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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자 예수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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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은 감옥 생활동안 나를 지켜준 것은 사회주의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념이었다.소련과 동구가 무너질 때 깊은 좌절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결국 사회주의에 대한 믿음이 나를 그 좌절에서 일으켜 세워주었다.훗날 아들을 만나면 나는 변절하지 않고 원칙을 지켜서 부끄러움 없이 그 아들 앞에 서고 싶었다”얼마 전 한 신문에 난 어느 비전향 장기수와의 인터뷰 기사의 요약이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사회주의자로서 그가 겪었을 그 수많은 고통과 불면의 밤을 생각해보았다.그리고 그 고통의 세월을 지켜준 것이 사회주의에 대한 그의 신념이었다는 데 대해 소름이 돋을 만큼의 충격을 받았다.이 탈이념(脫理念) 시대에도 그는 자신이 믿은 이념의 푯대를 굳건히 붙잡고 있었다.그래서 채 한 평이 못되는 차고 습기 찬 독방에서 30년 넘는 세월을 고스란히 견뎌냈던 것이다.그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문득 지하의 카타콤에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신앙을 지켰던 초대교회 성도들을 생각했다.언제 사형장으로 끌려가 이슬같이 그 목숨이 사라질지 모를 지하감옥에서도 공포와 원망이 아닌 감사와 기쁨의 나날을 보냈던 바울 사도를 생각해보았다.찬송을 부르며 죽어갔던 수많은 순교자들을 생각했다.사회주의는 무섭다.그러나 예수주의는 더 무섭다.오죽해야 로마 정권은 죽이고 또 죽여도 끝은커녕 더 번성해버리는 예수의 세력에 마침내 투항하고 기독교를 국교로까지 공인하게 됐을까.문제는 목숨을 초개같이 여길 정도의 그 무서운 예수주의 원칙이 오늘날에도 살아 있는가 하는 점이다.물론 살아 있을 것이다.그러나 지극히 적은 수에 한정돼 있지 않을까.이 등 따습고 배부른 세상에,탐욕과 쾌락과 돈을 새로운 맘몬,새로운 아세라 우상으로 섬기는 세대에 과연 예수주의 하나로 30년 세월을 독방에서 기꺼이 지낼만한 신앙을 몇이나 만나볼 수 있을까.우리는 거의 습관적으로 입 열면 하나님의 영광 운운하건만 그것이 사실은 얼마나 준엄하고 무서운 말이던가.그 사회주의자만큼은 못된다 해도 눈 앞의 좋은 직장을 스스로 포기하고 감옥에 들어 간 운동권 학생만큼의 예수 원칙을 우리는 견지하고 있는가.차지도 덥지도 않고 타성적인 신앙생활,그저 주일이면 먼지 앉은 성경을 집어 꾸역꾸역 교회로 가는 생활,하나님과 세상을 겸해 섬기는 알량한 신앙생활을 오늘 사회주의자의 인터뷰 기사 앞에서 통렬히 자아비판한다.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늘 알 수 없는 회색 의상의 그대여,그대는 과연 예수주의자인가”/김병종<화가·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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