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TOP
DOWN


장면박사의 성실성

본문

운석(雲石) 장면 박사의 탄신 100주년(8월28일)을 맞아 그의 생애를 재조명하기 위한 일련의 행사와 사업들이 구체화되고 있다. 지난 7월5일 창립된 바 있는 사단법인 운석기념회는 27일 장면 박사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는 미사를 봉헌하고 기념식과 학술강연회를 개최키로 하는 등 기념사업의 첫발을 내디뎠다는 소식이다.장면 박사의 삶이 재조명되는 작업은 근 33년여 만의 일이다.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삶이 새롭게 연구되고 밝혀지는 작업은 한국 근세사의 일부를 바로잡는 일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기념사업회가 구상하고 있는 다양한 사업들이 한 시대를 책임진 정치인으로, 또 올곧은 신앙인으로 살았던 장면 박사의 삶의 궤적을 진솔하게 살펴내는 값있는 작업이 되기를 기원하는 바다.지난 세월 장면 박사에 대한 평가는 크게 두갈래로 나뉘어져 왔다. 66년 67세의 나이로 그가 선종한 후 교회 장상들은 ‘거룩한 평신도’ 또는 ‘신앙의 정치인’으로 장면 박사를 칭했다. 당시 신민당 총재였던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인으로서 장 박사는 진정한 민주주의와 지방자치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입안해 국민이 고르게 잘사는 사회를 구현하고 국토건설 계획을 세워 많은 실업자를 흡수하려 했던 신념과 사명이 투철한 지도자였다”고 추앙한 바 있다.반면 5·16 직후 가르멜 수녀원에서 외부와의 연락이 단절된 채 머물렀던 55시간을 두고 그를 시대의 부름을 놓쳐버린 정치인으로 평가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이 부분은 군사정권에 의해 쿠데타가 미화되고 정당화되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조차 상실하고 말았다.실제로 장면 박사는 1960년 4·19혁명 후 그해 8월25일 민주당의 국무총리로 집권한 이래 다음해인 61년 5월 무장한 쿠데타군에 의해 정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불과 9개월여 만의 일이었다. 성한 곳이 한군데도 없을 정도로 썩었던 자유당 정권으로부터 정부를 물려받은 지 9개월, 그 세월은 정치적 역량이나 업적을 평가받을 수 있는 시간은 분명 아니었다. 더구나 집권 후 61년초 발표한 중점적인 정부시책 7개항과 정치백서 등이 미처 꽃을 피워보기도 전이었다.그로부터 30년 세월이 훌쩍 넘었다. 당시 언론과 일부 정치계의 격렬한 비판 속에서 울분을 토로하는 친지들에게 “좀더 긴 안목으로 사가(史家)들의 평가를 기다리자”고 했던 장면, 그의 말대로 지금 우리는 제대로 된 잣대로 제대로 된 역사를 다시 쓰고자 중지를 모으고 있다.한 사람의 신실한 신앙인으로 또 정직한 정치인으로 살았던 장면 박사, 격변기 대한민국의 정치적 격랑을 앞장서 넘어야 했던 그의 삶을 정확히 되짚어 내는 일은 지금 우리에겐 너무나 절실하다. 오늘 우리 정치인들에게 정직과 깨끗함이란 단어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3,499 건 - 555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