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열도 울린 오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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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과거를 지울 수는 없지만 인생은 반드시 새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남아’. 일본에서 지난달 22일 발매돼 열흘 만에 20만 부가 넘게 팔린 한 자서전의 제목이다.저자는 여자 변호사 오히라 미쓰요씨(33세). 14세에 이지메로 괴로워하다 자살미수, 16세에 야쿠자의 아내에서 호스티스로 보내야 했던 가슴 저린 사연이 눈물겹다. 밑바닥에서부터 사법시험에 합격하기까지모든 어려움을 이겨낸 그녀의 감동 스토리.소설 같은 삶을 살아온 한 여변호사의 자서전이 지금 일본열도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저자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올해 서른세 살의 ‘오히라 미쓰요’씨. 현재 변호사로활동 중인 그녀는 할복자살 미수, 야쿠자 두목과의 결혼,술집 호스티스 생활 등 남다른 시련과 불행으로 가득 찬 인생을 살았다.그런 그녀가 자신의 과거와 정면으로 맞서서 이야기한 자서전,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남아'는 올해 2월에 발매되어 일본 서점가에 이례적인 베스트 셀러가 되고 있다.굴곡진 뒤안길로 어둠을 짊어진삶. 누구에게나 한 가지 시련은 있게 마련이지만 분명 녹록지 않은 인생이다. 수많은 고통과 좌절의 순간에서 그 가시밭길을 헤쳐 나오기가 쉽지 않았음은 역시 불을 보듯 뻔한일. 그래서일까. 밑바닥까지전락했던 저자가 인생을 새로쓰는 인간 승리의 스토리는 폐부 깊숙이 감동을 자아낸다.모든 얼룩진 과거를 뒤로하고당당히 일어선 그녀의 눈물과 극복의 삶을 정리했다.효고현 아마가사키에서 태어난 미쓰요씨는 새로 전학 간 중학교 1학년 여름, 학년의 보스격이던 A양의 지시로 심한 이지메의 표적이 되었다. A가 말을 걸었는데 다른 데 정신 팔려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던 게 화근이었다. 이윽고 학급 전원이 그녀를 무시하게 됐다.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았고, 점심시간엔 외토리로 도시락을 먹어야 했다.그들은 벽마다 ‘나는 싸구려 여자입니다. 나를 유혹해주세요. 내 이름은 미쓰요’라고 낙서를 하는가 하면 양동이로 물을 퍼붓기도 했다. 핑계를 대고 학교를 빼먹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담임선생에게 이 사실을 알렸지만 도리어 역효과만 내고 말았다. ‘고자질’을 했다는 이유로 이지메는 더욱 교묘하고 악랄해진 것이다.2학년이 끝날 즈음에는 자신은한 적도 없는 장난전화의 범인으로 지목되어서 친한 친구라고 믿었던 동급생들에게도 배신을 당했다. 더이상 버틸 기력이 없어졌다. 죽기로 결심하고유서에 자신을 괴롭힌 아이들이름을 모조리 적어 넣었다.죽음으로써 그들에게 저주를 내릴 작정이었던 것이다. 절망에 빠져 강가로 나간 그녀는 그곳에서 할복을 기도했다.◆ 중3 때 ‘이지메’로 할복자살 기도 16살 때 야쿠자의 아내가 되다과도로 배를 다섯 군데나 그었다. 찔린 상처의 깊이는 10㎝나 되어 간에까지 이르러 있었다. 그러나 생명이란 그리 쉽게 끊어지는 것이 아니었다.우연히 지나가는 사람이 발견해 목숨을 구해낸 것. 결국 자살미수 사건은 신문에도 보도돼 더욱 깊은 상처만을 가슴속에 지녀야 했다.한 달 반의 입원생활을 끝내고3개월 만에 학교에 복귀했다. 각오한 바대로 아이들의 냉대와 이지메는 여전했다. 아이들 틈에서 누군가 “취미는 할복자살이구요~”라고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이제 더이상 학교에는 내가 있을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절망감을 부추기듯 부모님은 미쓰요씨를 정신과 병원에데리고 갔다. 자살을 시도한것은 그녀가 정신이상을 일으킨 탓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이제 그녀는 집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외동딸로서 부모님의 애정을 듬뿍 받고 자라난 행복한 옛 시절은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 길로 집을 뛰쳐나와 불량배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폭주족들이 모이는 곳에 드나들면서외박도 점차 많아졌다. 세상의 그 누구도 그녀를 인정해주지 않았지만 그들만큼은 친구에끼워주었다. 머리를 갈색으로물들이고 담배도 피워 물었다. 폭주족 틈에 끼어 거리를 배회할 때만큼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느낄 수 있었다.돈이 떨어지면 아버지가 없는 시간을 틈타 집에 들렀다. 울며 사정하는 어머니를 때리고 집안을 온통 뒤엎은 뒤 돈을 빼앗아나오곤 했다. 추락을 거듭한 끝에 결국 폭력단 세계에발을 들이밀고 말았다. 거기서 야쿠자 두목과 만나 결혼까지 했다. 그때 그녀의 나이 불과 16세였다. 하지만 폭력단 조직원들은 그녀를 어린아이취급하며 따돌리기 시작했다.결국 그들로부터 인정을 받기위해 문신을 하기로 결심했다. 관음보살과 뱀모양을 새겨넣기로 했다.“무서웠고, 피를 토할 정도로아팠어요. 등을 파고드는 바늘 끝은 참을 수 없이 따가웠죠. 그래도 그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선 참아야 했어요. 문신을 하지 않으면 내가 있을 곳이 없어져버린다는 생각 때문이었죠.”하지만 야쿠자 세계 역시 그가있을 곳은 아니었다. 몸도 마음도 형편없이 망가진 끝에 결국 남편과 이혼했다. 그 후생활도 엉망진창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술집에서 호스티스로 매일 술에 찌든 생활을 해나갔다. 취하면 ‘그때 죽었어야 했는데…’라고 울부짖곤 했다.더이상 추락할 곳 없는 밑바닥 인생. 그런 칠흑 같은 나날 속에 한줄기 빛이 비쳐진 것은 1988년의 봄, 미쓰요씨의 나이 22세 때였다.◆ 호스티스로 만난 아버지 친구의 도움인생의 몰락에서 극적인 부활을 시도오사카 기타신치의 술집에서 일하고 있던 미쓰요씨는 우연히 아버지의 친구를 만나게 된다.그의 이름은 ‘오히라 히로자부’로 어렸을 때부터 그녀를 무척 귀여워해주던 분이셨다.그를 본 순간 그녀는 참을 수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당연히‘너 미짱이지’하고 말을 걸어왔을 때는 얼굴을 들 수가없었다. 그곳으로부터 도망쳐버리고 싶었다.그는 곧 ‘아버지가 걱정하고 있단다’‘언제든지 전화하거라’하며 그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매주 한번씩 찻집으로 불러내 그녀의 마음을 돌리려 애썼다. 하지만 그의 말도 쓸데없는 참견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진한 화장에 야한 옷을 입고, 손톱에는 진한 빨간색 매니큐어를 바르고 ‘던힐’담배를 피우는 그런 생활을 반복할뿐이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때마다 그녀는빈정거리듯 저항했다. “그런말 하려면 나를 중학생 시절로 돌려보내줘요.”순간, 그는 불같이 화를 냈다. “확실히 네가 길을 잘못 든 것은 너만의 잘못은 아니야. 부모도 주위 사람도 책임이있지. 하지만 다시 일어서려고 하지 않는 것은 어디까지나네 탓이야. 어린애처럼 어리광 부리지 말아!” 순간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인자하기만 하던 그가 그처럼 화를 내는 것은 처음 보았다. ‘넌 분명히 잘할 수 있어. 해보지도 않고 포기해서는 안돼’라고 호통을 친 것이다.“제 주변에서 내 잘못을 지적하며 화를 내준 사람은 처음이었어요. 어머니도 아버지도 나만 보면 눈물만 흘렸지 호통친일은 한번도 없었거든요. 나를 진정으로 걱정하고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순간 한가지 결심이 제게 생겨났죠. 속는 셈치고 그분을 한번 믿어보기로 하자구요.”그녀는 오사카에 방을 하나 얻어 새로 인생을 출발하기로 결심했다. 먼저 오히라씨의 권유로 자격증 시험을 보기로 결정했다. 중졸 학력으로는 좀처럼직장을 구할 수가 없었던 탓이다. 아무 경력도 없는 그녀를 채용해줄 곳은 아무 데도 없었던 것. 결국 자격증을 따는 길밖에 없었다.우선은 TV에서 본 부동산 중개인 시험을 보기로 정했다.수험서를 사서 공부를 시작했지만 길은 갈수록 험난했다. 중학교에서 제대로 공부를 못했기때문에 우선 한자를 잘 읽을수 없었다. 옥편을 찾느라 한 페이지 진도를 나가는 데도몇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지옥을 탈출할 마지막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던 석 달 후, 주택건설 시험에 합격, 처음으로 맛보는 성취감에 가슴이 뭉클해졌다.다음엔 법무사 자격시험에 도전했다. 첫번째 낙방 끝에 이듬해 합격, 조그만 사무실을 차려 일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때 그녀는 딸과 절연하겠다던부모를 용기를 내어 찾아갔다. 용서를 받지 못해도 당연하다 생각했다. 그저 지금의 마음만은 전하고 싶었다.“마루에 올라서자 서랍장 정면에 난 상처가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내가 각목을 들고 와서 힘껏 쳤던 흔적이었죠. 그것을 봤을 때 정말로 마음이 아팠어요. 양친이 보는 앞에서지갑에서 돈을 꺼내 라이터 불로 태운 적도 있었구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아버지에게침을 뱉고 발길질을 한 적도 있었으니깐요.”그런 나날들을 그녀는 진심으로후회하고 사죄했다. 부모님은그런 그녀를 끌어안고 펑펑 눈물을 쏟아냈다. 머리 숙여 사죄하는 그녀에게 부모님은 울면서 “ 정말 장하구나. 장하구나”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옛날에 비해 작아진 부모님의 모습이 미쓰요씨의 눈동자 속에서 흔들렸다.사법서사 업무를 시작한 지 얼마 안돼 그녀는 다음번 목표를세웠다. 모든 자격증의 정점이라는 사법시험이었다. 중졸의탈선소녀도 합격할 수 있음을증명하면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거라는 게 이유였다.◆ 암 걸린 아버지 생전에 사법고시 합격 비행소년의 변론을 맡아 변호사 활동먼저 대입 검정시험 준비부터 시작했다. 그때 오히라씨가 조직해준 후원회 모임이 큰 도움이 되었다. 후원회 회원들의 도움으로 며칠씩 개인교습을 받아 겨우 고교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26세의 봄에 그녀는모 대학 통신과정의 법학부에 입학했다.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해야 할까. 이듬해 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게 되었다. 이미 온몸으로 전이돼 있어 완전 회복은불가능하다고 했다. 의사는 앞으로 얼마 더 살지 못한다는냉혹한 판정을 내렸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시간이 없었다. 아버지가 살아 있는 동안 어떻게든 사법시험에 합격해야 했다. 그것만이 과거의 불효를씻을 수 있는 유일한 ‘면죄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법시험은 그동안 그녀가 치러낸 시험과는 차원()이 달랐다.결국 취미와 즐거움을 모두 접어두고 미친 듯이 공부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잠자는 시간빼놓고는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린 시간, 어쩌면 자면서도 공부를 했는지 모른다. 아침잠에서 깨어나면 모르던 정답이 마술처럼 머리에 떠오르는 경우가 때때로 있었다.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신비한 체험이었다.합격자 발표날. 그녀는 교토 검찰청의 게시판 앞에 1시간 먼저 가서 기다렸다. 초조해서집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초가을의 가랑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빗방울을 쳐다보며 하염없이 빌고 또 빌었다. 이윽고 합격자 명단이 나붙었다.심장의 고동이 빨라졌다. 불안하게 숫자를 쫓던 시선이 멈추었다. 1935번. 자신의 수험번호가 분명히 거기에 붙어있었다. 그녀는 어디에 감전이라도 된 듯 온몸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한때 밑바닥까지 경험했던 몰락인생이 극적으로 부활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일류대학 졸업생이라도 몇 년이걸리는 사법시험에, 그녀는 첫번째 도전에서 멋지게 합격했다. 그 뒤로 2년간은 교토에서 사법연수를 받았다. 아버지는 연수가 끝날 무렵인 97년, 눈을 감으셨다.아버지는 유언으로 오히라씨에게그녀를 양녀로 삼아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좋은 아내와 딸을 얻어서 정말 행복했다. 정말 고맙구나”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가족의 곁을 떠나갔다. 아버지가 유언으로 얼마나딸을 사랑했는지 고백했을 때, 그녀는 어머니를 부둥켜안고또 한번 회한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지금, 미쓰요씨는 오사카 요도가와 지역에 조그만 사무실을 내고 변호사 활동을 하고 있다. 변호사가 된 후 3년 동안비행소년 70여 명의 변호를맡았다. 수면시간은 하루 2시간, 그동안 자녀교육에 대한강의로, 소년원으로 부지런히뛰어다녔다. 그들의 어려움을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탓이다. 그래서인지 미쓰요씨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 않는다. 결코 자신을 ‘밑바닥으로부터 다시 일어선 영웅’으로 만들지 않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마음의 문을 닫아 건 채 귀를 잘 기울여주지 않는다. 어쨌든 그녀는 한가지 꼭 이야기하고 싶은게 있다. 아무리 힘들고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절대로 모든 걸 포기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당신이지금 겪고 있는 고통과 슬픔은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 언젠가는 반드시 해결된다’ 그녀는 자서전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누구도 과거를 지울 수는 없다. 그러나 인생은 반드시 새로 시작할 수 있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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