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환자 호스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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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그녀는 야전병원에 있는 것 같았다.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와 다급하게 굴러가는 침대바퀴 소리,의료진의 빠른 템포의 목소리들이 뒤섞인 연세의료원 응급실에서 환자수발을 하고 있는 호스피스 봉사자 박영자 권사(63·고척교회).분홍색 자원봉사자 가운을 입은 그녀는 집에서 만들어온 쌀죽을 말기 암환자에게 먹여주고 있었다. “착하지 잘먹네,두 수저만 더 먹자…” 환자가 조금이라도 더 먹어 쾌유하길 바라는 마음은 바로 어미의 심정 그대로이다.호스피스 봉사만 20년째인 박권사는 2년 전부터 말기암 환자뿐 아니라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는 에이즈환자도 돌보고 있다. 현재 그의 호스피스 봉사를 받는 에이즈 환자는 53명 정도. 박권사는 조금이라도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핸드백이나 배낭 속에 에이즈 관련 서적을 넣고 다니면서 틈틈이 꺼내 읽으며 수첩에 메모하고 공부한다. 그리곤 가정 쉼터 병원에 있는 에이즈환자들을 찾아다니며 이들이 생애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 생명인가를 알 수 있도록 돕는다.벌써 7명이 그녀의 품을 떠났다. 그들 중 박권사는 자신을 이모라고 불렀던 정세일씨(가명·2000년 3월 사망)를 잊지 못한다. 박권사가 병실을 처음 찾았을 때 40대 중반이던 그는 이미 실명된 상태로 인공항문 비닐팩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두번째 만났을 때 그는 치아 사이에 낀 음식을 빼달라고 했다. 밥을 먹이려고 하면 1시간 이상이 걸린다고 투정하며 거칠게 뱉은 음식이 얼굴에 튀고,뿌리치는 손길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박권사는 연이은 그의 거친 행동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난감했다.그런데 이상한 것은 11층의 다른 한 에이즈 환자도 똑같은 요구를 하는 것이었다. 박권사는 환자들이 우선 봉사자를 경계의 눈길로 탐색하다 뒤에 가서야 마음을 연다는 것을 알았다. 박권사는 먼저 환자들에게 자신을 사랑하라고 간절히 말해주었다.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어요. 잘 죽기 위해선 신앙을 꼭 가지세요” 박권사의 진심에 감동한 정씨는 마침내 병상세례까지 받았고 그녀가 준 나무십자가 목걸이를 늘 손에 쥐고 다녔다.8개월동안 정씨와 교류하며 93번째 만나고 돌아온 날. 회색빛 하늘이 어둠속으로 묻히던 저녁 무렵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병원인데요,정세일씨 방금 돌아가셨어요” 박권사는 귀가 멍하고 팔에 힘이 빠져 수화기를 방바닥에 떨어뜨렸다. 눈물이 앞을 가려 전화번호까지 뿌옇게 흐려 보였다. 상을 치르고 영정을 만드는 일을 모두 박권사가 해야 했다.정씨처럼 이렇게 보낸 사람이 벌써 7명. 박권사는 암환자는 불쌍하지만 에이즈환자는 못된 짓을 해서 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표했다.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면 제일 먼저 찾을 사람들이 이들이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죄도 많이 짓고 병들고 가족에게조차 소외당한 불쌍한 사람들이기 때문이예요. 그들이 양성판정을 받은 그날부터 얼마나 가슴을 치면서 회개했겠어요. 더 이상 우리가 무엇을 심판할 수 있나요”가족들에게 버림받고 처참한 육체적 심리적 고통속에 있는 이들에게 죄의 대가를 묻기 전에 이들도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생명임을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잘못을 따지는 것은 하나님의 소관이란 것이 그의 생각이다.박권사가 호스피스 봉사를 시작한 것은 지난 78년. 개인적으로 가정과 병원을 다니며 봉사활동을 하다 지난 91년부터 신촌세브란스 호스피스에서 봉사하고 있다. 그녀가 호스피스 봉사에 헌신하는 이유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신 후 말기환자와 가족에 대한 보호에 관심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일주일 동안 거의 매일 병원과 쉼터 가정을 오가며 많은 환우들에게 엄마 이모 딸 노릇을 해주었고 이들 중 700여명을 하늘나라로 떠내보내는 아픔을 경험하기도 했다.특히 지난 1년동안 그녀는 1820시간을 봉사했다. 일반 자원봉사자들은 1년에 1000시간을 넘기기가 어렵다. 지난해엔 이런 헌신적인 봉사정신으로 신촌세브란스 호스피스대상을 받았고,보건복지부장관상을 수상했다.한편 박권사는 매일 새벽제단을 쌓는다. 환자 의료보험카드의 비닐 커버를 손에 들고 간절히 기도한다. 새로운 백신이 발견되길 바라며 가족들의 사랑이 회복되길 기도한다. 또 박권사는 보균자가 환자로 전이되는 경우 에이즈환자수는 점차 늘어날 전망이지만 이들이 마땅히 갈 곳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 박권사는 말년이 되면 에이즈환자 요양소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꼭 그렇게 하고 싶어요.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남아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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