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렬의 간증
본문
'가슴이 따뜻한 남자' 개그맨 이홍렬의 신앙이야기이홍렬.그가 신앙인이라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놀라면서도 고개를 끄덕인다.그가 진행하는 방송은 왠지 다르게 인간미가 풍긴다는 것이다.가슴이 따뜻한 남자 이홍렬은 그것을 신앙탓이라고도 했고 연륜탓이라고도 했다.동부이촌동 충신교회에 출석하는 그는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예배를 본다.본당 이층 구석자리가 ‘이홍렬석’이다.연예인이라고 유별나게 대접하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들어 다니기 시작한 것이 벌써 8년이 됐다.워낙 얼굴이 많이 알려져 신앙생활조차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늘 그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어린 시절 이홍렬에게 교회는 가난한 생활을 해소시켜준 유일한 해방구였다.공책하나 살 돈이 없었던 그에게 교회는 학용품은 물론 가끔씩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곳이었다.그것이 전부였다.신앙이 자리잡을 여유가 없었다.초등학교를 끝으로 교회와는 완전히 멀어졌다고 생각했다.삯바느질을 하는 어머니를 돕기 위해,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학창시절을 보낸 이홍렬이 교회를 다시 찾게 된 것은 어머니 때문이었다.병원에서도 포기한 암으로 죽음이 코 앞에 닥친 어머니를 등에 업고 그는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교회를 찾았다.안수기도를 받게 하기 위해 사람들을 밀치며 뛰어다녔던 것은 교회말고는 아무것도 의지할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당시 가난은 지독히도 그를 따라다녔고 그의 인생을 너무도 초라하게 만들었다.“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장례치를 여유가 없었어요.당시 집 근처의 용산남부교회에서 아무 조건없이 어머니의 장례를 치러줬어요”1년후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교회는 역시 아버지의 시신을 거두었다.그는고민에 빠졌다.왜 교회에서 우리집에 이렇게 신경을 쓰는 것일까.우리는교회를 위해 한 것이 없는데….나중에 깨달은 것은 바로 그것이 하나님이가르쳐준 ‘사랑’이라는 것이었다.이홍렬은 어머니를 고생만 시킨 아버지를 미워했다.그는 인터뷰때마다 아버지를 원망했다.증오는 무려 20년 동안 이어졌다.그러나 어느날 기도 도중 그는 깨달았다.그것은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 받았다는 것과 그로 인해 결국 자신의 삶이 윤택해졌다는 것이다.그리고 참회하면서 아버지를 용서했다.신앙의 힘이었다.이홍렬이 제일 잘하는 기도는 주기도문이다.그는 습관처럼 이 기도문을 외운다.낙심할 때도,일이 잘 안풀릴때도,몸이 아플때도,방송이 잘 안될때도,감사드릴 때도,혹은 누군가를 위해 하는 기도 끝에도 잊지 않고 주기도문을 외운다.이것 말고는 잘하는 기도가 없다고 하지만 자신의 삶과 신앙을 지키는 유일한 수단이다.“저는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이루어진다고 믿어요.확신하죠.어느때는 너무 넘치는 축복을 주셔서 두렵기도 합니다”기도의 힘은 놀라웠다.집안이 어려워 대학진학을 못했던 그는 기도끝에 결국 34살에 대학신입생이 됐다.어느곳에서나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는 부인과 7년동안 헤어져 있을 때도 그는 기도끝에 결혼하는 행운을 얻게 됐다.몇번의 유학끝에도 성공적인 방송생활을 하게 된 것 역시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다.이제는 베풀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복지재단 홍보대사로 일하고있으며 어린이 10명을 후원하고 있다.그가 각별히 어린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오래전의 ‘사건’ 아닌 ‘사건’때문이다.어린이 재단 행사에 초대받아 봉사한다는게 그만 얼떨결에 10만원의 개런티를 받은 것이다.그게 이씨의 발목을 붙잡았다.그 돈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후원을 시작할 수 밖에없었던 그였다.개그맨 후배 이성미집사와 ‘늘푸른 모임’을 만들어 고아원 어린이들을 위해 매년 축제를 준비하는 이홍렬은 가진 것을 이웃과 조금씩 나눌때 세상이 얼마나 따뜻해 질 수 있는 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