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과 보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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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글을 깨우치기 시작한 우리 종혁이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이병돈(34·기아자동차 기능공·경기 군포시 산본동)·이영우(32) 씨 부부는 요즘 다섯살배기 아들을 잃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 쌓여 잠을 이루지못한다.지난 4월 감기인 줄로만 알고 동네병원을 찾았다가 림프성백혈병 진단을받은 종혁이.약물치료를 받고 있긴 하지만 조혈기능이 너무 떨어져 골수이식수술을 받아야 한다.하지만 김씨의 월 1백만여원 수입으로는 수천만원이나 하는 수술비용을 마련할 길이 없어 애를 태우고 있다.그동안 혈소판 수혈,항암처치 등 1차 치료에 든 비용만도 5백50만여원.앞으로 얼마나 더들어갈지 모르는 처지다.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해 있는 종혁이는 특별히 아픈 기색을 보이지는 않지만 피검사할 때만큼은 엉엉 소리내 운다.두주먹을 꽉 쥐어도 아이의 팔뚝에서 미세한 혈관을 찾는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주사바늘이 팔뚝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면 “피가 모자란다면서 왜 내 피를 뽑는 거예요”하며 눈물을 쏟는다.종혁이는 천진난만하다.침대에 누워 수혈을 받을 때는 두 다리를 꼬고서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고,옆침대에 있는 박병관군(6)과 게임기를 갖고 놀기를 좋아한다.골수이식수술을 받으면 완쾌될 지도 모르는 종혁이는 불행히도 가족 중에조직항원이 같은 사람이 없어 당분간 약물치료를 계속 받게 되지만 언젠가는 똑같은 조직형의 골수기증자를 찾아 골수이식수술을 받아야 한다.“병원에서 중학교에 다니던 형을 사귀었어요.근데 하늘 나라로 갔어요.백혈병인데 엄마 말을 듣지 않아서 그런거래요.난 뭐든지 씩씩하게 잘먹으니까 금방 나을 거예요”종혁이가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이 딱 한가지 있다.국가대표 축구선수안정환형이나 이동국형을 만나서 `사나이답게' 악수 한번 하는 것이다.〈잦은 출혈로 쉽게 피멍이 드는 증상으로 시작〉백혈병은 백혈구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혈액암이다.원인은 아직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X_선과 방사능,벤젠을 비롯한 발암성 화학물질 등이 주요 위험인자로 꼽힌다.백혈병은 급성과 만성으로 분류된다.국내에서는 급성백혈병이 전체의 약 85%나 된다.백혈병은 또 백혈구세포가어떤 종류인가에 따라 골수성백혈병과 림프성백혈병으로 나뉜다.소아백혈병의 80%는 급성 골수성백혈병이다.종혁이의 경우는 나머지 20%범위에 들어가는 급성 림프성백혈병.만성골수성백혈병은 반수 이상이 35~45세 연령층에서 발생한다.급성백혈병은 증상이 갑자기 나타나 고열과 빈혈증상을 보이고 관절이나 뼈의 통증을 느끼게 된다.또 쉽게 출혈을 일으켜 피멍이 잘든다.급성림프성백혈병은 암세포가 뇌를 침범해 구토,경련을 일으키기도 한다.반면 만성백혈병은 증상이 서서히 나타나며 빈혈 감염 출혈 등의 증상이뚜렷하지 않다.만성골수성백혈병은 왼쪽 상복부에서 비대해진 비장이 만져지고,만성림프성백혈병은 약 90% 환자에서 전신적으로 림프절이 커져있는것이 특징이다.백혈병 진단은 말초 혈액검사를 실시해 백혈구 수가 증가되었는지를 관찰한다.정상치는 1만 단위.종혁이 경우는 이 수치가 23만 단위까지 올라갔었다고 주치의 김봉림씨는 말했다.백혈병을 확진하는 수단은 골수검사.골반뼈에 굵은 주사바늘을 찔러 골수를 채취해 백혈구수의 증가와 혈소판 감소치를 측정한다.정상인의 혈소판 수치는 15만~30만 단위.종혁이가 처음 병원을 찾았을 때 이 수치는 1만9천 단위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다.골수검사는 심한 통증을 유발한다.때문에 의학계는 보다 아프지 않고 쉽게 백혈병을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통스러운 골수검사를 하지 않고 건강검진을 할 때처럼 소량(10㏄정도)의 혈액 표본만을 채취,검사해 백혈병과 백혈병 치료후 재발 여부를 진단하는 방법이 한 예.이 방법은 긴 바늘을 골반에 꽂아 골수를 뽑고 염색체이상 여부를 검사하는 기존의 검사법과 달리 피를 10㏄ 정도만 채취해 검사하는 첨단의술이다.이화여대의대 목동병원 성주명 교수(혈액종양내과)는앞으로 이 방법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면 골수검사를 해야하는 환자들의 고통을 상당부분 덜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탯줄 혈액에서 백혈병 완치의 길 찾는다〉현재 사용되는 백혈병 치료법은 항암제에 의한 약물요법과 골수이식술,조혈모세포이식술 등 3가지 방법이 있다.골수이식술은 백혈병 환자의 병든골수를 건강한 타인의 골수로 바꿔주는 의술.기증자와 수혜자간의 골수조직형이 맞을 경우 1백% 완치를 보증할 수 있을 만큼 백혈병의 치료율을 끌어올린 의료술이다.약물치료는 유도요법→공고요법→유지요법 등 모두 3차례 진행된다.제1차 유도요법은 백혈구수와 혈소판수를 정상수준으로 끌어내리는 단계,공고요법은 콘크리트를 치듯 1차치료에서 정상화시킨 조혈기능을 확실하게 굳히는 단계,유지요법은 말 그대로 정상수준을 유지토록 해 무리없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단계다.조혈모세포이식술은 새 생명의 탄생과 함께 버려졌던 태반과 탯줄에서 채취한 혈액으로 골수이식술을 대체하는 치료법.백혈병 외에 재생불량성빈혈같은 악성혈액질환에서도 상당한 치료효과를 나타낸다.이 치료법은 한마디로 피를 만들어 내는 조혈모세포를 정상인에게서 이식해 조혈작용을 정상화시켜주는 것이다.다만 골수이식술처럼 이식하는 골수와 받는 골수간에 조직형이 서로 같아야 시술이 가능하다는 게 흠.일반적으로 골수이식에 적합한 골수조직을 얻을 확률은 형제간은 4분의 1, 남남인 경우엔 1만7천분의 1이다.따라서 만일 골수이식의 핵심인 조혈간세포를 쉽게 구하고 이식할 수 있다면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아래 이에 대한 연구가 진행돼 왔다.골수 외에 조혈모세포를 많이 구할 수 있는 곳은 태아의 간,비장,골수와 탯줄에 있는 피 등.이중 윤리적인 문제가 가장 적은 것이 탯줄.조혈모세포이식술을 위한 제대혈(탯줄피)은행은 현재 가톨릭대성모병원과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아주대병원 등이 운영하고 있고,삼성서울병원과 서울중앙병원에서도 은행설립을 서두르고 있다.서울대의대 소아과 신희영 교수는 “탯줄에서 얻은 피를 이식하는 방법이앞으로 골수이식이 필요한 전세계 환자들에게 희망의 빛이 될 것”이라고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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