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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병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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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특히 서양인들이 한국어 가운데 자신들의 문화나 정서 차원에서 설명하기 힘들고 번역이 마땅치 않아 그대로 표현하는 것으로 김치(kimchi) 기분(kibun) 화병(wha) 아줌마(adjumma) 재벌(chaebol) 등이 있다.adjumma는 프랑스어 표기다.청순하고 발랄하면서도 수줍어하던 처녀가 시집가서 애 낳고 몸이 퍼지면 염치는 약간 옆으로 제껴두고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억척이 되는 한국의 아줌마들.이런 유형을 프랑스에서는 찾기도 설명하기도 난감해 한국말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그래도 김치,재벌,아줌마는 기분, 화병보다 설명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기분과 화병은 한국에 와서 여러 해를 살수록 더욱 모르겠다는 판국이니 이해시키기가 매우 어렵다.요즘 한창 잘 나가는 영국기자 마이클 브린의책 `한국인을 말한다'에도 기분에 관해 상당한 분량이 할애되어 있다."한국어에는 감정이나 마음의 상태를 뜻하는 `기분'이라는 말이 있다.기분은 매우 중요하다.기분이 좋으면 정신적으로 좋을 뿐만 아니라 신체적 건강에도 좋다.기분이 좋지 않을 때에는 사업약속을 취소하거나 부인이나 비서에게 화를 내는 것 같은 행위도 용인된다.기분은 영어의 mood로 번역될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훨씬 중요한 것으로 간주된다"우리는 흔히 `기분에 살고 기분에 죽는다'라는 말을 하며 사실상 기분의 지배를 받고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그들에게는 낯설고 이상한 것이다.마이클 브린 외에도 한국 하면 가장 먼저  `기분'이 떠오른다는 외국인이 적지 않다.지난 해 주한 유럽연합(EU)상공회의소도 한국인을 상대로 하는 상담안내서에 "한국인은 기분만 맞춰주면 상담이 술술 풀린다"고 했다.화병(화병)은 서양은 물론이고 같은 한자권인 중국,일본에도 없는 말이다.스트레스 등 화병과 비슷한 증상이 어느 나라에나 있지만 그런 것들과는 또 다른 특질을 보여 외국 정신과 의사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따라서 지난 96년 미국에서 열린 의학학술대회에서 화병을 정신질환의 하나로 공식인정하고 용어도 한국어 그대로 사용키로 해 그야말로 세계화에 한몫을 했다.화병이 겉으로 폭발하지 않고 가슴 깊숙이 자리잡으면 한(한)이 된다.이용어 역시 중국,일본에도 없다.우리한테만 있는 것으로,이것도 자랑이라면 자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기분과 화병,한은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동양에서는 예부터 기(기)는 생태계 일반을 두루 관통하는 우주적 생명력으로 보았으며,인체에서는 피와 호흡이 기의 흐름을 주도하는 것으로 여겼다.그런 생명의 내적 상태가 밖으로 드러날 때 기색 또는 기분이라고 한다.기가 막히면 혈기와 기색이 순조롭지 못해 질병을 불러오는데 그것이 화병으로 진행되고 한으로 남게 된다.경희대 의료원이 IMF 이후 뇌졸중으로 치료받은 환자 2백명의 발병 원인을 조사한 결과 화병이 30%에 육박,1위를 차지했으며 전년에 비해서는 무려 7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그 중에서도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화병이 난 경우가 가장 많았다.전문가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술자리에서 `이대로'를 외치는 일부층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국민이 지금 `기가 막힌' 상태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기의 흐름이 순조롭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피와 호흡이 완전 증발 직전의 상태다.겉은 그럴 듯하지만 송장이나 다름없다.화병으로 쓰러진 사람이 7배 늘었다지만 겉만 멀쩡한 사람을 포함하면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달라진 게 있다면 예전의 화병과 한이 여성들 전유물이다시피 했는데 그들이 아줌마 기질을 발휘하며 상당히 탈피한데 반해 남성 가장들의 화병은 급증하는 점이다.이렇게 기막힌 사람들의 건강을 회복시키려면 기분을 살려야 하는데 아무리 돌아봐도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진행중인 반쪽 경제청문회 같은 것은 도리어 국민들의 화병을 돋우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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