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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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본에서 20㎞ 떨어진 와이마을은 완전히 파괴됐습니다. 와이마을은 이슬람 마을인 리앙과 툴레후에 둘러싸여 있고 이슬람교도들은 외부로부터 무기 지원을 받아 마음대로 마을을 유린했습니다. 모든 기독인들은 보금자리를 버리고 10㎞ 떨어져 있는 패소마을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툴레후로부터 단지 4㎞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술리마을도 공포에 휩싸여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사역중인 선교사의 편지는 급박한 상황을 알려주고 있다. 인도네시아 동북부 말루쿠제도의 종교분쟁은 종교·인종청소로 확대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각지로부터 모여든 수천명의 이슬람교 의용대와 현지 이슬람 무장세력인 지하드가 합세한 복수전은 방화 폭력 살인이 계속되면서 수십만의 피란민을 양산해냈다.“이슬람교는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인도네시아 국민들의 완벽한 생활방식이 돼야 하며 인도네시아의 혼란은 잃어버린 특권을 다시 찾으려는 기독교 소수집단,특히 화교에 의한 것”이라는 의식이 인도네시아에서 폭넓게 자리잡고 있다.◇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갈등은 정치적 산물515개 언어,240개 종족,1만700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국가. 인구 2억2000만명의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다. 지난 45년 8월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은 ‘판차실라’를 제창하며 다민족국가 통합을 지상과제로 삼았다. 판차실라란 유일신 인도주의 민족주의 인민주권 사회정의 등 5개 원칙을 기조로 하는 인도네시아 헌법의 기본이념.군부쿠데타로 지난 66년 집권한 수하르토 전대통령은 32년간 판차실라와 신질서를 표방하고 종교를 교묘히 이용하는 철권통치를 폈다. 집권초기 그는 기독교도 장성인 베니 무르다니가 이끄는 군부의 도움으로 통치하면서 기독교도가 중심이 된 화교기업인들을 경제개발 파트너로 선택했다. 수하르토는 이슬람교의 금요기도회에 참석하는 것조차 삼갔다. 80년대 들어 수하르토는 이슬람 교도들을 각료에 임명하고 자문기구인 인도네시아 이슬람교도 지식인 연합회를 결성해 하비비에게 책임을 맡겼다. 이때부터 수하르토는 금요기도회에 참석하고 메카 성지순례도 갔다.수하르토의 하야 후 과격 이슬람교도들은 하비비의 등장을 자신들의 정치세력화의 기회로 여겼다. 98년 11월 학생시위를 막은 것도 이슬람교 민병대를 동원한 하비비 정권의 사주에 의한 것이었다.군부조차 종교갈등을 겪고 있다. 수하르토의 하야를 이끌어낸 위란토 장군은 강경 이슬람 교도들인 ‘녹색’장교들의 견제를 받았으며 화교 및 기독교도 장교들은 이슬람교도 집단에 의해 군부내 요직 진출을 억제당했다.현재 소수민족들의 독립 열망이 수마트라섬의 아체,파푸아섬의 이리안자야에서 분출되고 있으며 말루쿠와 칼리만탄에선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간의 테러 보복이 이어지고 있다.◇왜 말루쿠제도인가인도네시아가 이슬람교로 기울게 된 것은 급격한 개혁의 산물이다. 실권을 잃은 전대통령인 수하트로 측근들이 적대세력을 약화시키는데 강경 이슬람교도를 이용하고 있는 것. 인도네시아 독립 이후 지난 90년까지 45년동안 50여개의 교회들이 방화됐으나 최근엔 300여개의 교회가 소실됐다.2000여개의 크고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말루쿠제도의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간의 전쟁은 교통사고를 둘러싼 말다툼에서 시작됐다. 99년 1월 말루쿠제도의 주도인 암본. 기독교도인 운전기사가 몰던 버스가 이슬람교도 소년을 치는 교통사고가 발생했고 사고 원인을 놓고 승객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 사건에 따른 갈등은 섬 전체로 확대돼 1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양측의 충돌은 인근 할마헤라섬,세람섬 등지로 급속히 확산되면서 처참한 살육전쟁으로 변했다.와히드 대통령의 중재노력과 진압군의 계엄령에도 불구하고 가독교와 이슬람교의 적대감은 인도네시아 전역으로 확대됐다. 이슬람 과격파 지도자들은 지난해 4월 지하드(성전)를 선포하고 수천명의 이슬람교도를 군사훈련시킨후 말루쿠섬으로 파견해 무방비 상태인 기독교인들을 무차별 사살했다. 4000여명의 사상자,50여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지난해 7월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사태 해결을 위해 다국적군 파병을 유엔에 호소했으나 와히드정부는 말루쿠분쟁이 국내문제라며 외국군의 주둔을 강력히 반대했다.현재 암본섬의 기독교도들은 지하드 전사들에 의해 개종을 강요받고 있다. 기독교도들은 모스크 안에서 이슬람교 기도문을 외워야 한다. 입고 있던 모든 옷을 벗고 이슬람교 목욕의식에 참여한 후 이슬람교 전통의상을 입어야 한다. 기독교와 관련된 모든 물건들은 불태워진다. 기독교도 여성의 음순은 할례라는 미명아래 제거된다. 인도네시아는 이슬람교 사회지만 여성 할례가 없는 곳이기 때문에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암본의 갈등은 16세기에 시작암본에서 기독교계 토착주민과 이슬람계 이주민간의 갈등은 16∼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향신료의 섬’이라 지칭될 정도로 향료의 생산량이 많아 경제적 가치가 높았던 이곳을 지배했던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은 기독교를 받아들인 말루쿠 원주민들을 용병으로 육성해 인도네시아 이슬람교도들과 대리전을 벌이게 했다.인도네시아 독립 후 대립과 반목은 심화됐다. 과거 네덜란드 식민통치 기간에 비교적 교육받을 기회가 많았던 기독교계는 90년대초까지 사실상 지배세력이었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말루쿠 주민들에 대한 동화정책으로 인근 술라웨시섬에서 부기족 등 이슬람계 이민이 다수 이주해오면서 주민 구성과 지역 정치세력 판도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이주민들은 정부의 보이지 않는 지원하에 월등한 재력으로 상권을 장악했다.◇종교적 영향에 따른 갈등의 역사△4세기 인도와의 교역을 계기로 불교와 힌두교 전래△7세기 불교를 신봉하는 스리위자야 제국이 인도네시아 서쪽을 통치하면서 교역 통제△9세기 힌두교를 신봉하는 마타람왕국을 몰아내고 불교를 신봉하는 사일렌드라 왕국 집권△13세기 아랍무역상들에 의해 수마트라 북쪽에 이슬람교 전래△14∼15세기 수마트라와 자바에 이슬람교도들이 늘어나면서 불교도 통치자들을 몰아내고 힌두교 지도자들을 발리로 축출△16세기 포르투갈의 말라카 점령으로 가톨릭 유입△17세기 네덜란드에 의해 개신교 전래,포르투갈은 동티모르 식민지로 퇴각△20세기 영국과 일본의 지배를 받다가 1949년 수카르노에 의해 독립 쟁취. 비종교국가,종교자유 보장◇말루쿠제도 선교 상황말루쿠제도에서 대표적인 교회는 1536년 설립된 몰루카개신교회.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개신교단이지만 형식주의의 영향으로 교회의 활력이 사라지고 있다. 말루쿠제도의 교회들은 비어있고 예배도 중단된 곳이 많다.암본의 테르나테족,티도르족,대부분 선원인 바자우족,할마헤라섬의 마키족 등 수많은 소수종족은 복음을 알지 못한다.말루쿠제도에는 128개 언어집단이 있으나 종족 복음화를 위한 성경번역은 미흡한 실정. 현재 23개의 외국선교단체 번역팀이 활동하고 있으나 94개 언어의 성경 번역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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