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도 슈도의 세계를 벗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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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 슈도(Pseudo)라는 단어가 있다.‘가짜의’ ‘모조의’ ‘의사(擬似)의’ 등의 뜻을 지닌 이 단어는 뒤에 다른 말과 합성해 진짜처럼 보이는 어떤 일들을 의미하고 있다.가령 슈도이벤트(Pseudoevent)는 꾸며낸 사건으로,슈도사이언스(Pseudoscience)는 사이비과학,의사과학 정도로 풀이된다.아무튼 그럴 듯해 보이기는 하지만 진실되고 참된 것과는 다소 거리가 먼 뜻으로 해석될 때 ‘슈도’를 붙이는 것 같다.‘슈도의 세계’는 영어단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 사회속에서도 적지않다.그럴 듯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섰던 사람들이 한 순간에 몰락하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슈도의 세계를 경험한다.모조품과 액세서리에 익숙한 사회 속에서 진정한 가치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모조품이 진짜처럼 큰 소리 칠 때 참된 것은 자취를 감춘다.교회에도 슈도의 세계는 많이 발견된다.성도들은 지난해 옷로비 사건 당시 법정에 선 세 기독여성의 모습속에서 슈도의 세계를 경험했다.해는 바뀌었지만 린다 김이라는 이름의 여성 로비스트와 관련된 전직장관이 서울 강남 모 교회의 장로라는 사실 속에서 또다른 슈도의 세계를 목격할 수 있다.C교회의 목회자 린치사건과 그와 관련된 검은 내용들을 보면서,또한 K교회의 세습문제에 따른 네티즌들의 격앙된 소리들을 접하면서 슈도의 세계를 맛본다.목회자들은 “대기업의 세습과 교회의 세습 사이에 어떤 다른 점이 있는가”라는 한 네티즌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교회 게시판에 “세습의 문제는 교회가 타락한 증거”라고 일갈한 ‘대담한’ 젊은 목회자도 보인다.물론 우리 자신들의 모순된 모습 속에서도 슈도의 세계는 발견된다.진리와 상식을 추구하면서도 너무나 쉽게 비진리와 비상식 속에 함몰해버리는 우리에게서 세상사람들은 슈도의 세계를 느낄 지 모른다.참된 것을 찾기 위해 슈도의 세계를 벗어나야 한다.모두가 진짜의 삶을 추구해야 할 때다.감상적일지 몰라도 ‘예수 그리스도라면 어떻게 하셨을까’가 표준이 될 때 우리를 옥죄고 있는 슈도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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