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락으로 세상을 두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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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전기감전으로 양팔을 잃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지요. 어쩌다 외출을 하면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했고 사람들의 동정 어린 시선을 받아야 했습니다. 학교도 예전에 제가 다니던 곳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서 있는 것 같았죠. 하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갈수록 '이건 되고 저건 안되는구나'하며 새로운 생활에 익숙해져갔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솔직히 중·고등학교때 에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아요. 누구나 다 겪는, 어쩌면 남보다 더 혹독한 사춘기를 거치면서 저는 제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하지만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어요.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막상 할 일도 없고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게 되더군요. 그러다 보니 이런 저런 프로그램을 조금씩 접하며 저도 모르게 컴퓨터에 대해 많은 걸 알아갔습니다. 고장도 수없이 났고, 프로그램을 날린 게 한두 번이 아니었죠. 고장이 나면 서비스센터의 직원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어깨 너머로 보고 잘 기억해 두었다가 다음 번에는 저 스스로 고치기도 했구요. 그렇게 2∼3년을 하다 보니 웬만한 문제는 제가 다 다룰수 있게 되었습니다.그러던 중 동생이 가지고 온 벼룩시장 신문에 우연히 경일직업전문학교에서 훈련생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았습니다. 장애인도 소수 모집한다는 내용에 용기를 내어 전화를 했지요. 한번 오라고 해서 갔더니 관계자는 저를 보고는 "할 수 있겠느냐"며 의문스러워 하더군요. 처음엔 안되겠다고 하더니 제가 컴퓨터를 다루는 걸 보고 그제서야 허락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1년 과정을 수료하며 광고도장기능사 자격증도 땄습니다.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수업이 끝난 후나, 집에 돌아와서도 밤 늦게까지 실습을 해야 했습니다. 자로 제도를 하고 그위에 수성페인트를 칠해 말리고, 또 그 위에 유성페인트를 색칠하여 주어진 시간에 간판을 완성하는 것이었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성취감 이었습니다.직업학교를 수료한 후에는 장애인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정보처리 과정을 공부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편안하게 공부했고, 장애인친구들도 만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러던 중 대구시 장애인 기능경기 대회에 출전을 했고 저는 컴퓨터디자인(CAD)부문에서 3위에 입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결과가 좋아서 사실 어안이 벙벙했지요.더욱 자신감이 생겨 이번에는 워드프로세서 2급 자격증에 도전을 하였습니다. 필기는 공부하면 되지만 실기가 문제였습니다. 30분 안에 A4용지에 빼곡히 문서를 작성하고 편집해야 하는데, 저는 그 모든 과정을 발가락으로 해결해야 되기 때문이죠 역시 걱정했던 대로 실기에서 떨어졌습니다. 포기할까 생각하다 한번 더 해보자고 마음 먹고 다시 시도를 했습니다. 두 엄지발가락만으로 분당 250∼300타 정도를 칠 정도가 되니 합격을 했습니다.공포스럽기까지 했던 바깥 세상으로 한걸음씩 걸어 나와,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저의 능력을 하나하나 발견해 나가는 오늘의 제 모습이 신기할 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장애를 가졌다는 것을 너무 슬퍼하지도, 너무 괴로워하지도 않으려 해요. 다만 아쉬워할 뿐이지요. 그리고 편견 가득한 세상 속에서 때때로 정말 보석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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