모의 별거를 목격해야 했다.그는 또 ‘거짓말쟁이’다.마당에 만들어 놓은 미니 골프장을 마구 어지럽힌 뒤 “허리케인이 우리 집을 휩쓸었다”고 변명을 한다.그리고 나무라는 아버지에겐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었다”고 대답한다.결국 청소년기가지나도록 이 아이는 ‘피터팬 신드롬’ 환자로 취급됐다.언제나 유아기적 감성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아이,그의 이름은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다.친구들은 이 한심한 아이의 이름을 고쳐 스필버그(Spielbug),즉 ‘벌레(bug) 같은 녀석’이라고 놀려댔다.그러나 스필버그는 그만의 콤플렉스를 창의력으로 변화시켰다.오랜 기간그를 이방인으로 몰아낸 유대인 신분은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로 극복했다.그가 겪었던 체험적 소외는 그 어떤 역사서보다 훌륭하게 ‘인종 차별’의 부당함을 세계인에게 각인시켰다.스필버그를 괴롭히던 공포의 경험은 ‘조스’에서 화려하게 승화,많은 관객을 상어의 공포 앞에 떨게 만들었다.그가 결손자녀라는 약점과 피터팬 신드롬은 ‘E·T’와 ‘후크’에서 수많은 어린이를 들뜨게 했다.어머니를 그리며 바라보았던 보름달,그 위로 스필버그는 외계인을 태운 자전거의 궤적을남기며 영화사의 한 획을 그었다.또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길 좋아했던그의 괴벽은 ‘주라기 공원’을 통해 부활,10억명의 관객을 빙하기 이전의세계로 초대하는데 성공했다.살아 있는 영화계의 미다스,스필버그는 주위의 친구들로부터 외면받은 그의 약점을 ‘영화’를 통해 극복했다.아버지처럼 수학을 좋아하지 않은 대신 문학서적을 탐미했고 고모를 괴롭혔던 호기심으로 다양한 영화 소재를 일상에서 뽑아냈다.결국 전세계 영화 마니아를 자유자재로 울리고 웃기는 영화의 신(神),스필버그는 콤플렉스로부터 창의력을 발전시켰던 것이다.창의력이란 이런 것이다.저만의 것으로 플러스 알파를 만들어내는 힘.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