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의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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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전북 김제군 용진면에서 출생한 박연세목사는 3.1독립만세운동으로 투옥당하고 신사참배에 반대하다 옥중에서 순교한 호남의 대표적인 목회자입니다. 그는 전위렴 선교사로부터 전도받고 개종한 아버지(박자형)를 따라 어릴 때 부터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전위렴 목사가 교장으로 군산 영명학교에 입학해 공부한 뒤 이 학교교사로 있으면서 3.1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대구형무소에서 2년6개월간 보냈습니다.그뒤 박목사는 평양신학교에 입학해 신학을 공부하고 목포양동 교회에서 목회를 했으며 4번이나 전남노회장을 지내고 총회장을 역임했습니다. 박목사는 1937년 장로교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하자 어쩔수 없이 동조했으나 나중에 잘못을 깨닫고 일왕(日王)을 신격화한 신사참배에 반대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는 강단에서 일왕의 절대적 위치를 그리스도로 대체하는 발언을 계속하다 1942년 11월 일경에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다가 1944년 2월15일 감옥에서 동사했습니다. 진리를 사수하다 순교당한 것입니다. 이 땅에 복음을 위해 순교의 피를 뿌리신 분이 어찌 이 한 분 뿐이겠습니까박목사가 소천한 뒤 유일한 혈육이었던 박지영집사는 유품들을 정리, 숨어 지내며 굶기를 밥먹듯이 했습니다. 교인들이 도와줘 몸을 피할 곳은 있었습니다. 그의 후손들은 박목사가 순교당한 뒤 수많은 핍박을 당했습니다. 일경들의 감시를 피해 도망다녀야 했고 먹고 자는 것을 제대로 해결하기 어려웠습니다.그러나 박목사님의 신앙과 독립정신이 바로 이 나라 민족을 부요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순교의 피가 4천 2백만 남한 인구의 4분의 1이 넘는 1,200만의 기독교 신자를 보유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말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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