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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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날아온 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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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꿈마저 담벼락을 넘지 못한다고 한다. 꿈속에서라도 감옥살이의 족쇄를 벗어나 속시원히 돌아다니면 좋으련만, 꿈속에서조차도 감옥의 견고한 울타리만을 맴돌다가 안타깝게 꿈에서 깨고는 한다는 것이다. 꿈조차 감옥의 높은 담을 넘지 못할 때 그 담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마음 그 자체가 아닐까.부천의 오세연 씨는 얼마 전부터 영등포 교도소에서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온 편지를 매달 5통 가량 받고 있다. 오세연 씨는 부천에서 교도소와 고아원 등의 시설을 방문하여 봉사하는 작은 모임을 꾸려가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매달 소식지를 발행하여 필요한 곳에 무료로 발송해주곤 했는데, 우연히 그 소식지를 읽은 한 재소자가 편지를 보내오기 시작했던 것이다.그는 잡범이었다. 배가 고파 소액의 돈과 자잘한 물건 따위를 훔치거나 소매치기하는 등의 범죄를 저질러 수감되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의 형량은 8년이나 되었다. 전과가 누적되어 특가법이 적용되었기 때문이었다.그는 고아원에서 자라났다고 했다. 참 상투적인 얘기다. 고아원 출신이 사춘기 시절 고아원을 도망쳐 부초처럼 세상의 이곳저곳을 유랑하다가 결국은 시시한 잡범이 되어 감옥에 발과 젊음을 송두리째 묶이고 말았다는 이야기. 아무도 더는 관심 기울이지 않는 흔해빠진 스토리이다.하지만 그것은 그의 생(生)이었다. 다른 사람의 삶과 마찬가지로 유일하며 절실하고 아름다운 자신만의 생이었던 것이다. 그는 소식지를 읽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긴긴 편지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그는 감옥에서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깨닫고 있었다. 오세연 씨는 마음이 아프고도 기뻤다.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다시 그로부터 편지가 날아와 개봉하는 순간 무엇인가 툭 떨어져내렸다. 340원짜리 우표 10장. 자신에게 보내지는 소식지가 또 다른 곳에 기쁨으로 배달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탁의 말이 편지에 씌어 있었다. 이후 그는 매번 그렇게 우표를 넣어 편지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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