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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어머니 바바라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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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의 대통령 선서식에서 가장 행복했던 여자는 아마도 대통령의 어머니 바바라 부시였을 것이다. 남편이 대통령이었고 이번엔 아들이 대통령이 되었다. 이만하면 뭇 여성이 부러워할만 하지 않은가.백악관 안주인으로서 바바라 부시만큼 국민의 호감을 산 퍼스트 레이디도 드물었다고 한다. 남편이 대통령 직에서 물러앉던 해 월스트리트 저널과 NBC의 여론조사는 부시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긍정 평가가 50%에 머물었던 데 비해 바바라는 60%를 획득했다고 발표했다.바바라에 대한 인상은 ‘뚱뚱하고 머리가 희고 얼굴에 유난히 주름살이 많고 어디에 있는지 잘 안보이는 여자’였다. 바바라는 19세 때 대학을 중퇴하고 처음 만난 총각과 데이트도 해 보지 않고 결혼했다. 그녀는 끄는 역할은 사양하고 언제나 밀어주는 역할을 하였다. 남편이 대통령이 될 때까지 40여년 동안 29번 전국을 이사 다니며 배후에서 뒷바라지만 하였다. 백악관 주인공들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컬럼비아 대학 에텔 클라인 교수는 “바바라 부시는 오랜 스스로의 훈련을 통해 자기의 의견을 고집하지 않는 방법과,자신의 욕구에 항복하지 않을 수 있는 힘과,배후에 그늘로 서있는 의미를 배웠다”고 말한다.클라인 교수는 또 “미국 여성들이 대체로 직업 남편 이웃과의 관계에서 경쟁적이지만 바바라는 스스로 평화스럽게 살며 누구보다 나아져야겠다고 바둥거리는 타입이 아니다. 그래서 인기가 있는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그녀를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있는 그대로,가진 그대로,자연스럽게 편안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바바라의 별명은 ‘할머니’였다. 그러나 그녀는 ‘미국 국민의 할머니’였다. 바바라 자신은 말한다. “나는 어쩌면 비겁한 사람의 길을 걸어 왔는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일에도 내 주장을 별로 내세워 보지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정치 문제는 남편이 혼자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그러나 바바라가 결코 무능해서 뒷전에만 앉아 있었던 것은 아니다. 럭거즈 대학의 여성문제 연구소 룻 맨델 교수는 “백악관 주인으로서 우리 눈에 비친 바바라 부시는 자기가 할 수 있는 한계를 잘 아는 분별력과,기어이 해내는 결단력과,자기가 한 일에 대해 철저히 책임지는 인간이었다”고 평하였다. 클라인 박사는 바바라에 대한 표현을 이런 말로 대신했다. “여기에 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녀는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녀는 크리스천 디오르 옷을 입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번쩍거리지 않고 욕심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런 정도로 인기를 얻을 수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자연스럽게 평범해지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최효섭(미국 아쿨라 한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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