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적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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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건강] 슬픔 위로30대 부인이 남편을 잃었다.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부인은 깊은 슬픔에 빠졌다.그러나 그녀를 더욱 괴롭히는 것은 친지들의 위로의 말이었다."그래도 부인은 아직 건강하고 앞날이 창창하잖아요"이런 말을 들을 때 부인은 화가 났다."그이 없는 하루가 이리도 지루하고 길기만 한데 앞으로 그 긴긴 세월을 어떻게 살란 말인가"사실 그녀는 견디기 힘들 정도의 고통스러움에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퇴근시간이면 자신도 모르게 남편을 기다리고 옷장을 열었을때 코 끝을 스치는 남편의 체취에 마음이 무너진다.아이들이 엄마 눈치를 살피며 아빠의 사진을 숨길 때,남편과 함께 다녔던 커피숍을 지날 때 슬픔이 밀려온다. 그런데 "아직 젊으니 복으로 알라고"그렇게 말하는 친지가 야속하기만하다.이웃의 슬픔을 위로해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그러나 위로에도 에티켓이 있다.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말해야 한다.슬픔을 축소해 주려고 서둘지 말라.슬픔을 달래려고 하지 말고 마음껏 울고 슬퍼하도록 허용해 주는 것이 좋다.슬픔을 잊으라고 강요해서는 안된다."세월이 약이야"하는 상투적인 위로의 말도 피해야 한다."외출도 하고 취미 생활도 해봐"라고 말하기 보다 "우리 모임에 나가볼까" 하는 것이 좋다.꽃이나 음식도 보내주고 전화로 안부를 물어주고 일상생활의 리듬을 찾아주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다.슬픔을 당한 욥을 위로하기 위해서 친구들이 왔지만 오히려 상처만 주고 돌아갔다.그들의 어투는 오만하고 설교조다.그러나 간음하다 붙들린 여인에게 주신 예수님의 위로는 치유적이다(요 8:11).수치를 당한 여인에게 예수님의 첫 질문이 인상적이다."여인아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였다."너 왜 그런 짓을 했느냐"라고 물으셨다면 여인은 또 한번 아픔을 당해야 했을 것이다."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 하노니 다시는 죄를 범치말라"하셨다.예수님은 마음을 섬세하게 살피시는 분이다. 이무석(전남대의대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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