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의 비전
본문
새로운 천년이다.2000년은 단순히 한 세기의 시작을 알리는 연도가 아니라,새로운즈믄해(천년)를 기약하는 해이다.지난 천년 간 우리 민족은 공간의 침탈만의식했지,시간의 빼앗김에는 둔감했다.조선시대에는 ‘건륭’ 등의 중국 연호를사용했고,일제 때도 ‘명치’ ‘대정’같은 일본 연호를 썼다.이는 공간과 함께시간마저 다른 나라에 빼앗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이제 ‘세계 기준’(GlobalStandard)이 된 서기를 이용하는 우리는 바야흐로 자주의 시간,세계 경쟁의 시간을새로 맞게 된 것이다.이러한 시간적 의미 속에서 2000년 1월1일이 아니라,1999년13월1일을 맞는 식의 낡은 사고로 새 천년을 대비한다면 누구든 영원한 패자가 된다.2000년을 맞이하며 우리는 새 천년에의 소명의식을 갖는다.그것은 바로‘이어줌’이다.지난 천년의 전쟁과 고통의 나날들을 우리 후손에게 밝은 모습의평화와 상생과 기쁨의 새 천년으로 만들어 ‘이어줌’이 우리의 소명이다.여러 명이이어서 경기를 하는 달리기에서도 한 주자와 다음 주자간의 이어줌이 어긋나거나,그방향이 어긋나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그 중요한 매듭의 순간에 우리는 비전 3가지를 가진다.지난 천년의 대립과상쟁,갈등을 정화하여,평화와 상생과 행복의 새 시대로 연결하는 고리를 만들어 가는비전이다.시간적 대전환의 시대에 가치의 대전환을 이루어 미래사회의 후손을 위한공존과 상생,창조의 이어줌을 이룩하는 것이 우리의 첫 번째 비전이다.대륙문명와 해양문명을 매개 조정하는 반도의 역할을 수행하며 동북아 중심의역할을 해오던 한민족이 세계의 중심에서 평화,환경,인간,역사,지식 창조의 주제를이끌며 새천년의 역사를 창조해 나가는 주체가 되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두 번째비전이다.세 번째는 과거와 미래를(millenniumization),한국과 세계를(globalization)이어주는 비전으로,특히 한국의 문화와 지식을 세계에 알리는 공간의 세계화와 선조의물질문명을 비트화시켜 영구히 이어주는 시간의 천년화 비전이다.이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지금까지 이항대립 체계로 이루어진 갈등과 배제의 ‘한손 원리’가 아닌,시간과 공간,자유(경제-자유 경쟁원리)와 평등(정치-더불어 사는평등원리),정신과 물질,생명과 기계,문명과 자연,남성과 여성의 이질적 상극패러다임을 ‘두 손 원리’로 극복하자는 것이다.상극 패러다임은 지난 세기 두 차례의 세계 전쟁과 냉전,한국전쟁과 이념대립,경제성장과 함께 밀어닥친 환경파괴 그리고 사회의 도덕적 붕괴를 낳았다.그러므로 이를평화패러다임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자기와 다른 남을 인정,수용하고 협력·융합해가는 상생의 두 손 원리가 요구되는 것이다.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한국을지배해 온 것은 한 손의 원리였다.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고향이나 배경이다른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았다.일제 시대에는 친일이냐 저항이냐,해방 후에는사회주의냐 반공이냐의 선택을 강요했다.또 남북분단과 빈곤으로 이어진 극한상황은 남이냐 북이냐,민주화 아니면 개발 독재의 어느 한 쪽 만을 선택하지 않을 수없게 했다.거기서 생겨난,평등과는 거리가 먼 무등사상이 사회를 지배해 왔다.동시에무한경쟁이라는 일방적인 자유 의식 때문에 한번 패배하면 복귀가 어려워지는 소외와전락의 사회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무한경쟁의 경제원리인‘자유’와 함께 살아가는 사회 정치 원리로서의 ‘평등’이 서로 균형을 이루지않으면 안 되는 ‘두 손의 원리’가 필요하게 된다.생태계를 보면 알 수 있듯이약육강식의 일방적인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20세기는 극단주의의 세기였다.극한과 양극화 그리고 대립과 갈등의 긴장 속에서사회를 발전시켜 간 이른 바 편집광(paranoia)의 시대였다.파라노이아의 병을고치지 않고서는 건강한 새 천년을 맞이할 수 없다.기업 정치 문화의 모든 원리가그렇다.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한 손의 원리를 두 손의 원리로 바꾸는 것,나와가정과 사회와 국가가 마음을 그렇게 바꾸면 새 천년의 꿈은 결코 멀고 먼 시간이아니라 바로 우리가 사는 오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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