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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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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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병요]의 편찬이 완성된 것은 단종 때였다. 편찬에 공이 컸던 하위지(하위지)에게 수양대군이 품작과 벼슬로 상을 내리자 이를 거절했다. 임금이 어리고 국가가 불안한데 종실인 대군이 벼슬과 상을 가지고 조정의 신하들을 농락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임금이 불러 받기를 종용했지만 끝내 거절하고 낙향했다. 수양대군의 야심에 뒤통수를 친 아름다운 거절이 아닐 수 없다.선조의 외할아버지인 안탄대는 왕가의 외척이 된 연 후 몸가짐을 조심하는 바람에 지극히 빈한하여 깁지 않은 옷을 입은 적이 없고 잡곡 섞지 않은 밥을 먹은 적이 없었다.만년에 눈이 어두워 몸져누웠는데 선조가 영화롭게 하려고 가죽옷을 내리자 천인이 가죽옷 입는 것도 죽을 죄요 상의 명을 어기는 것도 죽을 죄니 차라리 이대로 지내다 죽고자 한다 했다. 이에 서민이 입어도 되는 개가죽이라고 속이며 드리니 만져보더니 {요즈음 개는 별종이 다 있는가 보군(상방구유별종)} 하며 물렸다. 이 말은 임금 친인척의 보 신을 경계하는 고사성언으로 널리 쓰여내렸다. 최고권력자 주변에 친인척의 피해가 대대로 끊이지 않은 작금에 되살리고 싶은 [별종의 개-]가 아닐 수 없다.숙종 때 군수 홍만회의 집에 희귀목인 종려나무가 있다는 말을 듣고 임금이 캐오라 시켰다. 군수에게는 일생일대의 출세를 위한 호기가 주어진 셈이다. 한데 [녹을 먹고있는 외신으로서 초목을 바치는 것은 혐의를 못 면할 것이요, 그렇다고 그것을 그대로 가질 수도 없다] 하고 그 나무를 뽑아 잘라버렸다. 도리를 위해 임금의 분부마저 거절 했으니 목숨까지 내건 미학이다. 이 거절의 미학을 상실한 황량한 요즈음 세상이다. 한데 아이 하나 안전하게 기를 수 있는 보장없는 나라라 하여 그 나라에서 받은 훈장을 반납하고, 때묻은 돈이라 하여 거액의 희사를 마다한 거절의 꽃 두 송이가 싱그러워 이 코너에 옮겨심어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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