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는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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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하는 아픔23∼24년전 내가 아직 직장에 다니고 있을 때였다. 그때 우리집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 한가운데 있었다. 비교적 평화롭던 작은 동네에 커다란 소동이 일어난 것은 그 곳을 철거하고 재개발한다는 시의 발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재개발을 놓고 입주분담금을 낼 수 있는 주민과 그런 형편이 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거센 의견 대립이 생겼다. 드디어 여러 달이 흘러 재개발이 결정됐고 돈을 못내는 사람들은 자진철거하도록 계고장을 받았다. 우리집을 비롯해 여러 집이 이사갈 곳을 얻지 못해 미처 그 동네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퇴근하고 돌아와보니 살던 집이 없어졌다. 깡패나 다름없는 철거반원들이 커다란 해머로 집을 부수며 사람들을 몰아낸 후 우리 집을 비롯한 모든 집을 허물어버린 것이다.나는 망연자실해 식구들을 찾고 있는데 무너진 집터, 굴속같은 데서 어머님이 기어나오고 계셨다. 더욱 놀란 것은 머리가 터져 피가 낭자한 모습으로 나오시는 것이었다.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분노의 불길이 나를 사로잡았다. 단숨에 이 사건을 불공정하게 처리한 관할 파출소로 달려갔다. 그리고 파출소장 이하 전 직원에게 거세게 항의했다. 나는 소장의 책상을 내리치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이 민중의 지팡이라고,이 나쁜 사람들. 당신들이 그렇게 하고도 그 자리에 붙어있을 줄 알아. 두고 보자. 인간같지 않은…”나는 그들의 만행을 정식으로 고발할 참이었다. 끓어오르는 분노로 가득 찬 마음으로 경춘선 철길을 따라 되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성령께서 내 마음에 강력히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그들을 용서해주라고 말이다. 나는 한없이 울었다. 순종하기엔 너무 고통스러운 명령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성령께서는 계속 말씀하셨다. “용서해주어라,내가 너를 용서해 준 것같이…. ” 결국 집에 도착하기 전 나는 그 사람들을 용서하고야 말았다. 그러면서 한 찬송가가 떠올랐다.“예수가 함께 계시니 시험이 오나 겁 없네. 기쁨의 근원되시는 예수를 위해 삽시다”그 당시 나는 생애에서 잊히지 않을 정도로 충만한 은혜안에서 살고 있었다. 그랬기에 더욱 그 분의 음성에 민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사건을 통해 한 가지 깊이 깨달은 것이 있었다. 미움이 얼마나 커다란 죄라는 것과 용서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오늘날 같이 깨어진 가족관계로 아파하는 이들이 많은 때 다가오는 가정의 달이면 더욱 그 일이 생각난다./김남준(열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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