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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책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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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세기의 알렉산드리아에는 자살학교가 있었다. 이 학교에서는 공인으로서 참을 수 없는 치욕을 당했을 때, 자신이나 가족 소속 계층의 명예가 손상당했을 때,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살하는 것은 좋은 명분이라고 권장했다. 로마제국에서도 영웅적인 행위로서의 자살, 불치의 병고나 노고, 씻을 수 없는 불명예, 사형선고를 받은 죄인으로 형집행 대신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할때 이를 권장하고 무료로 독약을 공급해야 하게끔 돼 있었다. 이같은 자살 긍정론이 5세기에 들어 기독교 신학의 부정론으로 급선회, 자살은 자신을 죽이는 살인행위로 죄악시하기에 이른다.우리 나라에서도 신체발부는 부모수지한 것이라는 신체관이 정립되면서 자살에 부정적 견해가 없지 않았지만 명분있는 의리 자살은 적지 않았고 또 권장되었다. 신미양요 때 미 해병대에 의해 광성포대가 함락당하자 조선 병사들은 양오랑캐에 더럽히느니 죽는 게 낫다며 줄줄이 포대 앞바다에 투신, 바람에 진 꽃잎처럼 흘러갔던 것이다. 가문의 명예를 북돋을 일이나 손상시키는 일이 생기면 서슴없이 자결을 했고 한 양반집 마님이 피란길에 배를 타면서 뱃사공이 손을 잡아 끌어준 것을 두고 외간 남자에게 손목을 잡혔다 하여 투신 자살하는 등의 의리 자살이 많았다. 한데 예와는 달리 지금은 자살 동기도 타락하여 생활고 실연 낙방 병고 노고 맹신 등 명분 상실의 자살이 주류가 되고 있다. 독방을 달라는 딸에게 할머니 돌아가시면 생길텐데 보채느냐는 어멈의 말을 엿듣고 자살한 할머니 등 노인 소외에서도 자살이 늘고 있다.이웃 일본에서는 봉건주에 대한 충성의 전통 때문인지 부정 독직사건에 연루되면 상전을 위하거나 그 죄책을 안는 의리에 입각한 가책자살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그 잦았던 검은 돈 흐름에서 가책 자결을 본다는 것은 희소한 일이다. 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새끼 줄 하나 주워 집에 들고 왔을 뿐이라는 소도둑의 변명으로 새끼줄만 보이고 소는 권력의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고 마는 것이 작금의 검은 돈의 시말이다. 한데 이번 검은 돈 고리에서 핵심 연루자가 가책 자살을 했다. 고통받는 동료를 위한 의리를 내세웠지만 그 검은 고리를 은폐하는 것도 되어 뒷맛이 쓴 가책 자살이긴 하지만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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