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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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우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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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조상들은 ‘하늘이 내려다본다’며 정도(正道)에서 벗어나는 것을두려워했다.부정을 저지른 사람을 나무랄 때도 ‘하늘이 무섭지 않으냐’며 호통을쳤다.어머니는 열심히 적선(積善)한다.하늘이 기억해 두었다가 훗날 당신의 자식들에게 복을 내려 주리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하늘의 뜻에 따라살아가므로,가뭄이 들거나 홍수가 나면 ‘하늘도 무심하시지’ 하는 한마디뿐이었다.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하늘을 잊고 산다.현대사회의 생리에 비추어 볼 때,하늘은 더이상 외경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일까.피서길에서의 일이다.국도변의 한 주유소에서 기름을 가득 넣었는데,돌아오는 길에 다시 주유를 해야 했다.먼길도 아닌데,기름이 터무니없이 닳았다.휘발유에 시너를섞어서 그렇다고 동행이 일러준다.시골길에서 사온 옥수수는 아무리 삶아도알맹이가 차돌처럼 단단하다.사료용 옥수수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옥수수를건네주며 활짝 웃던 촌부(村婦)의 검게 그을은 얼굴이 하늘을 가린다.아기 분유에 밀가루를 섞는가 하면,고춧가루에 물들인 톱밥을 넣은 적도있다.인스턴트 식품을 선호하는 신세대는 방부제를 상식(常食)하고,환경호르몬을섭취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화성 씨랜드 참사로 희생된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얼굴이 아직도 영정 속에서 웃고있는데,지하철철도공사의 부실 시공이 1백45건이나 적발되었다.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저지르는 일이 어디 그뿐이랴.국가의 장래를 위한다는 대의명분을 걸고 당리당략에 눈이 먼 어르신들하며,서민들에게는 개념조차 아리송한수천억의 은행돈을 빌려 경제를 휘두르는 기업가들이 즐비하다.그런데도 하늘은침묵하고 있다.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설치는 그들의 기고만장에 하늘이 주눅든걸까.벌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승승장구요 태평세계다.“하늘이 눈이 멀었나.어째 저런 것들을 그냥 놔둘꼬”“세상이 변한 겨,하늘이 변한 겨”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오늘의 세태는,하늘이 그의 직무를 유기한 데서 비롯된 것은아닐 터이다. 하늘이 이악한 세태에 질려 그의 신성한 위업을 잊은 것도아니다.하늘은 예전이나 오늘이나 같은 모습이다.다만 하루에 한번쯤 하늘을우러르며 자신을 가다듬지 못하는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현실에 대해 저항하며 오기있게 그리고 고고하게 살아가려던 시인 윤동주의 서시(序詩)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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