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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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십자가 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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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형은 인간이 겪는 고통중 최악이다. 로마제국은 극형이 선고된 죄수는 십자가에 달았다. 캔버스대학 해부학교수 하워드 매츠키 교수는 십자가형의 고통을 의학적으로 분석하였다. “극형이 선고된 몸의 체중이 두 손바닥에 박힌 못에 매달려지기 때문에 살이 찢겨 많은 피를 쏟고 통증이 심하다. 또한 가슴으로부터 팔에 이르는 근육들이 극도로 팽창하여 호흡장애를 가져온다. 숨을 내쉴 수가 없어 근육에 산소 공급이 안된다. 그래서 심한 경련을 일으킨다. 이런 증세를 조금이라도 참으려고 죄수는 몸을 위로 치켜올리려 하는데 이때 마다 체중은 발등에 꽂힌 못에 의지하므로 그 고통은 가중된다” 예수가 달린 십자가는 이런 고통이었고 결코 예쁜 십자가가 아니다.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남을 대신하여 죽어 준 사람이 있다. 독일 나치의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는 차례차례 가스실로 끌려갔다. 어느날 아침 이름이 불린 가요니체크는 독일군의 발에 매달려 사정했다. 자기는 젊은 아내와 갓난 아이까지 있으니 죽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이때 한 신부가 나서서 군인에게 말하였다. 자기가 끌려갈 예정일이 언제인지는 몰라도 이 청년과 순서를 바꿔달라는 것이었다. 독일 군인도 신부의 청을 받아들여 그날 신부는 죽었고 가요니체크 씨는 연합군이 해방시킬 때까지 살아남았다. 로마 교황청은 이 신부에게 성자의 성품을 주게 됐다. 72년 10월 그 자리에 가요니체크씨가 초청돼 짧은 간증을 했다. “그 잊을 수 없는 아침 신부님이 나에게 미소를 보내며 끌려가실 때 나는 그토록 많은 사람이 왜 예수를 믿는지 알았습니다. 그때 나는 골고다 언덕 십자가 곁에 서있는 것 같았습니다”속량을 뜻하는 영어는 atonement 인데 이 말은 at-one-ment가 이어진 것이다. 즉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혔던 담이 헐어진다는 뜻이다. 이런 일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작업이며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의 피로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구원을 말할 때는 용서나 영생 등 내가 얻는 것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지불하신 엄청난 대가, 곧 독생자의 피를 먼저 생각하고 감사해야 한다. 십자가에서 자비와 진리가 만났고 의와 평화가 만났다. 죄에 대한 책벌과 사랑에 의한 용서가 만난 것이 예수의 십자가이다. 형틀로서의 십자가는 끔찍하나 거기에 그리스도가 달리셨기에 소망의 상징이 되었다. 한국의 밤하늘을 수놓는 네온 십자가들의 장관은 얼마나 좋은가!/최효섭 (미 아쿨라 한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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