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어르신
본문
한말 전라도서 채집된 민속 관행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장수 남동 한데 우물에 호랑이 한마리가 빠졌다. 구경꾼이 모여들고 언제 뛰어나올지 몰라 경계가 삼엄했다. 현감은 고민 끝에 단안을 내렸다. 멍석으로 우물을 덮고 구멍을 뚫어 포수로 하여금 총을 쏴 죽였다. 문제는 사살 후에 일어났다.호랑이는 호피뿐만 아니라 살 수염 발톱까지 버릴 것이 하나 없는 귀물이다. 우물 주인이 우리 우물에 빠졌으니 내것이라고 주장했고 고을 현감은 내가 다스린 땅에 나타나 내가 잡았으니 내것이라고 우겼다. 결판이 나지 않자 그 고을에서 신망이 높은 참봉 출신의 원로 어른에게 판결을 의뢰했다.노인은 자기가 내린 결정에 따를 것을 양측에 다짐받고서 호피는 현감에게, 호피 외의 모든 것은 우물 주인의 소유로 판결을 내렸고 이판결은 명판결로서 지금도 구전되고 있다. 이처럼 웬만한 민사나 형사사건 등 송사는 그 마을의 원로에게 의뢰하여 처리하는 것이 우리의 전통 관행이었다.구약성서에도 아버지의 분부를 어긴 아들을 마을 어르신에게 데려가 처단케 하는 대목이 나온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도 부족의 대사는 이 고을 어르신들 70명이 모여 의논해 결정했다. 스파르타 에서는 60세가 넘어서야 병영생활을 마치고 입법 사법 교육에 임한다.우리 옛 촌락자치제의 헌법이랄 향약에 보면 삼노인이라 하여 70세 넘은 노인과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나 벼슬한 사람으로 마을의 민사 형사를 결정하게 하고 도덕과 풍기를 다스리게 했다. 학자 김성일 같은 명인도 늙어서 고향 마을에 내려가 삼노인의 어르신으로 일하고 있다.보도된 바로 광명시에서는 존경받는 노인을 [동네 어르신]으로 모시고 마을의 대소사에 조언을 하거나 잘못된 일을 꾸짖게도 하는 전통 자치제의 장점을 부활키로 했다고 한다. 시행착오를 거쳐 전국으로 번져나갔으면 하는 토착자치제가 아닐 수 없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