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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 청결사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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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때도 밀고,네 때도 밀고,세상 때도 밀면서“옷을 벗는다는 것은 가식을 털어버리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물은 뛰어난 심리치료제이기도 하고요.”여성의 자립을 도와주는 ‘자립지지 공동체’ 김미령(44) 대표는 영등포구 양평동 조그만 빌딩 지하에서 무료로 ‘피부청결사’ 교육을 한다.그가 보통 복지관 등에서 하고 있는 양재 미용 제빵기술 등의 교육을 제치고 ‘때밀이’라는 험해 보이는 종목을 택한 이유는 그 일이 궁지에 몰린 여성들의 금전적·정서적 자립에 실제로 더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몸을 대주고 살을 닦아주며’미용이나 제빵 기술은 제법 긴 견습생활을 거쳐야 하고 가게를 차리는 데도 꽤 많은 자본이 든다. 피부청결사는 일주일에 3번, 4주간 교육을 마치면 몇번의 ‘실전’을 거쳐 곧바로 어엿한 직업인으로 독립할 수 있다. 취업률도 높다. 체력이 필요한 일이긴 해도 열심히 하면 하루에 10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린다. 주말이면 20만원도 번다. 이 정도면 목욕탕에 내는 보증금 2백만원도 금방 갚을 수 있다. 때밀이는 이렇게 짭짤한 수입이 있는지라 서울시내에만도 한달 수강료가 40만원이나 하는 피부청결사 학원이 20여 군데 있다. 김 대표는 때밀이 직업이 금전적 수입 외에 거두는 이득도 중시한다. 그가 때밀이 교육과 인연을 맺은 것은 70년대로 거슬러올라간다. 산동네에서 탁아운동을 하던 선배 언니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사람들이 때밀이 직업에 모이는 걸 알고는 사회사업을 지망하는 그에게 그 교육을 해보라고 권했다. 빚에 쪼들리는 사람, 남편의 끝없는 난봉으로 지칠대로 지친 사람, 남편을 피해 아이를 두고 가출한 사람, 혹은 접객업소에서 일하던 이들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이 직업을 찾는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위로와 치료가 필요한 이들은 ‘옷 벗고 물 끼얹는 일’을 통해 어느덧 심신이 치유되고 경제적으로도 자립할 수 있게 된다.김 대표도 이들과 함께 교육에 참가한다. 서로 ‘몸을 대주고 살을 닦아주는’ 이 교육은 기막힌 동지애를 만들어낸다.성공회 신부인 남편 윤정현씨가 “그러다가 당신 레즈비언 되는 거 아냐” 라는 농담을 할 정도다. 처음 온 사람들은 “가운을 걸치고 수건으로 가리고” 시작한단다. 하지만 그런 ‘치장’은 잠시, 서로 몸을 닦아주다 보면 배도 쉬 고파 “교육장 한쪽에서 밥을 해서 모두 벌거벗고 빙둘러 앉아 깔깔대며 밥을 먹다 보면” 여지껏 남에게 애써 숨겨 왔던 자신의 아픔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말문이 터진다.이들은 취업 후에도 한달에 한번씩 만난다. 그 모임에선 정보를 교환하고 ‘돈 내고 때 민다고 아니꼽게 구는 X들’ 욕도 하고 서로 실습처도 마련해 준다. 지금 약간의 수고비를 받고 교육을 하고 있는 강사 선생님도 이곳에서 배출된 ‘선배’들이다. 이렇게 결속된 이들은 “내 때도 밀고, 네 때도 밀고, 세상 때도 밀면서” 서로 위로하고 서로 돕고 자기 자신을 돕는다.“스스로의 의지가 가장 중요해요” 대학 시절에 야학을 시작한 이래 줄곧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해온 그가 가장 관심을 쏟고있는 주제는 바로 ‘스스로 돕겠다는 의지를 어떻게 개발해 낼 것인가’ 이다.“어릴 때 공부를 잘해” 부모님의 자랑거리였던 그는 그 덕분에 자아존중감이 높아져 여지껏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자신있고 즐겁게 한다. 그는 96년 남편과 함께 영국에 유학해서도 여성 자주 그룹에 대해 공부했다.“현장에 대한 목마름”으로 한국에 돌아온 그는 곧바로 피부청결사 교육을 시작하고 그 교육장 앞에 방 2개짜리 조그만 아파트를 얻었다. 한쪽 방은 공동체 사무실 겸 그의 침실이고 또 한쪽 방은 여성 쉼터다. 이 쉼터에는 궁지에 몰려 자존감에 상처 입은 여성들이 찾아와 심신을 쉬고 교육도 받고 일자리를 찾는다. 10대부터 매춘을 했던 한 여성이 있었다. 포주의 감시를 받으며 폐쇄된 공간에서 폐쇄된 ‘일’을 해야 했던 그 여성은 삶의 기술이라곤 아무 것도 지니지 못하고 있었다. 서른이 넘었으면서도 라면 하나 제대로 끓일 줄 몰랐고 끓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존감의 상실이 얼마나 무서운 피괴력을 갖는지 다시 한번 실감했다.“혼자만 서방 만나러 가냐”그는 수수하게 일을 한다. 그 흔한 명함 한장 내밀지 않고 공동체를 소개하는 인쇄물도 그저 밋밋한 복사용지다. “요즘 인쇄물엔 거부감이 많거든요. 그게 다 나무 자른 거잖아요.” 일을 거창하게 벌이지 않으니 제정문제에도 크게 시달리지 않는다.“집은 어차피 내 숙소로 필요한 거고 밥은 쌀 한주먹 더 있으면 같이 먹어요. 쉼터에 있는 사람들도 일을 구하면 한달에 10만원씩 내니까 그걸로 충분합니다.” 공동체를 후원하는 주부 자원봉사자들도 있다. 그네들은 후원받은 직물로 인형도 만들고 생활 소품도 만들어 바자회에 내놓는다.김 대표는 요즘 참선을 시작했다. “상담이니 교육이니 하는 게 전부 말 파는 일이라 때로는 말을 피하는 것도 필요해요.” 일 하다 지치면 그는 향을 하나 피워 놓고 그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다. “사회변혁을 위해 일한다는 건 자신의 삶에 질적 향상이 수반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거든요.”일을 위해 주말부부를 택한 그는 남편과 아이를 만나러 충북 청원에 가기 전에 그가 사무국장으로 있는 공동육아 사무실에 들러야 한다며 자리를 떴다. 보통 때는 “혼자만 서방 만나러 가냐”라는 쉼터 식구들의 질투()를 피해 몰래 나갔지만 오늘은 모두 외출하고 없어 안심하고 나간다며 그는 싱긋 웃었다.△자립지지 공동체 02-637-4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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