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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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적 승복이 있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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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을 다녀온 어느 관광객이 재미있는 체험담을 이야기한 것이 생각난다.들판 양쪽에 풀밭을 두고 가운데 길이 나 있었다.그리고 그 길로는 자동차들이 달리고 있었다.이쪽 풀밭에서 길 건너 저쪽 풀밭으로 양떼를 건너가게 하기 위해 한 목동이 피리를 불며 양을 인도해가고 있었다.그러다 목동이 갑자기 배가 싸르르 아파오면서 용변이 급해졌다.그는 불던 피리를 멈추고 저 멀리 있는 풀밭을 향해 달음박질을 쳤다.그러자 그를 따르던 1000여 마리 되는 양이 길 위에 멈추어 섰다.오가던 수많은 자동차들이 일제히 서야 했다.차들이 전조등을 켜보고 경적을 울리며 운전자들이 고함을 쳐도 양떼는 길 한 가운데 선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잠시 후 일을 마친 목동이 돌아오고 다시 피리를 불자 양들은 서서히 움직이며 길을 벗어나 건너편 풀밭으로 갔다고 한다.그렇다.이것이 바로 목동이 양을 인도하는 방법이다.그는 결코 양을 휘몰아갈 수 없다.양이 그렇게 휘모는 목동의 지휘를 따라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기계적인 복종이 아니라 신앙 안에서의 인격적인 승복과 결단이다.그리고 그러한 인격적인 승복과 실존적인 결단을 통해 우리를 따라오도록 이끄신다.그러나 여기에 우리 스스로 함정을 팔 때가 있다.하나님께서 워낙 인격적으로 우리를 대해 주시고 우리를 기계적으로 휘몰아가시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성품을 오해하곤 한다는 것이다.우리의 인격적 승복과 반응을 오래 참으심 가운데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능력이 없으시고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 무관심하시며 자기를 도와주는 일에 있어 우유부단하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우리의 이같은 생각은 항상 사실에 기초하기보다는 잘못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스스로의 불만족에 기인할 때가 많다.하나님을 바로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께 바로 순종하지도 못하는 어리석음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하나님을 그리 영화롭게도 못하며 하나님께 그리 충성하지도 못하는 믿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말이다.오늘날 우리에게 있어 회복돼야 할 것은 인격적 목회와 인격적 신앙이다.강요나 습관에 의해서가 아니라,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고 그분께 대한 인격적인 승복이 있는 사랑의 회복이 절실한 것이다.목회자나 성도나,직분자나 초신자나,모두가 마찬가지다.왜냐하면 하나님께 대한 아가페가 없는 신앙생활은 그저 형식적인,의식없는 종교생활일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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