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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할렘가의 평화의 전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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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서 온 목자 흑인들의 친구되다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서 개최된 제2차 국제기독언론인대회에 참석하고 워싱턴DC의 할렘가를 찾았다. 워싱턴에서 교포들을 대상으로 기독교백화점을 운영하고있는 최윤덕 집사(기독교문사 사장)의 안내로 할렘가를 찾은 것은 흑인들과 함께 기거하며 흑인 선교를 하고 있다는 최상진 목사를 만나보기 위해서였다.부시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백악관에서 승용차로 불과 5분거리에 있다는 워싱턴DC 북서쪽의 노스웨스트 4가. 입구에 들어서자 흑인들이 여기저기 벤치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약에 취해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헝클어진 머리와 술로 찌든 듯한 피곤한 눈빛의 흑인들이 거리를 배회하는 곳. 10년 넘게 최장기 호황을 구가해온 초강대국 미국의 또다른 얼굴이었다. 길 모퉁이에서 흑인을 만났다. 할렘가에선 항상 주머니에 달러를 준비해넣고 다녀야 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구걸이나 위협을 생각하며 멈칫 물러서자 그는 “형제여”하며 손을 내밀었다. 길거리의 노숙자임이 분명한 그는 반갑게 악수를 하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게 전부였다.이곳에서 흑인 빈민들을 대상으로 선교를 하고 있는 최상진 목사를 만나고 나서야 흑인들이 왜 반갑게 악수를 청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할렘가의 2층짜리 하얀 벽돌 건물에 ‘평화의 집’이란 푯말을 붙이고 거리의 헐벗은 흑인 노숙자들을 돌보고 있는 평화나눔공동체(APPA)의 최상진 목사(40). 최목사는 이곳 흑인들의 친구였다. 아니 가족이었다. 그는 한해에 6∼7명이 총격으로 목숨을 잃는다는 워싱턴DC의 가장 위험한 거리를 활보하며 만나는 사람들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흑인들도 그에게 만큼은 멀리서도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최목사는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는 우리의 좋은 친구입니다. 최목사가 여기 온 뒤로 삭막했던 거리에 꽃이 피고 평화가 넘쳐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최목사를 ‘흑인들의 친구’라고 말했다.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승용차를 타고 교외로 나오면서 최목사는 자신의 노모에 대한 얘기를 했다.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과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나는 어머니에게 자랑이었습니다. 내가 목사 안수를 받던날 어머니가 왔지요. 대학 교수나 큰 교회의 목사가 돼 있을줄 알고 한국에서 워싱턴DC까지 날아온 어머니는 평화의 집에서 거리의 몇몇 흑인들만을 모아놓고 목사 안수를 받는 나를 보며 그저 눈물만 흘렸습니다” 최목사는 노모의 눈물앞에서 “제가 불효했습니다”라는 말 밖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순간 이사야 35장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그는 이 성경구절로 인해 오늘 흑인들의 친구로 불리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있게 된 것이라’진토와 거름무더기 같은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빛을 가져다 줄수 있는 고귀한 진리임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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