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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씨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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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7세기 중엽. 한 연로한 영국인 학자는 아내 헤스터 프린을 먼저 신대륙 미국으로 보낸다. 그후 자기도 뒤따라가지만 도중에 배가 난파되어 죽을 고비를 맞게 된다. 다행히 인디언에게 구조되어 목숨을 건진 후 갖은 고생 끝에 2년이 지나서야 보스턴에 도착, 아내를 찾게 된다.그러나 남편이 죽은 줄 아는 아내 헤스터는 사생아를 낳아 간통죄로 재판에 회부되어 평생 가슴에 A자를 달고 다니라는 판결을 받는다. A는 간통(Adultery)이라는 영어 단어의 머리글자이다. 헤스터의 남편은 아내와 통정을 한 자가 다름 아닌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딤즈데일 목사라는 사실을 알고 복수심에 불타 로저 칠링워드라는 가명으로 의사 행세를 하며 마치 악마처럼 그를 심리적으로 죄어간다. 목사는 고뇌의 나날을 보내는 동안 점점 쇠약해져 새 총독의 취임식날 대중 앞에서 7년간이나 감추어온 죄를 고백한 후 숨을 거둔다. 복수의 대상이 사라지자 허탈해진 남편 칠링워드도 숨을 거두게 되는데 자신의 지나친 행위를 회개하듯이 죽기 전에 전 재산을 헤스터의 딸인 사생아 펄에게 물려준다.‘주홍글씨’는 청교도주의의 폐해를 비판하기 위해 씌어졌다고는 하지만 세 사람의 주요 등장인물들이 그들의 죄값을 어떻게 치렀나 눈여겨볼 만하다.사실 지금의 도덕적, 윤리적 잣대로 볼 때에는 사생아 출산이 그리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으나 고급옷 로비 사건의 경우는 문제가 다르다. 그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는 그렇다치고라도 그들은 ‘하나님’을 따른다는 그리스도교인들이다. 이미 여러 번 지적되었지만 그들중 누군가는 분명히 양심을 속이고 하느님을 들먹였다. 주홍글씨의 주인공 헤스터보다 훨씬 큰 잘못을 범했다고 봐야 한다.이 소설에서 딤즈데일 목사는 불륜의 씨앗을 뿌린 공범자다. ‘옷 로비’사건의 경우 관련자들과 가까운 친분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이를 알고도 묵인 내지 부추겨서 결국 ‘옷 로비’라는 사생아를 잉태했으면 그들은 바로 오늘의 딤즈데일 목사인 것이다.딤즈데일이 죽기 전에 자기의 죄를 만인 앞에 고백하고, 남편 칠링워드도 죽기 전에 자신의 전 재산을 사생아인 펄에게 준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헤스터는 어떻게 됐나. 바느질과 자수로 생계를 꾸려가며 누구보다도 건실하게 살면서 불우한 여성들을 돕는 일에 여생을 바친 헤스터는 비록 법정 판결대로 가슴에 A자를 달고 다니지만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는 인물이 된다. 그녀의 봉사활동과 참회로 말미암아 이 글자는 치욕의 상징에서 같은 A자로 시작되는 유능(Able), 천사(Angel), 정상(Apex), 더 나아가 아메리카(America)를 뜻하는 말로 승화된다.요즈음 우리나라 프로야구를 보면 이승엽 선수의 인기가 대단하다. 그는 투수가 아무리 기교를 부려가며 공을 던져도 홈런을 시원하게 잘 치기 때문이다.사실 청문회에 나온 증인들은 야구의 투수격인데 이들은 불성실한 답변으로 뭉쳐진 ‘공’을 교묘히 던져 타자격인 국회의원들로 하여금 헛방망이만 휘두르거나 뜬 공을 치게 해서 열광하는 관중들을 실망시킨 바 있다. 더구나 일부 의원들은 볼을 스트라이크로 잡아주는 엉터리 주심처럼 보이기도 했다. 흥분한 관중들이 보다못해 이승엽격인 특별검사라는 이름의 선수를 마운드에 세워 가슴 후련한 장타를 치게 하라고 아우성쳤지만 감독은 들은 체 만 체했다.인간은 아담과 하와이래 자기의 과오를 솔직히 인정하기보다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꾀만 키워왔다. 자기의 잘못이 분명한 경우에도 “그래, 너 잘 났어”라는 최후의 발악적 외마디를 던져 끝까지 자기 방어를 시도하거나 “잘못했다”라는 고백 대신 “유감스럽게 됐다” 또는 “진의가 와전됐다”라고 얼버무리는 것 등은 교만스런 인간의 습성이다.사실 ‘고관부인’이란 어휘도 귀에 거슬린다. 정부라는 한 조직에서 장관급에 있는 인사들은 ‘고위직’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고 ‘고관’이라고 호칭하는 것은 너무나 권위주의적이요 관료적이다. 민주국가에서는 나라의 최고 국정책임자인 대통령도 국민이 뽑은 국민의 심복이요 봉사자다. 이렇게 볼 때 그러한 대통령이 임명한 ‘고위 공직자’들의 본분이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영어에서도 관리(공무원)를 ‘시빌 서번트’(civil servant)라 하여 어디까지나 봉사자임을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이미 18세기에 프로이센 왕국의 프리드리히 2세 국왕은 ‘군주는 국가 제일의 종이다’라고 갈파한 바도 있다.인간은 불완전하여 누구나 실수와 잘못을 범하며 살아간다. 연필에 지우개가 있듯이 잘못은 곧 수정돼야 하지만 그 잘못으로 인한 죗값을 어떻게 치르느냐 하는 끝마무리 또한 중요하다. 이 점에서 ‘주홍글씨’의 헤스터는 좋은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청문회에서 거짓증언을 한 사람들은 A자가 아니라 L자(거짓말쟁이를 뜻하는 Liar의 머리글자)를 달고 다닌다는 심정으로 참회와 봉사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 하느님은 각자에게 행한 대로 갚아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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