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에게 띄우는 편지
본문
24세의 한창나이에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은 미국의 전설적인 영화배우 제임스 딘에 대한 뒷이야기는 아직도 끊이지 않는다. 죽은지 4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묘소에는 헌화(獻花)가 계속되고 있으며, 그에게 배달되는 편지도 매달 수천통에 이른다. 제임스 딘과 대화를 나누기 위한'강신술 (降神術)모임'이 갈수록 늘고 있는가하면 그와의 대화 경험을 쓴 책들이 날개돋친 듯 팔리기도 했다.학자들은 이같은 현상을'죽었더라도 육체의 망령으로서 산 자들 사이에 살아있다고 믿는'고대적 관념의 재현이라고 본다. 그들은 죽은 제임스 딘 에게 편지를 씀으로서 그들의 의식 속에서 딘을 살아 움직이게 하고, 그같은 행위를 되풀이 하는 사이에 '그는 죽지 않았으며 어디엔가 살아있다'고 믿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사고 당시 제임스 딘은 기적적으로 살아났으며, 지금은 기억을 잃고 흉한 모습으로 바뀌어 어느 병원에 누워 있으리라 '는 헛소문까지 나돌게 된다.매년 세계의 수많은 어린이들이 하느님이나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 우체당국의 골머리를 썩게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린이들은 편지를 쓰면서 하느님이나 싼타 할아버지가 그들의 의식 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 믿으며 그들의 꿈과 환상을 키워가는 것이다. 일종의'영적(靈的)교류'인 셈이다.오늘날의 심령학자나 일부 정신의학자들은 죽은 사람과 산 사람 사이의영적 교감(交感)이 실제로 가능하다고 굳게 믿고 있으나 세계 모든 민족의 민속신앙을 살펴보면 그 믿음에 대한 뿌리는 똑같다. 예컨대 우리 민족이 제사나 차례를 지낼 때 지방(紙榜)을 쓰고 축문(祝文)을 읽는 것도 조상의 혼을 부르는(招魂) 절차다. 축문을 읽어 고인과 대화하고, 절을 해 고인을 추모하는 것이다.하지만 50대 이상의 일부 나이 든 세대가 아니고서는 축문이나 지방의 의미를 속속들이 헤아리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그저 대대로 내려온 관습이니 습관적으로 따라 할 따름이다. 그래서 얼마전부터 젊은 제주(祭主)들가운데는 차례나 제사 때 편지 투의 현대적 축문을 써 읽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틀에 박힌 축문보다는 마치 살아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듯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서울시립 장묘사업소가 지난 7월부터 납골시설 입구에 마련한 비망록에도 찾아온 유족들이 고인에게 띄운 편지가 2천통에 육박한다고 한다.한(恨)많은 죽음도, 살아계실 때 못다한 효도도, 함께 나눌수 없었던 이야기들도 편지 한 장을 그 아쉬움을 얼마쯤 달랠 수 있다면 그 또한 명절을 보내는 보람이 아니겠는가.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