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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성 붕괴와 뉴옥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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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초침 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특히 국제뉴스를 접하다 보면 또렷하게 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구약성서에 보면 여리고성 이야기가 나온다.여리고성의 붕괴는 지금으로 말하면 국제뉴스다.당시 여리고성은 매우 견고한 성이었다.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정복을 목전에 두고 있을 때 12명의 정탐꾼 중 10명은 가나안 땅 거민은 장대하며 성읍이 견고하고 심히 크다는 이유를 들어 ‘불가함’을 말했다.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6일 동안 매일 한번씩 성주위를 돈 뒤 제칠일에 일곱번 성을 돌자 여리고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굉음과 함께 일순간에 사라져버린 여리고성은 뉴욕 맨해튼의 110짜리 빌딩만큼이나 세상을 놀라게 했을 것이다.성경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유한한 세계임을 말하고 있다.사람들은 종종 역사의 순환을 말하기도 하지만 성경은 시작과 끝을 얘기하고 있다.역사는 곡선이 아니라 직선이며 처음이 있었듯이 나중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역사의 초침이 있다는 얘기다.성경은 또 세상의 종말도 얘기하고 있지만 개인의 종말도 얘기하고 있다.각 사람에게 끝이 있음을 성경은 곳곳에서 말하고 있다.오늘 내가 부족함이 없이 이것 저것을 하리라고 자만하던 부자에게 예수는 내가 내일 네 생명을 취하리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쁜 일상에 매몰돼 살다 보면 우리는 역사의 초침도 개인의 초침도 잊고 지낼 때가 많다.뉴욕의 무너져 내린 쌍둥이 빌딩을 보며 혹자는 노스트라다무스를 운운했다고 한다.하지만 세상의 종말에 앞서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개인의 종말이다.주식을 사고 아파트 평수를 늘리고 아들 딸을 대학 보내는 동안 우리는 자신의 초침이 다 된 것을 까맣게 모를 때가 많다.우리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초침을 듣지 못하는 것도 불행한 일이지만 자신의 초침을 듣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더욱 불행한 일이다.하지만 조금만 여유를 갖고 마음의 문을 열면 우리는 초침을 들을 수 있다.세상의 시간, 우리의 시간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의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또렷하게 들을 수 있다.여의도 공원에서 아침마다 운동을 하는 낯선 노인의 하얗게 바랜 머리카락과 깊게 패인 주름살 속에서도 우리는 한번도 만난적이 없는 한 영혼의 시간을 읽을 수 있다. 50대 가장과 10대 가출소녀의 원조교제, 주부의 화상 채팅, 노모와 자식의 동반 자살 을 보며 우리는 우리 사회의 초침도 들을 수 있다.뉴욕의 무역센터가 그랬듯이 세상은 예정된 시간을 향해 가고 있다.그러나 아프간침공 임박이라는 뒤숭숭한 역사의 한복판에서도 그리고 남자가 남자와 결혼을 하고 인간이 복제되는 아찔한 현실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희망의 역설’을 얘기하고 있다.자신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 것을 말하고 있다.유한한 세계의 종말을 넘어 영원으로 연결되는 또다른 세계가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우리의 밤이 깊을 수록 새벽은 가깝다. 환절기의 일교차를 견디며 애써 이불을 끌어 당겨 시린 발 끝을 덮는 것은 새벽이 멀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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