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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이뤄낸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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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숙이의 설리번 선생님' 이선희 교사학교 운동자의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이선희 선생님(50세, 경북 영천 금호초등학교 특수반)은 채숙이를 떠올린다. '우리 채숙이도 저렇게 뛰어놀 수 있다면….' '97년 3월, 이선희 선생님은 채숙이를 처음 만났다. 조그만 방 한쪽 구석에서 제대로 앉지도 못한 채 누워서 쭈볏 인사를 했던 채숙이(조채숙, 18세)는 갓난아이 때 소아마비로 다리와 팔이 마비된 1급 지체장애아였다. 학교를 한 번도 다녀본 적이 없는 채숙이는 장애인 무료재택교육이라는 제도가 생기면서 이선희 선생님과 만났다."선생님, 성추행과 성폭행의 차이가 뭐에요" 채숙이가 이선희 선생님에게 던진 첫 번째 질문. 다소 반항적이먼서도 당돌한 사춘기 소녀였다. 채숙이네 가족은 부모님과 오빠 한 명 뿐이다. 채숙이에겐 이렇다 할 친구도 없었다. 그러니 그 나이 때 갖게 되는 호기심을 풀 통로가 선생님밖에 없으리라. 이런 질문들은 그래도 괜찮았다. "선생님, 하느님 정말 있어요, 예수님 본 사람 있어요" "정말 하느님이 있다면 왜 저만 이렇게 태어나게 했어요" 늘 부정적인 채숙이의 닫힌 마음을 어떻게 열어줄 수 있을까그래서 이선희 선생님은 우선 채숙이를 정상인처럼 일어나서 생활할수 있게 해주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때까지 채숙이는 대소변조차 혼자 처리하지 못했다 특수 운동기구를 갖다주면서 파르 다리 굽히기와 펴기를 연습하게 했고, 책상을 일주일에 두 번씩 두시간 하는 수업시간 중에 거의 반 이상의 시간을 재활교육으로 할애했다. 그러면서 틈틈이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나 TV프로그램을 보여주면서 희망과 용기를 주려고 노력했다.결국, 아홉 살이 되어서야 겨우 기어다닐 수 있었다는 채숙이는 이선희 선생님을 만난지 2년 후인 작년 2월 아무것도 짚지 않은 해 두 발로 설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10초, 1분,10분이 아니라 30분 동안이나…. 힘든 나날들이었다. 바깥 세상에서 투명한 하늘, 시원한 공기를 맛본 그때의 감격을 채숙이는 자작시(기적의 오늘)에서 영화나 상상 속에서만 있는 줄 알았던 '기적'이 자신에게 일어났다고 표현했다. 이선희 선생님은 그런 채숙이를 보며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대구교대의 국어교육과를 나와 남편의 권유로 제1회 특수교사자격증을 따면서 특수 교육의 길에 들어선 지 벌써 25년이 다 되어가는 그 부임하는 학교에서마다 만나야 했건 몸과 정신이 불편한 학생들을 보면서 눈물도 숱하게 흘렸고 좌절도 많았다. 왜 그보다 '사랑과 끈기'가 더 필요한 선물이라는 것을 세월이 가르쳐주었다. 지금 그 노력의 보람을 느끼게 해준 채숙이에게 고마울 뿐이었다.글쓰기에 유독 재능이 있는 채숙이는 벌써 시집 두권과 단편 소설 네 권을 썼다. 이제는 채숙이의 시 제목도 더 이상 '배신자' '죽은자' '이별'이 아니다. '그대가 있기에' '행복합니다' '생명' 등….채숙이의 마음에 불 밝히는 등불이 생긴 것이다. 얼마 전에는 '고마우신 선생님' 수기 공모에서 '나의 설리번 선생님'이라는 제목으로 이선희 선생님에 대한 감사를 담은 글이 당당히 최우수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채숙이는 요즘 꿈은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해 노벨상을 탈 만큼 훌륭한 작가가 되는 것이다.내년에 채숙이는 열여덟 나이로 중학교에도 가게 됐다. 또 다른 선생님을 만나 새로운 공부도 시작한 것이다. 오늘 채숙이가 끓여준 라면을 먹으며 이선희 선생님과 채숙이는 약속을 했다."중학교에 가서도 연락하고 만나요. 선생님.""그럼, 그래야지."선생님은 손가락을 걸며 조용히 마음속으로 얘기했다. '채숙아 살다보면 지금보다 더 힘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단다. 좌절을 느낄 때도 오겠지. 하지만 잊지 마라. 희망을 잃지 않는 한 기적은 항상 네 맘속에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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