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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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광대에게 다가온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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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패 박순욱(가명)씨는 고교시절부터 장구 하나에 인생을 걸었다.졸업을 한 후그는 민속촌 농악단에 들어갔다.한 장단만 틀려도 기합이 날아드는 강훈련이었다.그러나 고통은 일순간 ,환희는 길었다.관중이 자신들의 가락에 녹아들어올 때 느끼는 기쁨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그는 동료들과 함께 풍물단을 만들었다.단원들은 포장마차를 하면서 생활을 이어갔다.낮에는 산에 올라 신들린 듯 장구 꽹가리 징 북을 두드렸다.땀흘린만큼 결과가 다가왔다.오키나와 타악기 경연대회, 남북통일예술제 등에서 호평을 받았다.이따금씩 무의탁 노인이나 교도소에 가서 그들과 흥겹게 어우러질 때 그것은 또 하나의 기쁨이었다.아기 우유값도 벌기 힘든 살림이었지만 그는 ‘광대는 길에서태어나 길에서 죽는 것이 숙명’이라고 여겼다.세월이 지나 이름이 알려지자 밤무대에서도 그들을 불렀다.직장연수교육장에도 초청돼갔고,그의 풍물패는 최고의 인기였다.흥겨운 장단에 직장인들이 하나가 되는것을 보며 보람을 느꼈다.그러다가 IMF가 터졌다.모든 출연요청이 썰물같이 빠져나갔다.밥줄이던 기업연수행사가 다 없어졌다.이제 경영인들은 풍물놀이를 노조의 상징으로 낙인찍고 기피했다.밤무대도 끊기고 개런티마저 중간 프로덕션에서 착복해 버렸다.가난은 또 다가왔다.아내마저 친정에 보내고 노숙자가 되기 일보직전의 상황.그는 동네길거리에서 우연히 강문달(가명)을 만나 포장마차로 가서 소주를 나누었다.2년전 단골주점에서 만난 적이 있는 사십대 남자였다.강문달은 조그만 가죽가방 공장을 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수표 한번 사용해 볼 의향이 없소 부도가 난 수푠데 한 장을 사용하면 10만원을드리리다” 강문달이 조심스럽게 제안을 했다.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든 그에게는 이미 뿌리칠 수 없는 제안이었다.“그거 법에 걸리는 일이죠” 박순욱이 물었다.강문달이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법엔 저촉되지만 잡힐 염려는 없소.다수가 있으니까…”이틀후 그가 주민등록증 하나를 만들어 왔다.그 안에는 박순옥에게 받아간 증명사진이 붙어 있었다.박순옥은 서울변두리 아파트단지내 슈퍼로 갔다.휴지와 수박 한 통을 사고 1백만원짜리 수표를 내밀었다.고액 수표를 사용하는 손님도 꽤되는지 종업원은 아무 의심없이 거스름돈을 내주었다.뒤에서 지켜보던 강문달에게 거스름돈을 건네줬고 대신 수고비로 10만원을 받았다.며칠 뒤 그는 오랫동안 강문달을 추적하던 형사에게 체포됐다.강문달은 이미 유유히 행방을 감춘 뒤였다.특수절도행위인 소매치기로 몰렸다.“저는 남을 속인 것이지 훔치지는 않았어요.저는 절도범이 아니라 사기범입니다”그는 부르짖었다.법적으로 절도범이나 사기범이나 무슨 차이가 있을까.그가‘도둑질하지 말라’는 10계명을 떠올린 것은 아닐까.엔도 슈사쿠의 소설‘침묵’에서 배교(背敎)한 기치지로는 부르짖는다.“하나님 저에게도 할 말이있습니다.제가 즐겁게 십자가를 밟았다고 생각하십니까 밟은 이 발은 아픕니다”그런 얘기를 그는 하고 싶었을까./엄상익(변호사·법무법인 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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