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알차게 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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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이 들면 자칫 새벽 산책을 놓치게 된다.나는 아직 달리 하는 운동이 없다.가족들에게 운동부족의 지적을 몇 차례 받고도 ‘아직은’ 하면서 미루어 온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규칙적으로 수영장이나 헬스장에 드나드는 친지들을 보면 존경의 염(念)이 들기도 한다.그러나 정작 따라하지 못하고 있다.시간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너무 많은 시간을 골프장이거나 헬스클럽에서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도 든다.왜냐하면 우리의 삶이 목적이고 건강이 수단이라고 할 때,수단에 더 힘을 쏟는 꼴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친구들과 가끔 어울려 하던 산행도 언제부터인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그래서 궁여지책으로 택한 것이 새벽 산책이다.그나마 들쭉날쭉이다.어딘가에 매인다는 것 자체가 싫고,규칙적인 것이 습관으로 옮겨지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또 어쩌다가 밤샘하게 되는 날에는 새벽잠에 빠져 산책을 그만 놓치고 만다.이렇게 지구적이지 못한 내 의지박약을 한탄하면서도 이것은 되풀이되고 있다.장시간의 같은 자세는 몸에 좋지 않을 뿐 아니라 관절 때문에도 걸어야만 하는데,그래서 ‘걷기’는 불가피한 자구책이 되고 있다.어둠 속에 집을 나서 횡단보도를 두 번만 건너면,개농공원 앞에 닿게 된다.입구의 벚꽃나무 언덕길을 뒷걸음으로 걷는 사람들이 보인다.벌써 많은 사람이 와 있다.배드민턴을 치는 할머니,원판 돌리기를 하는 아주머니,소나무에 등을 대고 비비는 사람,게이트볼을 치는 할아버지,맨손 체조를 하는 사람,무슨 기공인지 이상한 동작에 열중인 사람,외곽으로 난 흙길을 따라 달리기를 하는 사람,나도 그 뒤를 따라 걷는다.낯익은 얼굴들이 보인다.아침마다 빠지지 않고 나와 꾸준하게 자기 건강을 챙기는 사람들이다.작은 선(善)을 실천하는 선량한 소시민들이다.이들에게는 고액의 멤버십이 있을 리 없다.남의 손에 기대지 않으려고 굳어진 손가락을 열심히 펴며 운동하는 노인들을 뵙게되면 머리가 숙여진다.목숨은 정말 각자의 몫이라는 생각이 절실해진다.훤하게 날이 밝는다.걸으면서 사위의 어둠이 엷게 벗겨지는 걸 보는 것도 한 기쁨이다.그만 서둘러 집을 향할 때가 되었다.출근할 딸아이를 깨워야한다.어제 아침에는 잠결에 문 잠그는 소리를 듣다 놀라 잠이 깨었다.아이는 빈 속으로 집을 나갔다.황망중에 나는 손가락을 문틈에 지찧고 말았다.살점이 깊게 패었다.급한 마음으로 신호등을 건너 뛸 참이었다.그런데 미명(未明) 속에 웬 남자노인 한 분이 꼿꼿하게 서 있는 게 아닌가.나도 따라 멈춰서고 말았다.그때 ‘신독(愼獨)’이라는 낱말이 퍼뜩 떠올랐다.‘홀로 있을 때를 삼가라’ 그날은 ‘명심보감’을 마음으로 읽었다./수필가맹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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