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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렁이 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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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맞지 않는 헐렁한 옷을 흥부 자식들 옷이라 한다. 그 많은 어린자식들에게 얻어온 누더기 어른 옷을 입혀놓고 보니 헐렁할 수 밖에 없고, 한 놈은 팔만 끼우고 한 놈은 가랑이만 끼워 한 가지의 옷으로 여러 놈을 입히다보니 저고리도 헐렁 바지도 헐렁할 수 밖에 없었음직 하다.요즘 젊은이들의 옷차림새가 흥부 자식들 옷차림새와 전혀 다르지 않다.셔츠는 아버지나 언니들 옷을 입고 나온듯 어깨가 드러날만큼 헐렁 한데 셔츠를 바지에 넣어 입는다는 법없이 허벅지까지 내려 헐렁거리고 바지도 입다만옷처럼 엉덩이 상반부가 노출될만큼 내려입어 바지통 하반부를 신발위에 겹쳐얹고 걷는다.등에 짊어진 륙색도 엉덩이까지 밑으로 내려 처지게 져서 헐렁감을 더해주고--. 아가씨들의 양말도 신다 말고 벗다 만것처럼 장딴지의 하반부에서 멎는 에어로빅 스타일이다. 미국의 루스 패션이 상륙한 것이다.나름대로 이유는 있다. 몸의 구속을 최대한으로 제거한 헐렁이라는 것이다.허리를 죄지도 않고 륙색으로 땀나는 등을 가리지도 않으며 날씬하지 못한 무다리를 은폐시키는 등 기능성을 든다. 하지만 유행에 기능성을 강조하는 것은변명에 불과한 것이요 잠재된 사회심리가 우회적으로 유행에 발로되는 것이다.패션을 대별해서 상승지향과 하강지향으로 나눠 보는데 미니 스커트나 노출이 상승지향이라면 헐렁이는 하강지향이다. 셔츠도 늘여 처지고 륙색도 늘여 지며 바지도 양말도 내려 입고 신는 하강지향인 것이다. 상승패션은 그사회가 활동성이 진보지향일때 나타나고 하강패션은 정체적인 보수지향일때나타난다.사색당파에 있어 진보적이던 소론 가문의 부인들은 머릿쪽을 바싹 추켜찌고 보수적인 노론 가문의 부인들은 느슨하게 내려 찌어 목덜미가 보이지 않도록해 당색을 가늠했었다. 저고리 깃도 짧고 모난 것이 소론이요 길고 느슨한것이 노론이며, 치마 주름도 촘촘하고 발꿈치가 보이는 것이 소론이요 주름이느슨하고 발등까지 덮었으면 노론이었다.헐렁이 패션이 랩 가수들의 스타일파괴 복장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주의하면 젊은이들의 수치를 둔 기존 가치관 파괴를 복장으로 구현한 것이기도 하다. 현대는 부모 형제까지 포함한 남들과의 관계단절이란 말도있듯이 남이야손가락질하건 비웃건 내멋대로 편하게 산다는 자기 소외사상의 복장 시위이기도 하다. 외모의 헐렁은 좋으나 마음까지 헐렁해질까 그것이 걱정이다.- 1996. 9. 4. 이규태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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